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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노라 Nov 05. 2024

그대에게 불을 붙이는 얼음은?

10월의 오페라 5(마지막 편) 자코모 푸치니


10월의 오페라 마지막 편입니다.

 드뎌 오페라 마지막 편입니다. 제 오랜 밴친님들, 말씀 못 하시고 오페라 읽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이왕 시작했으니 ‘푸치니’를 끝으로 오페라에 관해 거칠게라도 흐름을 정리하겠습니다.



 근대를 화려하게 마감한 자코모 푸치니(Giacomo Puccin. 1858~1924)를 소개합니다. 베르디(1813~1901)와 푸치니는 이탈리아 오페라의 양대 산맥임과 동시에 오페라계의 두 거장입니다. 시기도 반세기 정도의 간격이 있을 뿐입니다. 둘 다 국민적 영웅이며 세계적 스타입니다. 베르디가 주춧돌이라면 푸치니는 서까래입니다. 만일 제게 누구에게 사랑받고 싶냐고 물으면 당연 푸치니입니다. 푸치니는 화려한 미래를 오늘처럼 삽니다. 그런데 누굴 사랑할 것 같냐고 묻는다면 베르디입니다. 베르디는 쓰라린 과거를 현재처럼 삽니다. 베르디는 아파할 줄 아는 사람이고 푸치니는 아픔을 그릴 줄 아는 작곡가입니다.



 먼저 푸치니의 <라보엠> 중 "그대 찬 손"입니다. <라 보엠>은 크리스마스 오페라입니다. 1막의 시작이 크리스마스 이브거든요. 1830년 대의 파리 라탱(Latin) 지구에는 가난한 예술가와 날품 파는 젊은이들이 모여 삽니다. 낭만적인 시인 로돌포와 그림을 그리는 마르첼로, 철학자 콜리네, 음악가 쇼나르가 작은 다락방에 모입니다. 이들은 쇼나르가 부유한 영국인의 자서전을 써 준 대가로 받은 돈을 가지고 카페 '모무스'로 향합니다.



 친구들을 먼저 내보내고 잠시 혼자 방에 남아 원고를 마치려던 ‘로돌포’에게 이웃에 사는 ‘미미’라는 아가씨가 파리한 얼굴로 찾아오지요. 촛불이 꺼져 불을 얻으러 온 것입니다. 불은 얻은 미미는 깜빡 자기 방의 열쇠를 놓고 갔다 다시 돌아옵니다. 방문을 급히 열다 다락방의 촛불까지 꺼져버립니다. 로돌포는 어둠 속에서 미미의 손을 잡으며 그 유명한 아리아 "그대 찬 손"을 노래합니다. '미미'라는 이름은 그 시대에 가난함과 고단함을 상징하는 이름입니다. 매춘하는 여성을 흔히 칭하던 이름이라고도 하지요.


 안 들을 수 없겠지요? 가슴 뛰는 이름,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그대 찬 손>입니다.

오페라 <라 보엠> 중 '그대 찬 손'



  1896년 2월 1일 토리노의 레조 극장에서 아르투로 토스카니니(Arturo Toscanini, 1867~1957)의 지휘로 초연되었습니다. 푸치니와 토스카니니는 각별한 친구 사이였지요. 당대 로돌포 역은 자니 라이몬디(Gianni Raimondi, 1923~2008)가 꽉 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공연 앞두고 건강이 나빠져 대신 무대에 서게 된 테너가 루치아노 파바로티(Luciano Pavarotti, 1935~2007)입니다. ‘로돌포’는 무명의 파바로티에게 세계의 스타가 될 기회가 된 역할이지요. 이후 그는 프리모 칸텐테(최고의 테너)의 영예를 안습니다.


  당시의 공연 포스터입니다.




  푸치니를 세상에 알린 건 <마농 레스코 Manon Lescaut>입니다. 하지만 공연장에 불을 지피고 사람들의 기립박수를 얻어낸 작품은 <나비부인 Madame Butterfly>입니다. 나가사키에 주둔 중인 미 해군 대위 핀커턴과 현지(現地) 처(妻)인 초초상의 이야기이지요.



