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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이 Dec 22. 2022

인지 자본주의의 (불)안정성 - 수희0

*해당 글은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서 주최한 '2022 만화 평론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글입니다. 인용 시 출처를 밝혀주세요

아카이빙용으로 올립니다. 저작권 관련 문제가 있을경우 언제든지 내려갈 수 있습니다.



1. 인지 자본주의로의 전환과 정동 순환 


 비물질적 노동과 생산물을 통해 자본을 형성하는 현 시대의 자본주의를 '인지 자본주의'라고 명명할 수 있다면, 우리는 비물질적 노동과 생산물의 경제적 순환이 '인지'라는 통로를 경유한다는 사실을 지적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인지는 수치화 되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감각질(qualia) 일체를 포괄하면서, 정보/지식 등과 같은 무형의 자산들까지 포섭하는 의미이다. ‘노동하는 신체’가 중점이던 산업 자본주의 시대와는 다르게 인지 자본주의는 1)’노동하는 영혼’을 통해서 정의되는데, 인지 자본주의 속에서 노동자들은 노동 시간과 여가 시간을 구별하지 못한 채 24시간 동안 자본을 순환시킬 수 있는 인지 기계로서 대기 상태로 존재한다. 언제나 상호 교류가 가능한 인스타그램/페이스북/트위터 등의 SNS는 개인들에게 인지적 효과를 발생시키고 투입된 효과는 다시 디지털 속 기호들로 산출된다. 인지 자본주의 속에서 노동한다는 것은 언제나 2)“접속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촉발된 인지적 효과는 기호를 인식하라고 요구하는 동시에, 개인 또한 (디지털) 기호로 변환될 것을 요구한다. 3)이연숙의 지적처럼 (인지적) 주체와 대상을 구별할 수 없게 된 인지 자본주의 상황 속에서 ADHD(Attention Deficit/Hyperactivity Disorder)는 개인적 질병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사회적 요구의 병리적 결과로서 출현한다. 모든 주체이자 객체인 인간-기호들은 스스로가 스스로를 디지털 속 기호로 인지해야 하는 분열적인 자아를 획득하는 것을 요청 받는 것이다. 


 인지적 효과 중에서 대표적인 것은 '감정/정동(emotion/affection)'의 발생이다. 사라 어메드(Sara Ahmed)는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경유해서 감정이 자본의 형태로 4)작동한다고 분석한다. 자본주의 아래에서 상품의 가치가 상품에 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교환을 통해서 결정되고 증식하는 것처럼, 감정은 대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대상이나 기호 사이의 순환 정동으로서 감정/정동이 기호를 보다 많이 순환한다면 그것은 감정을 더 많이 '담고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한 예로 인터넷 방송에서 유행하는 5)'웃음 참기 챌린지'를 상기해보자. '웃음 참기'는 정동/감정의 억제를 요구하지만, 동시에 그 억제된 감정/정동이 순환을 통해 더 큰 '웃음'을 만들어낸다. 감정/정동은 대상에 속해 있는 내재적 속성이라기 보다는, 순환과 교환을 토대로 축적되는 동적인 흐름에 가까운 것이다. 인지적 효과로 발생한 감정/정동은 그것을 끊임없이 순환 시키는 인지 자본주의의 통로 속에서 무한히 확장된다. 이렇게 생성된 기호 사이에서의 정동은 다시 기호를 산출하고, 그 기호에 속해 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인지적 효과의 순환 자체가 기호를 산출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까지 디지털 속 기호로 환원되어야 하는 인지 자본주의는 (마르크스의) 가치 이론을 적용할 수 없는 자본을 매개로 순환한다. 노동시간과 생산물의 관계가 비교적 일정하게 비례하여 계산 가능하던 과거와 달리, 지식/정보/매력/정동/감정 등을 생산하는 비물질적 노동은 정교한 계산이 불가능하다. 비물질적 자본은 창조성 혹은 수치불가능성을 특징으로 갖기에, 생산물에 필요한 노동 시간을 대응시킬 수 없다. 이러한 계산 불가능한 인지적 노동은 생산물과 노동 시간의 비례적 관계를 측정할 수 없게 만든다. 인지 자본주의 속에서 노동은 필연적으로 불안정성을 내포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자본은 노동의 과잉/결핍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동자들의 시간을 최소단위로 '유연하게' 쪼개서 구매하며, 유연함을 강제당한 노동자들은 불안정한 지위 속에서 노동을 수행한다. 6)프레카리아트는 자본주의로 인해 등장한 어두운 이면이 아니라, (인지) 자본주의를 가능하게 하는 전제 조건인 것이다. 


