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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 혜리 Apr 03. 2024

봄비


비가 내린다 봄비가 내린다.


밤새 내린 비로 운무 같은 안개가 휘감은 도시는  

처마 끝에 몽글몽글 물방울이 맺혔는데


꽃잎을 떨구고 산천초목을 흔드는 비바람은  부슬부슬 칠 생각이 없네.


위는 고요하고 나는 한잔의 차를 마시며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에 몸을 맡겨보는데


연이은 실나날이 들리지 않는 청력으로 괴로워하였다는 그는


자신의 사랑을 끝내 받아주지 않는 연인에게


루체른 호수의 물결에 흔들리는 작은 배 같은 곡을 바치면서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나는 잠시 눈을 감는다.


픔과 비탄에 잠긴 듯한 1악장을 듣고 있으면


흐르던 눈물이 더 이상 흐르지 못하고 심장에 고인  같


두 개의 심연 사이의 높은 한 떨기 꽃 같은 2악장은 섬세하면서도 부드럽다.


막바지로 치달을수록 푸른 초원에 말 갈기를 휘날리는 듯한 빠르고 경쾌한 템포에 몸을 흔들고 싶을 지경인데


우울한 레퀴엠 같다가도 발랄한 세레나데 같은 피아노의 선율을 반복해서 듣노라니


창밖에는 봄비가 주룩주룩 내리며 여전히 창을 때린다.



https://youtube.com/watch?v=fexLfIqpo8M&feature=sha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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