 핀커턴은 미국에 가서 제대로 된 결혼을 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일본에서도 활력을 얻고 싶습니다. 그는 15살인 어린 신부 초초상과 결혼합니다. 그런데 어쩌지요? 가벼운 핀커턴의 마음과는 달리 초초상은 핀커턴을 사랑합니다. 결혼 첫날밤을 보내고 핀커턴은 미국으로 떠납니다. 기독교로 개종한 탓에 일본에서 외톨이가 된 초초상은 나가사키 언덕에 있는 집에서 그를 기다립니다. 기다리지 말라는 하녀 스즈키의 말도,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중매쟁이 고로의 말도 귀에 들리지 않습니다. 그저 "나비야" 하고 나타날 것만 같은 핀커턴을 기다리는 조초상의 유명한 아리아 <어떤 개인 날>을 들어보세요.



오페라 <나비부인> 중 '어떤 개인 날'

*마리아 칼라스의 목소리인데 영화 <와인 미라클>을 배경에 넣은 영상입니다. 유투버 '재롱샘의 맛있는 영화'에서 가져왔습니다. 마리아 칼라스 목소리 듣고 싶어서요. 기존 영상은 화질이 아주 안 좋거든요.



   오페라의 무대가 원폭 피해를 입은 나가사키인 데다 미 군인과 일본 소녀를 주인공으로 한 오페라여서 제2차 세계대전 후, 복구 시절에 화해의 제스처로 많이 공연되었다고 합니다. 이 오페라를 모티브로 대중적인 요소를 가미하여 만든 것이 브로드웨이 뮤지컬 <미스 사이공>입니다.


  원곡의 아우라보다 이해를 돕기 위해 공연 위주의 동영상을 올려 드립니다만 와인도 제대로 맛보려면 와인의 특성을 살려 최적의 장소와 시간과 분위기를 연출해야 하듯 원곡을 들어보시기를 권합니다.^^



  푸치니의 손길이 닿기만 하면 모든 음표가 생기를 띱니다. 다음 곡으로 거대하고 다채로운 화면을 구상하는 천부적인 솜씨, <투란도트>입니다. 님들이 아시는 <공주는 잠 못 이루고 Nessun dorma>가 나오는 오페라지요. 이 노래만큼 대중적인 노래도 흔치 않습니다. 많은 분들과 영화에서 불려졌거든요.


  전설적인 영상이 존재하지요. 위대한 3명의 테너, 플라시고 도밍고, 호세 카레라스, 루치나노 파바로티가 함께 했던, 다시는 이런 전설을 갖지 못할 것만 같은 공연 영상을 올립니다. 이 영상을 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찹니다.(글을 쓰며 제가 흥분합니다.)



오페라 <투란도트> 중 '공주는 잠 못 이루고'



  투란도트의 무대는 전설의 시대 북경입니다. 절세 미녀인 투란도트 공주는 자신이 내는 세 개의 수수께끼를 풀 수 있는 사람과 결혼할 것이나 만일 한 문제라도 맞히지 못할 경우 목숨을 내놓으라고 하지요. 이미 왕자 13명의 목숨이 궁전 앞 광장에 뿌려졌습니다.



   조국을 잃고 방황하는 타타르 왕 티무르의 아들 칼라프 왕자가 이에 도전하게 됩니다. 칼라프 왕자를 사랑하는 노예 '류'와 칼라프 왕자, 그리고 투란도트 공주의 사랑과 운명을 다룬 드라마틱한 오페라예요. 같은 곡을 여러 영화에서 사용했는데 미션 임파서블에서도 배경음악으로 사용한 ‘네순 도르마, Nessun dorma’ 장면도 있습니다. 이 ‘네순 도르마’는 '가난한 휴대폰 판매원 폴포츠'의 감동 영상으로도 많은 분들이 익숙히 알고 있습니다.


  투란도트 공주가 제시한 세 문제가 무엇인지 궁금하지요. 한번 알아맞혀 보세요.


1. 어두운 밤에 유령처럼 날아다니며 사람들 마음을 들쑤셔놓고 아침이면 사라졌다 밤마다 다시 태어나는 것은?


