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 뒤에 숨겨진 진심
전날 술을 많이 마셨다. 굳이 핑계를 대고 싶은 것도 아닌데 사람들이 물어본다.
“얼굴이 왜 그렇게 부었어?"
"아..... 어제 잠을 잘 못 자서.. 피곤해서 그래요." 곧이곧대로 어제 술을 들이부어서 그렇다고 하지 않는다. 또 거짓말을 한다.
어떤 책에서 '사람들이 평생 얼마나 많은 거짓말을 하고 사는지 실험 통계를 낸 결과'를 본 적이 있다. 미국의 심리학자 폴 에크만은 하루에도 "인간은 8분에 한 번꼴로 거짓말을 하고, 하루 200번 정도의 거짓말을 하며 살아간다는 연구결과"를 냈다. 실험자들 몸에 소형 마이크를 부착하고 생활 패턴을 분석해 조사했는데 가장 많이 하는 거짓말은 약속시간에 늦었을 때 "차가 막혀서..." 였다고 한다.
이 거짓말은 어떻게 보면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 대한민국. 이 좁은 땅덩어리에 대부분 직장인들은 도심으로 출근을 할 테니 매일같이 회사로 몰려가는 도로의 차는 막힐 것이고, 그렇다면 차가 막혀서 늦은 것은 어느 정도 합당한 이유일 것이다. 그렇다 한들 정말 차가 막혀서 지각을 했다고 합리화한다면 모든 직장인들이 매일 지각해도 무방한 이유가 될 것인가? 그건 또 아니다.
"그럼 막힐 거 예상하고 더 일찍 나왔어야지!!" 상사가 뭐라 한다.
"아,, 부장님. 오늘 아침에 큰 사고가 나서 배로 더 막히더라고요. 몰랐죠 사고 날 줄~.."
거짓말도 늘고 늘어 한 두 문장으로 끝나지 않고 기승전결을 갖춘 거짓말을 하고서도 뻔뻔한 얼굴을 하고 있는 날 발견한다. 사실 어떤 날에는 전 날 밤 넷플릭스 콘텐츠를 보다가 늦잠을 자서, 어떤 날은 아침에 일찍 일어났는데 다시 누웠다 잠들어서, 어떤 날은 그냥 회사 가기 싫어서 뭉그적 대다가... 가 주된 이유겠지.
그러고 보면 참 일상 속에서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나는 피곤한 직업을 가진 사람이구나 깨닫게 된다. 방송을 하는 사람은 모두 일종의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늘 화면을 보고 말하는 사람들은 감정을 어느 정도 감춰야 하는 것이 일상이다. 아버지의 큰 수술이 있는 날에도 방송 안에서는 웃으면서 진행하는 날 볼 때마다 가끔 무서울 때도 있다. 일은 일이라고 치부한 채 행복하다고 입은 말하고 있는데 실제로 속으로는 너무 불안하고 무서운 상태니까. 꼭 방송하는 도중이 아니더라도, 사무실에도 선후배를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보는 눈이 많으니까. 그리고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이미지가 아주 중요하니까. 내 멋대로 해도 법적 문제는 없겠지만, 사람 사는 게 또 그렇지 않지 않나. MC 볼 때는 PD 눈치도 봐야 하고, 뉴스 할 때는 데스크 눈치도 중요하니까 말이다. 눈치 보고 거짓말하다 보면 하루가 끝나는 날도 있다.
우리 몸의 신체 활동 중에서 에너지 소모가 가장 큰 것이 바로 '거짓말'이라고 한다. 미국 대학에서 연구를 했더니 진실을 이야기할 때 보다 거짓말을 하면 머리를 굴리느라 뇌가 바빠 움직여 에너지 소모가 큰 것이라고 했다. 거짓말을 하고 나서도 문제인 게, 진실을 숨긴 채 거짓된 내용을 암기하고 있어야 하는 수고가 필요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더 큰 에너지를 필요로 한단다. 그래서 내가 살이 안 찌나 싶기도 하다.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좀 거짓말을 덜 할까. 모르겠다. 사원 직급의 나는 오늘도 선의의 피노키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