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골룸은귀여워 Dec 14. 2020

우연을 가장한 운명 [Take That]

영국 국민 밴드 테이크댓과의 인연

“운명을 믿는가?” 너무 클리셰같은 말인가? 나는 황당하게도 음악을 듣다 ‘운명’을 믿게 됐다. 나와 이 곡, 이 아티스트 사이에 여러 우연이 겹치고 겹쳐 나를 항상 찾아왔으니. 잊을만하면 다시 나타나 중요한 순간 매번 응원을 건냈다. 사실 누군가 가장 좋아하는 가수가 누구냐고 물어보면 여러 이름이 떠올라 단 한번도 바로 답한 적이 없었다. 그러다 시간을 두고 다시 생각해보면 이 그룹만큼 내가 푹 빠졌던 아티스트는 없었던 것 같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내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찾아봐 꿈, 희망, 도전정신을 안겨줬으니 말이다.

5인조 테이크댓 (왼쪽부터 로비 윌리엄스, 하워드 도널드, 개리 발로우, 제이슨 오렌지, 마크 오웬) 출처: google.com

한국에서는 그다지 유명하지는 않지만, 어느덧 나이도 50대에 접어든 가수이지만, 나에게는 언제나 최고의 아이돌인 이들은 영국의 국민가수 ‘테이크댓(Take That)’이다. 1990년 영국 멘체스터에서 처음 만들어진 5인조 보이밴드 테이크댓은 작곡, 작사, 보컬까지 가능한 프론트맨 ‘개리 발로우(Gary Barlow)’를 필두로 만들어졌다. 은행에서 일하던 ‘마크 오웬(Mark Owen),’ 잘 나가던 댄스 듀오 ‘하워드 도널드(Howard Donald),’ ‘제이슨 오렌지(Jason Orange)’ 마지막으로 영원한 악동 ‘로비 윌리엄스(Robbie Williams)’까지 오디션을 통해 영입됐다. 


90년대 초반 5인조 테이크댓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 제이슨 오렌지, 개리 발로우, 하워드 도널드, 마크오웬, 로비 윌리엄스) 출처: 테이크댓 공식 페이스북


[꿈] 웰컴 투 음악의 세계

어린 시절 알록달록한 색깔과 흥미로운 사운드를 틀어주던 텔레비전. 아이들에게는 최고의 장난감이었다. 나 역시 몇 개 나오지도 않던 채널들을 돌려가며 열심히 TV앞을 지켰다. 당시 외국 음악 방송이었던 ‘채널 V’가 집에 나왔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바로 새빨간 드레스를 입은 여자였다. 그녀를 제외하고 전체적으로 무채색인 뮤직비디오로 4명의 남자와 ‘101마리 달마시안’의 크루엘라 같은 여자가 무척이나 자극적이었다. 게다가 노래까지 너무나 감미로워 TV앞에서 그 뮤직비디오가 나오길 목 빠지게 기다렸다. 안타깝게도 알파벳조차 모르던 유치원생은 노래의 제목도, 가수의 이름도 알지 못한 채 멜로디만 기억하며 테이크댓과의 첫 우연을 희미하게 간직하게 됐다.


[MV]Take That - How Deep Is Your Love (1996년 발매)

중학생이 되어서야 기억을 떠올려 몇년의 검색 끝에 테이크댓의 “How Deep Is Your Love”을 찾게 됐다. 테이크댓 버전 역시 리메이크로, 전세계를 디스코 열풍에 빠지게했던 영국의 트리오 ‘비지스(Bee Gees)’가 원작자이다. 우리나라 아티스트 중에는 ‘지누션’이 힙합버전으로 리메이크한 바 있다. 수 많은 버전 덕에 멜로디가 기억나 겨우 찾긴 했으나, 내가 이 곡을 찾았을 땐 해체한 지 이미 10년 가까이 된 터라 소식을 알 수 없었다. 게다가 로비의 탈퇴로 4인조가 된 이후 발매한 마지막 곡이라, 솔로 아티스트로 자리잡은 로비에 관한 소식만 알 수 있었다. 그간 들인 시간과 노력이 아까웠지만, 그 노력 덕에 팝송을 접할 수 있는 다양한 루트를 알게 됐고, 팝 발라드, 버블팝이 주류였던 당시 가요와 완전히 달랐던 여러 장르들을 접하게 됐다. 다행히 내가 테이크댓과 운명이기는 한 지 비슷한 시기 4인조로 재결합 콘서트를 추진 중이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규모 스타디움 투어를 매진시키며 새 앨범 준비에 착수한다.


4인조 테이크댓 (왼쪽부터 제이슨 오렌지, 개리 발로우, 마크 오웬, 하워드 도널드)출처: 테이크댓 공식 페이스북


[응원] 내가 당신의 스타라니..?

그리고 1996년 마지막으로 발매했던 베스트앨범 이후 10년만에 새 정규 앨범 [Beautiful World]를 발매하며 신기록과 함께 아주 성공적으로 컴백한다. 5명에서 4명으로 시작한 테이크댓의 새 챕터는 첫 싱글 “Patience”로 참을성있게 재기를 꿈꾸던 이들의 심정을 반영했다. 이 곡은 2006년 영국의 음악 시상식 ‘브릿 어워즈(Brit Awards)’에서 올해의 곡 부분을 수상했고, 이듬해 발매한 “Shine”역시 2007년 올해의 곡으로 선정됐다. 그리고 이 곡 덕에 테이크댓은 내 인생의 치어리더가 되었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입시스트레스에 점점 자신감을 잃고 공부에 흥미를 잃어가고 있었다. 노래만 주구장창 들으며 뒤늦은 중2병을 즐길때쯤 이 노래를 듣게 됐다.


