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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 조 Sep 26. 2020

너무 늦은 밤 여행 -1

친구들과 광화문에서 늦게까지 놀다가 겨우 버스 막차를 타고 집에 가는 길이었다. 손님들이 하나둘 내리고 남은 승객은 나 하나뿐이었다.


버스가 김포공항을 한 바퀴 돌고 있는데, 한 외국인 커플이 버스에 탔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한창 번지기 시작한 때였던 것 같은데, 그 커플은 어떻게 입국을 했는지 모르겠다. 여하튼 그들은 공항에서 나와 버스에 올랐다.


버스에 탄 사람들이 외국인인지도 모르고 핸드폰에 집중하고 있던 중, 기사님이 “아가씨! 이리 와봐요.” 하며 나를 불렀다. 내가 다가가자 외국인 승객들은 나에게 핸드폰을 보여주었다. 화면에 켜져 있는 것은 한문으로 가득한 지도였다. 지도 모양으로 위치라도 파악하려고 확대와 축소를 반복하며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는데, 그들이 다시 검색해준 장소에 ‘jjimjilbang’이라는 글자가 쓰여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 사람들 어디로 간다는 거예요? 어느 나라 사람이야?”

“찜질방에 가려는 것 같은데요. 근데 중국인 같은데.. 일본인인가..”

“사거리에 있는 거? 에이 진짜, 거기 가지도 않는데... 버스 운행도 끝났는데... 아가씨는 어디까지 가요?”

“저는 종점에서 내려요.”


김포공항에 한참을 멈춰있던 버스가 다시 출발했다. 나는 자리로 돌아갔고 외국인 승객들은 기사님의 바로 뒤에 앉았다. 어떻게 되는 거지, 자리를 옮겨서 저 사람들하고 말동무라도 해야 하나, 그렇지만 저 사람들 영어도 할 줄 모르는 것 같은데... 이런저런 고민을 하던 중 버스는 종점까지 다 와가고 있었다.


“아가씨! 이 사람들은 내가 퇴근하고 내 차로 데려다줄 테니 그냥 가요. 내릴 때 마스크 챙겨요. 두 개 가져가요.”

“아, 네.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버스에서 제공하는 일회용 마스크를 두 장 챙겨 들고 나를 쳐다보는 커플에게 기사님을 가리키며 “Follow him..”하고는 후다닥 내렸다. 새벽 1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 아무도 없는 버스에 제발 우리를 두고 내리지 말아 달라는 눈빛을 보내는 듯한 외국인들을 두고 가는 건 마음이 꽤나 불편한 일이었다.


기사님은 하나고 저 사람들은 둘이니까, 남자가 있으니까 괜찮겠지. 저 사람들 캐리어도 크던데 기사님 자동차에 짐까지 다 들어가려나. 여러 가지 걱정을 하며 차고지로 들어가는 버스를 뒤로 하고 집으로 향했다. 컴컴한 밤, 버스가 잔뜩 주차되어있는 차고지에 들어가다니 아마 그 외국인들은 일이 엄청나게 꼬이고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 후에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기 때문에 나는 아직도 그들이 찜질방에 잘 갔을지, 가는 길은 어땠을지 궁금하다. 하지만 기사님께서 잘 데려다주셨을 거라고 믿고 있다. 나도 내 인생 처음으로 혼자 떠난 여행에서, 그 외국인들과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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