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연말에 있었던 직무 연수를 가서 들었던 말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한 마디. 계열사 사장님이 이 강연자로 나와 했던 첫마디였다. "회사를 믿지 마세요!" 아니, 이 회사를 들어오려고 거의 1000:1의 경쟁률을 뚫고 입사했는데, 내가 'ooo 아나운서, ooo입니다.'를 말하기 위해서 노력했던 시간들이 얼마나 길었는데...
그다음 강연 내용은 이러했다.
" 커다란 조직 뒤에 숨어서 안일하게 일하는 사람에게 발전은 없을 것입니다. 당신의 브랜드 가치는 회사 명함이 아닙니다. 스스로에게 질문하십시오. 당신이 회사에 남기 위해서 일하고 있는가, 회사에서 당신을 남게 하기 위해서 일하는가?"
갓 1년차 사원이 오롯이 이 말을 이해하기는 어려웠지만 연수가 끝나고 회사로 돌아와 일을 하면서 한 가지 느낀 것은 있었다. 회사 책상을 두고 일하는 수많은 직원들 중에서 회사에 남기 위해 일하는 사람이 몇이고, 회사가 붙잡을 만큼 일하는 직원은 얼마나 되는가.
나는 후자일까. 요즘 일하는 나를 돌이켜 생각해본다. '90년생이 온다.'라는 책이 화제가 될 즈음 사실 난 제목만큼은 참 잘 지었구나, 정도이지. 그렇게 내용이 좋다는 생각은 솔직히 안 했다. 책 내용 중 인상 깊었던 한 가지는 요즘 세대들이 예전만큼 회사에 충성을 다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는데, 그건 또 나만의 경우인지 몰라도 나에게는 맞는 이유였다.
그러고 나서 나는 아버지를 생각한다. 어릴 적, 내가 보아온 아버지는 회사에 충실한 분이셨다. 야근을 밥먹듯이 해도 다음날 아침이면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 다시 밤늦게 까지 일하시던 모습이 선하다. 그렇다고 아버지가 회사에 충성을 다하기 위해 그렇게 열심히 사셨나, 가족 때문이었겠지. 집에서 오매불방 아버지를 기다리는 식솔들이 있으니 갖은 고초에도 그저 버티셨겠지. 그렇다면 나는 아내가 생기고 아이가 태어나게 되면 회사에 목을 멜 것인가. 아직 닥치지 않은 일이라 확신할 수 없지만 지금보다는 더 그렇겠지 싶다. 지금 나는 어떤 순간순간마다 더 나은 환경을 생각하며 이직을 고민한 적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만약 가정이 있다면, 그리고 더 연차가 쌓여서 회사를 옮기는 게 부담으로 다가온다면, 아마 안주해 버릴 것 같았다.
그럼에도, 계열사 사장님이 하신 말씀은 곱씹어 생각하게 된다. 지금 나에겐 너무 큰 울타리인 이 회사가 허구적 존재라면, 실체인 나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비단 회사의 성과를 위한 노력뿐 아니라 사회 초년생인 내가 스스로에게 얼마나 발전적인 생활을 실천하는지에 대한 자문이 필요하다. 예전에는 그래도 퇴근 후에 습관처럼 자기 전에 꾸준히 책을 읽곤 했는데 요즘은 통 그렇지 못했다. 꼭 야근 때문도 아니고 간간히 있는 회식도 이유가 될 수 없다. 나태한 나 자신을 탓해야 했다.
그저 밥값 하는 인간으로 전락한 것 같아 씁쓸하지만, 부모님은 밥값 하는 인간이 되는 것이 얼마나 숭고한 일인지 늘 강조하셨으니 불행한 느낌은 아니다. 그렇다고 감지덕지할 일인가. 생업은 소중한 것이고 직장은 나의 밥벌이를 위해 열과 성을 다해야 하는 것임에도 자꾸만 불편해지는 이 마음은 어떡해야 할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