 불안정해진 노동자들은 경제적/정서적으로 안정된 상태를 욕망하고, 이러한 욕망은 다시 인지 자본주의의 경제적 순환 속으로 편입된다. 자신을 브랜딩(기업화)하라는 자유주의적 구호는, 자신을 기호를 통해 인지 가능한 매력적인 대상으로 재조합하라는 요구와 다르지 않다. CEO, 아이돌, 인플루언서와 같은 인지 자본주의의 초자아적 모델들은 불안정성이 제거된 안정적인 일상을 수행하고, 제도권과 일치하는 듯해 보이는 삶을 전시함으로써 노동자들의 욕망을 추동하고, 그러한 욕망은 초자아적 모델들과의 동일시를 유발한다. 안정적이고 매력적인 초자아적 모델이 되고자 하는 욕망은 인지 자본주의의 한 축을 구성한다. 초자아적 모델들과의 동일시는 계급에서 비롯되는 불안함을 은폐하고 자신의 계급적 정체성을 부인하게 만들면서 동시에 안정된 모델을 욕망하게 만든다. 그러나 내면에서 (타자의) 욕망을 통해 구성한 초자아적 모델과 계급적 정체성이 일치하지 않는 주체(이자 기호)는 끊임없이 불안정해지고, 이는 이전보다 강력한 욕망을 추동한다. 동시에 안정된 삶을 영위하는 것처럼 보이는 초자아적 롤모델들 또한 불안정한 인지 노동에 기초하기에 그들은 그들을 욕망하는 이들보다 더 강한 불안정성에 적응해야 한다. 보다 강한 불안정성이 강한 욕망을 야기하고, 강력한 욕망은 자신의 안정성을 디지털 속 기호로 나타낼 것을 요청하기 때문이다. 이 글은 위와 같은 관점에 기초해 네이버 웹툰【수희0(tngml0)】 (작가:생일기분)에서 나타난 인지 자본주의의 불안정성과 정동의 순환에 대해 탐색하고자 한다. 


2. ‘조수희’와 ‘수희0(tngml0)’ 


 [수희0(tngml0)]의 제목은 웹툰의 주인공 '조수희'가 인터넷 방송을 시작하면서 지은 아이디이다. 조수희는 동생(조경민)의 방송에 우연하게 등장하면서 얻은 관심을 계기로, '수희0'이라는 아이디로 인터넷 방송을 시작한다. 조경민이 "아무리 열심히 게임을 해도", "요즘 유행한다는 음식 먹방을 해도" 늘지 않던 시청자 수는 조수희의 등장 한번에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조경민은 아무리 노력해도 "수희의 발 끝에도 미칠 수 없"는 불균형을 직접적으로 체화하며 절망감을 내재화한다. 조경민의 인터넷 방송은 누구를 향하는지 알 수 없는, 마르크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노동 대상이 정해져 있지 않아 노동이라고 환원될 수도 없는 불완전한 노동이다. 한편 조수희는 시청자들을 통해 자신이 갖고 있는 '매력'이라는 인지적 자본의 위력을 확인한다. 조수희는 조경민과 달리 쉽게 시청자를 확보하고, 시청자들은 상호 교류의 형식을 통해 조수희에 대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확장 시킨다. 확장된 관심은 새로운 시청자들을 유입 시키고, 유입된 시청자들은 다시 상호 교류하여 무한히 확장하는 순환 구조를 통해 조수희의 방송은 급속도록 성장한다. 인지적 자본의 순환은 그 자체가 자본인 동시에, 그것을 통해 자신을 확장시키는 재귀적인 증식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조경민과 조수희의 불균형은 인지적 자본의 순환을 촉발시킬 수 있는 인지적 자본 생산 수단의 소유 여부를 통해 결정되며, 이는 생산 수단의 사적 소유라는 고전적 명제의 인지 자본주의적 전환이라  할 수 있다. 산업 자본주의에서 생산 수단인 노동 대상과 노동 수단이 각각 가공되지 않은 물질과 노동자/기계 등이었다면, 인지 자본주의 사회 아래에서 노동 대상과 노동 수단이 각각 인간(의 정동)과 디지털 기호라는 비물질적 대상으로 존재함을 알 수 있다. 