2. 불꽃처럼 타오르지만 불꽃은 아니다. 그대가 패배할 때는 차가워지고 승리를 꿈꿀 때는 뜨겁게 달아오른다. 무엇인가?


3. 그대에게 불을 붙이는 얼음은?


풀어보셨나요?

정답은 마지막에. ㅎㅎ


자코모 푸치니


  푸치니는 근대 오페라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합니다. 푸치니는 <투란도트>를 완성하지 못하고 사망하는데 그의 제자 프란코 알파노 (Franco Alfano)가 푸치니의 가방 속에서 발견된 원고 36페이지를 마저 작곡하여 완성하였습니다. 푸치니의 절친 토스카니가 밀라노 스칼라 극장에서 초연하면서 "마에스트로의 오페라는 여기서 끝났다"라고 하며 지휘를 중단한 유명한 일화가 전해집니다. (아~ 감동입니다.!!!)



 푸치니의 오페라 중 <토스카>가 있습니다. 화가인 카바라도시와 그의 연인인 토스카의 애절한 사랑, 비열한 술수와 책략, 목숨을 버려서까지 신념을 지키는 이들이 빚어내는 청춘 오페라입니다. 다른 부분은 생략하고 사형집행을 기다리는 카바라도시가 토스카에게 편지를 쓰며 부르는 <별은 빛나건만> 띄웁니다. 요나스 카우프만의 노래입니다.


 가사가 참으로 아련합니다. “별은 빛나고 대지는 향기로운데 화원 문을 열고 흙을 스치는 발자국과 함께 향기로운 그녀는 들어와 두 팔에 쓰러져 안겨 오네. 오 달콤한 입맞춤, 부드러운 손길 나를 떨리게 하네. 그 아름다운 것들은 베일에 가리운 듯 사라졌네. 내 사랑의 꿈은 영원히 사라지고 모든 것이 떠나갔네. 난 절망 속에 죽어가니 더 이상 삶이 사랑에 거하지 못하겠네. ~~”



오페라 <토스카> 중 '별은 빛나건만'



  역사는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오는 기준점이 있습니다. 정치적으로는 군주제 청산, 사회적으로는 신분제 타파, 경제적으로 봉건제(봉건적 소유관계)의 종말입니다. 오페라를 근대에서 현대로 나누는 기준은 조성법칙의 파괴입니다.



  현대음악의 시조라고 하는 아놀드 쇤베르크 (Arnold Schoenberg, 1874~1951)는 조화와 균형, 통일성을 중요한 가치로 했던 그동안의 클래식 음악을 정면 비판합니다. 세기말의 고통을 예술이 외면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이었지요. 그동안 서자(庶子) 취급을 받았던 반음계가 당당히 적자(嫡子)의 자리를 차지합니다. 쇤베르크의 미완성 오페라 <모세와 아론> 한 곡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오페라 <모세와 아론> 중 부분

*바스티유 오페라 극장에서 초연했으며 로메오 카스켈루치 연출, 필리프 조르당 지휘, 파리 오페라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담당했습니다. 작품에 대한 현대적 재해석으로 뜨거운 갈채를 받았습니다.



  근대의 음악이 눈에 띄는 효과나 날카로운 비유를 추구하지 않고 조화와 균형을 으뜸으로 쳤다면 현대는 귀로 듣던 음악에게 낫과 망치를 주고 직접 현실을 일구라고 합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은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오는 가파른 언덕을 오르며 모든 예술을 참호 속에 쑤셔 넣고 살아남기를 바랐습니다. 죽음과 피와 쥐를 넘어서 살아남은 것은 현대의 "개인"입니다.


  정답은 1. 희망, 2. 피, 3. 투란도트입니다. 맞추셨나요?



  숙제가 끝난 기분이네요. 익숙지 않은 오페라여서 낯설긴 하지만 언제고 샘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생각합니다. 10월의 오페라를 마칩니다. 가을이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강의와 갑작스러운 일정으로 바쁜 10월이었습니다.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에게 보냈던 뜨거운 응원에 힘내는 오늘 되시기 바랍니다.



2024.11.02일의 정선 운탄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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