[Live] Take That - Shine (@One Love Manchester) (2006년 발매)

You're such a big star to me. You're everything I wanna be.
But you're stuck in a hole and I want you to get out.

넌 내게 가장 큰 별이야. 내가 되고 싶은 전부가 바로 너야.
근데 왜 거기 숨어있니. 어서 거기서 나와봐


좋은 성적이 나오지 않고,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는 나를 자책하며 자기혐오가 시작될 쯤 나의 히어로 테이크댓이 내 귀에 직접 불러주는 듯 했다. 누군가에게는 한낱 노래에 지나지 않지만, 테이크댓 콘서트 가기가 버킷리스트에 있는 나에게 만큼은 진정한 응원가였다. 내 최고의 팝스타가 ‘내가 되고 싶은 전부가 바로 너’라는 데 힘을 안낼 수가 있나. 그렇게 테이크댓을 응원단장 삼아 이들이 왕성한 활동을 하는 만큼 나도 대학교에 진학하고, 졸업하고, 취업하며 나만의 성장을 이어갔다.


[도전] 그 도전 받아들이겠다

테이크댓이 나에게 그저 특별한 사연이 있는 아티스트가 되어 갈 때쯤 마지막 우연이 찾아왔다. 1995년 테이크댓을 탈퇴한 애증의 멤버 로비 윌리엄스의 솔로곡 “Love My Life”가 그 주인공이다. 테이크댓 해체의 단초였던 로비는 언제나 나에게 적과 같은 존재였다. 탈퇴 이후 솔로 아티스트로 승승장구한 로비가 테이크댓 멤버들을 저격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른 멤버들은 단 한번도 막내였던 로비에 대해 부정적인 발언을 한 적이 없어 해체 후 4인조로 재결합할 때까지의 10년 공백이 팬들 사이에서는 유독 쓰라린 기간이었다. 다행히 로비도 나이가 들며 성숙해져 서로 오해를 풀게 됐고, 2014년 앨범 [Progressed]때는 5인조 완전체 테이크댓의 하모니를 들을 수도 있었다.


그런 로비가 2016년 솔로앨범 [The Heavy Entertainment Show]를 발매하며 나에게 ‘도전정신’을 심어주었다. 그때의 난 꿈에 그리던 음반사에서 일하고 있었지만, 잦은 야근과 스트레스로 지쳐가고 있었다. 그 날 밤도 혼자 남아있었는 데 본사에서 빅뉴스라며 메일이 한통 날라왔다. 영국의 대표 아티스트 로비 윌리엄스 계약을 성사시켰으니 앞으로 잘 부탁한다는 내용이었다. 오밤중에 그 이메일을 몇번이고 다시 읽어보며, 어떻게 내가 이 다섯 명의 멋진 남자들과 이런 엄청난 우연을 얻을 수 있는 지 감탄했다. 그리고 영광스럽게도 로비 윌리엄스 마케팅 전반에 참여하며 꿈 속을 걷는 듯한 큰 보람을 느꼈다.


[Live] Robbie Williams - Love My Life

I might not be there for all your battles
But you'll win them eventually

네가 힘들때 내가 항상 옆에 있진 못할 거야
하지만 넌 결국 헤어나올 거야


40대에 접어든 로비는 데뷔때부터 가져왔던 악동 이미지를 차분히 벗고, 중년의 중후함을 더해 진정성있는 위로를 건냈다. 저음의 보컬이 매력적인 그가 “너 스스로 ‘난 내 삶을 사랑해’라고 말할거야” 라고 노래하자, 신의 계시라도 되는 듯 내가 이 일을 아직 그만 둘 때가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테이크댓의 이전 앨범을 쭉 다시 들어보며 내가 이 일을 얼마나 하고 싶어했는 지, 입사할때의 그 열정은 어디갔는 지 다시 돌아보게 됐다. 

3인조 테이크댓 (왼쪽부터 하워드 도널드, 개리 발로우, 마크 오웬) 출처: 테이크댓 공식 페이스북


테이크댓의 첫 시작은 전형적인 보이밴드였다. 해체 이후 가장 인기있던 멤버 개리는 역시 솔로로 데뷔한 로비와 끊임없이 비교되며 어느 순간 영국에서 비웃음 거리로 전락했다. 개리 뿐 아니라 각자 큰 상처를 안고 다시 만난 네명의 멤버들이 재결합을 결심하기까지의 과정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현재는 제이슨 오렌지도 탈퇴해 3인조 테이크댓이지만 이들은 팬들을 위해 언제나 긍정적이고 힘이 되는 노래를 만들어왔다. 처음 테이트댓을 접했을 때 유치원생에 불과했지만 지금의 나는 이들이 재결합했을 때처럼 30대가 되었다. 우연을 가장해 언제나 나에게 힘이 되어주긴 하지만 지금도 나는 뮤직비즈니스로 돌아가야하는 지, 아니면 새로운 분야에 도전해야 할지 고민이 많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무엇을 하던 테이크댓은 나를 응원해줄 것이다.


다음에 찾아올 우연이 언제일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운명이 나는 참 좋다.




작가의 이전글 팬데믹 시대의 뮤직비즈니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