 디지털 세계에서 활동하는 인플루언서, 유튜버, BJ 등에게 가장 중요시되는 덕목이 진실성이라는 사실은, 온라인 세계 자체가 거짓으로 이루어져있을 가능성에 대한 방어적 태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디지털 세계의 허구성을 다룰 때 가장 문제적인 것은 그것이 온전히 허구적이지만은 않다는 점이다. 인지 자본주의는 자신의 전부를 디지털 기호로 재조합 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그것은 언제나 자신의 일부분을 재조합 하거나, 부분적으로 과잉/결여하는 방식으로 새롭게 구성할 것을 요구한다. 

조수희의 '수희0(tngml0)' 이라는 디지털 속 기호는 이름과의 유사성에서 보이듯 조수희를 대부분 반영한다. 그녀는 방송에서 보여지는 대로 가난하며, 불운한 가정 환경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그녀는 방송에서 남자친구가 있음을 밝히지 않고, 자신의 월급보다 훨씬 큰 수익을 벌어들임에도 여전히 달라진 것이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 조수희는 수입을 위해서만 방송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시청자들과 소통하는 것을 즐거워하기도 한다. 그녀는 '값싼 동정'을 거부하고 싶어하지만, 그것을 통해서 방송을 성장시킨다. 조수희의 방송에는 진실과 허구가 언제나 혼재해 있다. 그녀는 이것이 허구라는 사실을 자각하지만, 방송은 방송일 뿐이라는 동료 방송인인 채훈의 말에 설득 당하기도 한다. 자신의 삶을 완전히가 아니라 '부분적으로' 재조합해야 한다는 요구 속에서 조수희는 어떻게 재조합해야 하는지 인지하지 못해 혼란스러워 한다. 


3. 기호와 겹쳐있는, ‘BJ박채훈’ 


 그렇다면 수희와 달리 인터넷 방송을 오랫동안 진행하고 있는 다른 '프로BJ'는 자신을 어떻게 '부분적으로' 재조합하고 있으며, 그것에 적응하고 있을까? 구독자 수 100만명을 보유하고 있는 대형 유튜버인 '채훈'은 수희가 보다 적극적으로 인터넷 방송에 임할 수 있도록 이끄는 인물이다. 채훈과 수희가 같이 술을 마시는 야외 방송에서 시청자들은 수희에게 "말 놓기+ 오빠라고 부르기" 등과 같은 미션을 통해서 묘한 기류를, 소위 말해 '썸'과 같은 분위기를 조성한다. 시청자들의 반응에 힘입어 채훈은 수희에게 '우결(가상연애)' 컨텐츠를 제안한다. 수희가 남자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채훈은 "방송은 방송"일 뿐 이라고 일축한다. 채훈에게 방송이란 시청자들에게 원하는 것을 주는 것일 뿐이며, 그는 자신의 노동이 진실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채훈은 '프로BJ'답게 자신의 감정까지 재조합하는 일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 

