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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이 Aug 09. 2022

[헤어질 결심] 꼿꼿하고 지혜로운

서래는 과연 몰랐을까?


본 글은 [헤어질 결심]에 대한 모든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서래(탕웨이)는 해준(박해일)의 말처럼 꼿꼿한 사람이다. 서래는 자신의 삶을 위해 가정폭력을 일삼는 남편(기도수)을 치밀하게 살해하고, 자살로 위장한다. 자신은 인자한 자가 아니라며 바다를 좋아한다는 서래의 말은 그녀가 꼿꼿하고 지혜롭지만, 인자하지는 않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러나 서래는 언제나 산처럼 단단하게 살아와야 했다. 오랫동안 병을 앓던 엄마를 죽이고, 가정폭력을 일삼는 남편을 죽이고, 엄마와 할아버지의 유해를 등 뒤에 업은 채 자신의 삶을 직시하고 해결하려고 하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서래는 ‘결혼했다고 사랑하기를 중단’할 수 있는 자가 아니며, 죽은 남편이 산 노인 돌보는 일을 방해하도록 둘 수 없는 사람이다. 바다를 사랑하는 서래가 산처럼 살아오다가 바다에서 죽는 영화의 플롯은, 동물이 자신이 태어난 고향 속으로 돌아가 눈을 감는 것을 떠올리게 만든다.




해준은 꼿꼿하고 지혜롭기 위해 노력하는 자이다. 사건 현장에서 언제나 인공눈물을 넣는 그의 행동은 사건을 꼿꼿하고 지혜롭게, ‘똑바로’ 보려 하는 일종의 주술적 행동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해준의 꼿꼿함과 지혜로움은 서래에 미치지 못한다. 3년 동안 질곡동 사건에 매달렸던 해준과 달리, 서래는 홍산오가 가인을 죽을 만큼 사랑한다는 사실을 곧바로 직감한다. 패턴을 알고 싶어하고 과거의 흔적을 추적하는 해준과 달리, 서래는 패턴에 직접적으로 공명하여 삶을 예측하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서래는 말씀이 아니라 사진으로 사건 현장을 직접 보기를 원하며, 해준은 그러한 서래를 보면서 '같은 종족'이라고 느낀다. 그러나 해준에게 서래는 '같은 사람'이라고 인식되기 보다는 자기가 '되고 싶은' 사람에 가깝다. 해준은 언제나 똑바로 보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서래는 그것을 직감적으로 파악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 형사의 관할에서 2명의 남편이 죽은 여자에 대해 해준은 '공교롭다'고 반응하지만, 서래는 '불쌍한 여자'라고 생각한다. 해준은 대상의 모든 것을 똑바로 보려고 노력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언제나 서래가 본다. 그런 해준에게 서래는 되고 싶은 사람이면서 동시에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이다. 이는 정안과의 대비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물티슈 하나를 찾기 위해 모든 주머니를 뒤져야 하는 정안(이정현)과 달리, 서래는 해준의 주머니에서 자신이 원하는 물건을 자유자재로 꺼내 쓴다. 감시를 위해서만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정안과 달리, 서래는 해준과 숨소리를 공유하고 해준을 편안하게 재워준다. 그리고 자신 옆에서만 살아 숨쉴 수 있다는 사실을 서래는 언제나 꼿꼿하게 보고 있다.


 

서래와 해준이 북을 사이에 두고 데이트 하는 장면에서 시신이 마지막으로 봤을 범인을 반드시 잡겠다고 약속한다는 해준의 대사를 듣고 서래는 짐짓 묘한 표정을 짓는다. 바로 다음 장면에서 해준이 잠복 근무 중에 녹음했던 독백을 듣는 서래는 ‘마침내’ 눈물 짓는다. 그 후 서래는 해준에게 ‘화요일 할머니’가 위독하다고 말하고 월요일 할머니에게 해준이 가겠다는 것을 고맙다고 말하며 허락한다. 과연 서래는 해준을 월요일 할머니에게 보내도 자신의 범죄가 들키지 않을 것이라 확신 했을까? 해준이 월요일 할머니에게 읽어주는 이야기 속 봉우리는 “보려고 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봉우리이다. 해준은 서래의 살해 사실을 보려고 하지 않지만, 서래는 해준이 사실을 볼 수 있게 만들어준다. “우리는 다 알고도 사랑했어 너네도 그럴 수 있을까?”라는 [올드보이] 속 우진의 대사는 [헤어질 결심] 속에서 “우리가 다 알고도 사랑할 수 있을까?”로 변주된다. 서래는 더 이상 중요한 사실을 외면하지 않고 자신의 사랑을 똑바로 보고자 해준에게 범죄 사실을 탈은폐한다.




