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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아나 Dec 09. 2019

까진 뒤꿈치

인터넷으로 구매한 갈색 로퍼가 도착했다. 처음 겪는 것도 아니지만 역시나 사이즈가 맞지 않는다. 그러려니 한다. 맞춤 수제화도 아닐뿐더러 조금이라도 싸게 사보겠다고 최저가 검색으로 샀으니 말이다. 그럼 이제 할 일은 늘 그렇듯이 '신발에 나를 맞추는 것'이다.



신발을 길들이는 과정에서 어김없이 발등이 조여 오고, 뒤꿈치가 까진다. 혼잣말로 짜증 섞인 푸념을 늘어놓는다. 밴드를 사서 뒤꿈치에 붙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아무리 맞춤 신발이 아니더라도 그렇지~ 270mm인 내 발이 왜 이 브랜드에는 275를 사야 맞고, 다른 브랜드를 살 때 265가 되는 아이러니가 생길까.  성장기도 아닌 내가 발을 작아졌다 커졌나 하는 기적이 생기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하긴 신발뿐이겠는가. 옷을 사러 가면 이 매장에서는 조금 작게 나온 100 사이즈가 나에게 맞고 크게 나온 95, 타이트한 105 사이즈가 맞을 때도 있었다. 표준 규격이 있음에도 브랜드 별로 천자 만별인 사이즈를 보면서 우리가 사는 일상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낀다.  

따지고 생각해보면 내 발이 어떻게 딱 270mm 일까. 세상에 나와 같이 270 사이즈를 신는 수많은 사람들의 실제 발 사이즈는 269.2mm 일 수도 있고 268.8mm 일 수도 있겠다. 그렇게 제각각인 발을 가지고도 같은 사이즈의 신발을 신는 사람  하나가 나일뿐이다.  나도 알고 보면 271.3mm 일 수 있겠지 뭐.


사나흘 신은 새 신발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다. 차츰 발도 신발에 적응을 했는지 까졌던 뒤꿈치는 조그맣게 딱지가 생기고 신기하리만치 처음부터 꼭 맞았던 것처럼 편해졌다. 지금 내가 서있는 이 자리도 마찬가지일까.  회사에 처음 앉아서 컴퓨터를 켰던 그 순간에 얼마나 불편했었는지 지금은 가물가물하다. 그럼에도 매일 회사에 나와 일을 하면서 신발이 닳아가는 과정처럼 편해진 나는 보게 되었다.


다시 한번 갈색 로퍼를 쳐다본다. 처음 샀을 때의 반짝반짝 주름 하나 없던 그 신발은 지금 없다. 적당히 때를 탔고, 구두 굽이 닳아 낮아졌으며, 색이 바랬다. 올 한 해 1년 동안 회사에서 치고받고 웃음 짓다 때론 화를 냈던 나의 모습과 닮았다. 그래도 지금이 좋다. 로퍼를 구입했던 낯선 그 순간보다 지금 편안히 감싸는 이 느낌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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