채훈은 방송에서 보여지는 이미지대로 '금수저'이며, 방송을 통해서 엄청난 수익을 올리고 있지만, 정작 그는 "내가 이뤄낸 것들은 결국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교수인 아버지, 의사인 형과 다르게 자신은 "세상 근본 없어 보이는" 세계 속에 있다는 채훈의 현실 인식은 기묘하게 분열적이자 계급적인데 이는 앞에서 서술한 인지 자본주의의 불안정성에 기초한다. 노동과 생산물의 비례관계가 깨진 인지 자본주의 아래에서 인지 노동의 결과물은 언제나 불안정하며, 그렇기에 채훈은 “뭘 해도 누굴 만나도, 조회수가 될만한 거리만 생각”하고 “숫자(조회수)에 집착하면서 매일 두려움 속에 살”고 있다. 채훈은 언제 (인지) 노동이 가능할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24시간을 (인지) 노동할 수 있어야 하는 가능-노동자로서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동시에 채훈은 인지 노동보다 안정적(인 것처럼 여겨지는)이고 정상성의 정점에 위치해 있는 듯 보이는 형과 아버지의 삶을 욕망한다. 성공한(것처럼 보이는) 인플루언서이지만, 그는 누구보다 강한 불안정성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나 채훈은 "쉽게 돈 버는 한량" 이라거나, '존잘에 금수저'라고 인식된다. 채훈은 자신에 대한 총체적인 인식이 불가능한 조건 아래에서 '내면의 텅빔'과 '인플루언서' 사이에서의 간극을 "사치로 메꾸"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방송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아버지와 형으로 대표되는 채훈의 초자아는 끊임없이 채훈을 좌절시키며 결핍을 야기하는데, 채훈은 충족될 수 없는 자신의 결핍(안정성)을 '돈'을 통해 충족시키고자 한다. 채훈은 "자기 증명을 위해 졸부마냥 사 들이는 외제차, 그리고 명품 시계와 옷들"이 "진짜 가치"를 보여주지 못한다고 생각하지만, 인터넷 방송의 "천박한 관심"을 포기할 수 도 없다. 언제나 욕망은 대타자의 욕망이기에 완전한 충족은 반복적으로 좌절된다는 라캉의 언명에 비추어 볼 때 채훈이 욕망하는 '진짜 가치'를 가진 삶 또한 허구에 가까울 가능성이 다분하다. 그러나 [수희0(tngml0)]에서 지시하고자 하는 바는 '진짜'와 '가짜'의 실재적 구별 (불)가능성이라기 보다는 모두가 '진짜'와 '가짜'를 실재적으로 구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진짜 가치'를 보존하기 위해 채훈이 마지막으로 선택한 방법은 '구별 짓기' 이다. '구별 짓기'는 채훈이 자아를 보존하기 위한 전략으로 사용한다. "난 그런 싸구려 짓은 하지 않아" , "난 그런 새끼들과 달라", "방송은 방송이잖아" 등등. 처음에는 자신은 '천박한' 다른 BJ들과 다르다는 인식을 위해 구별 짓기를 사용하지만, 종국에는 자기 자신을 '박채훈'과 'BJ채훈'으로 구별하고자 한다. 그러나 보존되어야 하는 자아 자체가 분열되어버린 상황 속에서, 분열된 자아는 엄밀히 구별되지 않은 채, 서로를 새롭게 구성한다. '박채훈'은 'BJ채훈'의 '가짜(거짓말)'를 끊임없이 인식하고, 'BJ채훈'은 '박채훈'의 인식을 부분적으로 재구성한다. 수희가 남자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우결' 컨텐츠를 함께했다는 사실이 동료 스트리머 '민아짱'을 통해 폭로되면서 한동안 방송을 진행하지 않았지만, 결국 연출된 슬픔과 함께 방송에 복귀하는 채훈의 모습은 (인지) 자본주의 아래에서 자아를 보존하기 위한 '구별 짓기' 전략이 무력하다는 사실을 지시한다. 'BJ채훈'은 '박채훈'이 재조합되면서 탄생한 독자적인 존재가 아니라, '박채훈'의 내부적 타자로서 존재한다. 그럼에도 그것을 명확히 구별하려는 채훈의 전략은 일종의 환상에 불과하다. 'BJ채훈'과 '박채훈'의 구별 (불)가능성은 인터넷 방송의 전제 조건일 뿐 아니라 인지 자본주의의 전제 조건이다. 언제나 기호를 인식하거나, 기호로 변환 가능해야 하는 인지-기계에서의 삶에서 실재적 삶과 디지털 기호로서의 삶은 같은 장소에서 일어나기에 왕복 운동 자체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4. 순환하는 정동 


