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이 한잎 두잎 우수수 떨어지는 시월의 어느 날,
아홉수에는 혼인을 하지 않는다는 어른들 말씀에 따라
스물일곱, 스물여덟 꽃다운 나이의 우리는 서둘러 결혼식을 올렸다.
가진 것은 많지 않았지만 마음을 합친다면 이 세상
두려울 것이 없었는데
결혼식 전날 남편은 얼굴에 얼마나 광을 냈는지
백지장같이 하얀 얼굴은 붉은빛이 감돌았다.
혼인하는 날에 사람들은 킥킥하며 웃음을 참았는데
왕좌를 앞에 둔 왕처럼 남편은 연신 싱글벙글이었다.
신혼여행을 다녀와서 집들이를 하는 날에
시누이 되는 형님이 도와주어 행사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는데
저녁을 먹고 나서 과일을 깎아 접시에 담아놓고
게임을 하는 사람들 틈에 앉아 나는 남편을 놓칠세라 두 팔로 허리를 꼭 감았다.
그것이 보기 좋았는지 남편 직장동료는 하루는 우리 집으로 전화를 하여
자연스러울 정도로 누구 눈치도 보지 않아 부러웠다며 그날 저녁에 남편손에 선물을 들려 보냈다.
그 후로도 자기야 자기야 하며 나는 남편을 볼 때마다 강아지 이름 부르듯 불렀는데
항상 당신이라 부르던 옆집 교수님 댁 언니도 자기야 하며 나를 흉내 내며 따라 불렀다.
신접살림을 차리고 나서 얼굴을 매만지며
화장대 앞 거울에 비친 남편얼굴을 바라보노라면
내가 나이는 한 살 아래지만 어쩐지 남편이 한참 어린 꼬마신랑처럼 여겨지기도 하였는데
세월이 흘러 집안일과 아이들 교육 등 여러 가지 일들로 우리는 티격태격 많이도 싸웠다.
그러나 뭐든 내색하지 않고 솔선수범하며 내가 먼저 앞장서서 그런지
이제 나이를 먹은 성격 급한 경상도 사나이는
고집을 한 겹 내려놓았는데
얼마 전에 친정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한 것을 두고
평소에 몸관리 잘하시라는 내 말을 듣지 않아 그렇다고 혼잣말을 중얼거리자
나보다 더 엄마를 생각하는 남편은 어서 장모님 뵈러 가자 하였다.
부인이 예쁘면 처갓집 말뚝 보며 절을 한다는 옛말이 있듯이
팔이 불편한 나를 대신하여 집안일도 척척 돕는 남편은 이제 영원한 내편이 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