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유열의 음악앨범' 을 보고
내가 기억하는 라디오는 2004년 중학교를 다니던 무렵, 시험공부를 한답시고 독서실에서 밤을 새우다가 그 건물 옥상에 올라가 듣게 된 '뮤직토피아' 였다. 당시 김지연 아나운서가 DJ를 하고 있었고, 시험이 끝나고 나서도 일부러 라디오를 듣기 위해 새벽까지 잠을 안 잤던 날들이 있었다. 지금도 라디오는 그런 매체이다. 누군가에게도 향수이고, 사랑이고, 혹은 눈물이 될 수도 있다.
이 영화는 그러한 코드를 잘 살리고 있다. 라디오를 통해 그때, 그 시절을 감정을 서정적으로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라디오의 생명은 또 선곡, 음악이지 않은가. 90년대 초 음악들이 짙게 베인 이 영화,, 계속 생각이 난다.
1990년에 태어난 내가 기억할 수 없는 1994년 그 해의 겨울. 어느 허름한 빵집에서 두 사람이 처음 만나는 날, 유열의 음악앨범도 첫 방송을 시작한다. 종업원으로 일하며 서로 가까워지는 시간에 늘 라디오는 같이 한다. 비가 오는 날에 함께 라디오를 듣고, 눈이 내려도 음악은 흐른다. 당연히 요즘의 앱처럼 '빨리 감기'나 '건너뛰기'는 없다. 그저 틀어주는 대로, 유열의 선곡을 오롯이 느끼며 둘의 사이도 자연스레 가까워진다. 일련의 사건들로 두 사람은 연락이 끊기고 만나고를 반복하지만 결국 바라보는 종착지는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 아마 지금과 같은 스마트폰이 없었기에 두 사람의 관계가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누구보다 빠르게, 속도전쟁 '5G'를 논하는 우리가 민망할 정도도로 느리게 지나가는 당시의 하루하루는 우리보다 더 나았을까. 물질을 넘어선 속도 만능주의 세대가 '빠르게 빠르게'를 외칠 때 그들은 '천천히 가까이'를 원하고 있다.
우리의 연애는 어떠한가. 까똑 숫자 1이 사라지면 읽는 것이오, 1이 사라져도 답이 없으면 '읽씹' 하고 만다는 세상에. 천리안 통신으로 우리의 향수를 자극하는 영화라니. <읽지 않음> 표시가 이토록 절절할 수 있는지 공감하지 못하는 우리 세대들은 스크린을 바라보며 그저 마음으로 그 애틋함을 부러워했을지 모르겠다.
김고은과 정해인이 천리안으로 연락이 우여곡절 끝에 닿게 되고, 서로 전화통화를 한다. 저녁에 어떤 사건으로 전화가 닿지 않아 김고은은 실망하는 눈치지만 이내 기다림을 멈춘다. 그리고 정해인에게 보내는 메일의 내용. "차라리 연락이 안 돼서 다행이다. 나 지금 사실 되게 후지거든. 그래서 너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아."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후진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 예전의 예뻤던 나로, 그때의 나로 계속해서 기억해주길 바라는 마음. 무엇인지 다들 알 것 같았다.
음악을 보는 재미도 상당하다. 처음 듣는 음악도 여러 곡 나오지만 크게 상관이 없다. 내가 어릴 때 즐겨 듣던 음악보다도 훨씬 이전의 음악들이 영화 군데군데 여백을 채운다. 유열은 물론이고 이소라, 신승훈, 윤상, 마지막 cold play까지.
바보처럼 사랑한다는 것은, 같은 때에 서로 눈을 맞추고 속삭이고 상대방의 감정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것인데.. 이토록 계산적인 나는 그래서 어쩌면 영화 속 주인공과 비슷한 나이임에도 현실 연애를 잘하지 못하는 부류가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