 한편 시청자들이 요구한 '우결' 컨텐츠에 대해서 상기해보자. 개인의 가장 사적이고 은밀한 부분을 영상으로 송출하는 관음증적 컨텐츠는 효과적으로 시청자들의 감정/정동을 자극시킨다. 시청자들의 감정/정동은 채훈과 수희를 비롯한 BJ들의 노동 대상이다. 그들의 감정/정동을 자극시키고 관심을 유발해서 조회수를 올려야 한다. 이는 2010년대 초반 유행했던 <우리 결혼했어요> 와 같은 형식의 가상 연애 프로그램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러나 인터넷 방송의 가상 연애 컨텐츠는 <우리 결혼했어요>와 다르다. 방송사의 가상 연애 예능은 그것이 허구임이 공공연하지만, 실시간 방송을 특징으로 하는 인터넷 방송은 시청자들이 컨텐츠에 직접 개입할 수 있어 몰입도가 높고, 직접 촬영하는 것이 일반적이기에 이들의 가상 연애는 연출된 상황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현실을 관음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인터넷 방송은 소위 '과몰입'이라는 반응을 유발하기에 최적화된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 들어 공식 방송사에서 가상 연애 프로그램의 출연자를 연예인에서 일반인으로 대상을 교체하고, 제3자의 개입을 최소한 하는 것 또한 '과몰입'을 유발시키기 위한 장치임을 고려한다면, 가상 연애 컨텐츠의 핵심은 '과몰입'을 통한 감정/정동의 산출일 것이다. 시청자들의 산출된 감정/정동은 디지털 커뮤니티 속에서 빠르게 순환하면서, '연애'라는 기호를 산출한다. 채훈과 수희의 미묘한 분위기에 시청자들이 빠져드는 것은, 채훈과 수희에게 속해있는 감정의 확산이라기 보다는 감정/정동의 순환에 의해서 표면화된 기호에 가깝다. 

 【수희0(tngml0)】에서는 SNS에서의 분노의 작동 방식을 감정/정동의 순환에 기초해서 보여준다. 수희가 남자친구가 있음에도 채훈과 가상 연애 컨텐츠를 진행하고, 채훈에게까지 남자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고 폭로되자, 시청자들은 수희의 실시간 방송과 게시판에 테러에 가까운 악플을 달기 시작한다. 그 후에 사실은 채훈도 수희에게 남자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증거가 나타나자 채훈의 방송과 게시판에 악플을 달기 시작한다. 심지어는 수희가 채훈의 재기를 돕기 위해 해명 방송을 진행하자, '민아짱'에게 "동료 스트리머 매장시킬 뻔 해놓고" 놀다 온거를 자랑한다고 악플을 달기 시작한다. 심지어는 7)'사이버 렉카'인 '화이트 헤드'는 '민아짱'의 방송을 악의적으로 편집해 분노의 순환을 가속화시킨다. 자본의 과잉으로 발생하는 문제를 자신의 자본으로 삼아 새롭게 증식하는 것이 자본의 본질이라는 지젝의 설명은, 인지적 자본인 감정/정동에게서도 예외가 아니다. 

 분노라는 감정/정동은 스트리머들과 시청자들 사이를 순환하면서 분노와 용서의 대상을 새롭게 구성한다. '수희0'을 '시청자들을 속인 기만적인 BJ'로, '채훈'을 '순진하게 속은 BJ', '민아짱'을 용감하게 사실을 폭로한 BJ'로 설정하면 자신은 기만당한 시청자로 구성되며, 분노의 구도를 확립하면서 분노는 무한히 확장한다. 정동/감정은 대상의 잘못에 귀속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순환을 통해 확장해 나가며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한 기호를 '수희0'에게 귀속시킨다. 감정/정동은 인지 자본주의 아래에서 인지적 효과이자 자본이 어떻게 자기 증식적인 구조를 가지는지에 대한 직접적인 예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5. 소진된 인간으로서 불가능성을 긍정하기 


'진짜 가치'를 찾고자 하는 욕망은 수희에게서도 예외가 아니다. 수희에게는 방송을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컨텐츠가 없기에, 수희의 담당 매니저인 '영미'는 수희에게 노출이 있는 옷을 입어볼 것을 권유한다. "부모님한테 스마트한 두뇌를 물려받았다면 그 머리를 활용"하거나, "재산을 물려받았다면 그 돈을 시드 삼아서 투자"를 하면 되는 것처럼, 예쁜 외모를 물려 받았다면 그것을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영미의 조언대로 수희의 '외모'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자 시청자 수는 평소의 2배로 늘어나지만, 수희는 자신이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외모가 아니면 "아무 가치가 없는 사람일까?" 라고 자문한다. 수희와 채훈이 공유하고 있는 인식은 인터넷 방송과 독자적인 자아를 보존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으로 수렴된다. 수희0과 조수희의 간극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도저히 없는 것일까? 