그러한 서래의 꼿꼿한 시선에 대해 해준은 범행 사실이 담겨 있는 핸드폰을 “깊은  빠뜨려서 아무도 찾지 못하게 만들라고 말한다 가정을 평온하게 유지한 남편으로서도, 유능한 최연소 경감으로서도 자부심이 붕괴된 해준은  말이 관계의 끝을 알리는 말이라고 생각했지만, 서래는  말을 ‘사랑한다 말로 이해한다. 우리의 사랑을 영원히 바다속에서 간직하자는 해준의 말을, 해준도 모르게 터져나온 사랑한다는 말을 서래는 직감적으로 느낀다. 그렇기에 서래는 해준이  이포에서는 해준이 면도를 하지 않는지, 운동화를 신던 사람이 가죽구두를 신게 됐는지 누구보다  알고 있다. 그것은 너무나 간단하다. 서래가 곁에 없기 때문이다. 서래는 자신이 해준을 사랑하고, 해준 또한 자신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반면 해준은 자신이 서래를 사랑하는지, 서래는 자신을 사랑하는지에 대해 모두 확신하지 못한다.




해준은 기도수 사건 이후 기도수와 비슷한 시계를 차며, 기도수의 술을 마신다. 따라서 그는 임오신의 “제가 그 다음 남편입니다”라는 대사에 선뜻 유쾌하게 반응하지 못한다. 자신과 그들이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 속에서, 서래가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는지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호미산 속에서 서래가 뒤에서 다가오자 자신도 죽일 것이라는 예감에 조용히 눈을 감는 해준은 서래의 사랑을 의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서래는 해준을 껴안으며 증거가 담긴 핸드폰을 건네주며 ‘붕괴 이전으로 돌아가’ 라고 말한다. 서래는 자신의 범죄와 사랑의 증거가 모두 담겨있는 핸드폰보다 직접적인 증거인 자기 자신을 영원히 바다 속으로 묻어둠으로써 해준에게서 영원한 미결 사건으로 남는다. 슬픔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이포의 바다 속에서 서래의 사랑은 영원해진다. 서래의 얼굴 옆에서 해준은 인공 눈물을 넣어보지만 더 이상 똑바로 보지 못한다. 자부심과 사랑 사이에서 저울질조차 하지 못하는 해준은 완전히 붕괴된 채로 서래의 녹음 파일을 듣는다.


각각의 장면에 같은 비행기가 지나가고 있다.


[헤어질 결심]의 주제곡이자 영화의 분위기 전체를 담당하는 ‘안개’는 과학적으로 낮과 밤이 동시에 존재할 때 발생한다. 낮과 밤의 축이 잘못 만날 때 발생하는 안개는 서래와 해준의 어긋난 만남을 상징한다. 서래가 자신이 들어갈 구덩이를 파고있을 때 해준은 그녀의 파일을 듣는다. 서래가 자신을 파멸시켜 자신의 사랑을 영원히 남기고자 할 때 에서야, 해준은 서래의 사랑을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동시에 존재해서는 안될 사건이 동시에 존재할 때 서래는 '헤어질 결심'에 이르지만, 해준은 이르지 못한다. 헤어질 결심 조차 어긋나는 사랑은 해준에게 영원히 미결로서, 부재로서 존재한다. 서래의 죽음은 해준을 위한 희생이라기 보다는, 자신의 사랑에 대한 완성에 가깝다. 오히려 파멸한 쪽은 해준이다. 그는 영원히, 서래가 아니라 서래의 부재를 껴안으며 오직 그녀의 부재만을 사랑해야 하는 형벌을 받는다. 해준은 서래가 바로 자기 발 밑에 있음을 알지 못한채 살아가야 한다. 해준은 영원히 뒤를 돌아보지 못하는 오르페우스이다.


슬픔이 영원히 잉크처럼 서서히 퍼지는 사람은 없다. 슬픔은 언제나 반드시 한 순간에서는 파도처럼 밀려온다. 해준은 서래의 슬픔이 밀려오는 파도 속에서야 그 사실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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