 민아짱의 폭로로 인해 방송을 하지 않고 있던 수희(수희0)에게로 돌아가보자. 아직 사태의 진실이 밝혀지기 전, 따라서 수희가 대부분의 시청자들에게 외면받고 있던 시점에 수희는 “사는 이야기를 하려고” 방송을 킨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방송을 하던 수희는 자신이 방송을 하는 이유가 “일면식도 없는 시청자들과 이야기하며 느꼈던 진심어린 위로들” 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방송인으로서의 자각이 사라지자, 방송의 이유를 찾게 된 것이다. 채훈 또한 아버지의 장례와 같이 완전히 소진된 상태에서 자신의 결핍을 우회적으로 마주하고, ‘악플 테러’를 당해 방송을 쉬고 있는 상황 속에서 방송 복귀에 회의적이게 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수희와 채훈이 인터넷 방송의 진정한 가치 혹은 착취 구조를 깨닫게 된 우화적인 결론이 아니라, 깨닫게 되는 상황이다. 수희와 채훈은 가능성을 소진한 상황 속에서, 자본의 순환 구조에서 빠져나올 가능성을 확보하고 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나서야, 새로운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다는 질 들뢰즈(Gilles Deleuze)의 진단은 수희와 채훈에게도 예외가 아닌 듯 보인다. 들뢰즈는 단지 실현을 소진하여 회복이 가능한 ‘피로한 인간’과 다르게, 8)‘소진된 인간’은 모든 가능성을 소진한 자라고 진단한다. 들뢰즈는 반복의 가능성이 남은 피로한 인간과 다르게 소진된 인간은 모든 가능성을 소진했기에, 반복에서 탈피해 새로운 잠재성의 영역으로 이행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수희와 수희0의 간극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관리할 수 있는 수단은 없다. 불가능한 것을 가능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불가능성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들뢰즈의 역설은 채훈의 실패와 다르게 수희(수희0)의 새로운 가능성을 지시할 수 있을까? 


6. 현실적인 웹툰과 비현실적인 세계 속에서 


아직 연재중인 작품에 대한 분석이라는 점에서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이 나의 한계일 것이다. 그럼에도 나의 목표는 수희와 채훈을 교차하면서 철저하게 현실을 재현하고 있는【수희0(tngml0)】의 웹툰 속 세계에 비현실적인 인지 자본주의 현실의 세계를 기입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나의 글을 통해【수희0(tngml0)를 읽기 위한 보다 다양한 시도가 개진되어, 생산적인 논의가 활발해지기를 기대한다. 




1) 조정환. 인지자본주의 : 현대 세계의 거대한 전환과 사회적 삶의 재구성 / (2011). 55p

2) 프랑코 베라르디 '비포' 지음 ; 정유리 옮김 : 프레카리아트를 위한 랩소디 : 기호자본주의 불안정성과 정보노동의 정신병리 / (2013) 120p

3) 이연숙 : ‘비체적’ 정서의 내장 만지기 이미래의 <캐리어즈(carriers)>

4) Ahmed, Sara. "Affective Economies." Social Text 22.2 (2004) 120p

5) 웃긴 영상/사진을 방송 진행자에게 보여주고 웃음을 참으면 성공하는 인터넷 방송의 컨텐츠 중 하나 

6) 이탈리아어로 ‘불안정한’을 뜻하는 precario와 무산 계급을 뜻하는 proletariat의 합성어로 불안정 노동을 수행하는 저임금 노동자를 뜻한다. 

7) 조회수와 수익을 올리기 위해 자극적으로 편집한 영상 혹은 허위 영상을 제작하거나 배포하는 이슈 유튜버 

8) 질 들뢰즈 지음 ; 이정하 옮김 , 소진된 인간 : 베케트의 텔레비전 단편극에 대한 철학적 에세이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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