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성적인 외모에 치이고, 음색에 치이는 걸크러쉬의 표본
세상에 70억의 인구가 있다면 각기 다른70억개의 취향이 존재한다. 특히 음악은 점점 세분화되고, 개개인의 입맛에 따라 장르별 매니아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더욱이 2000년대 들어 디지털 음원이 보편화되며 인디음악 역시 더이상 예전과 같은 마이너로 취급받지 않게 됐다. 덕분에 성소수자 아티스트들 역시 자신과 같은 정체성 문제를 겪는 팬들을 위해 공연을 통해, 인터뷰를 통해, 무엇보다 자신의 음악을 통해 대변인으로서 기꺼이 활동하고 있다.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아티스트는 LGBTQ+계에서 큰 지지를 받는 미국의 여성 솔로 아티스트 엘피(LP)다. 밥 딜런을 연상시키는 헤어스타일, 가슴의 배모양 타투, 블레이저 자켓, 그리고 사진에는 없지만 우쿨렐레가 엘피의 트레이드마크다. 덕분에 한때 우쿨렐레 붐을 일으키기도 했던 세계적인 기타 브랜드 마틴기타의 최초 여성 앰배서더로 2012년부터 활동하고 있다. 게다가 작곡가로도 성공하며 ‘음악 외길’을 부지런히 걸어왔다. 가장 유명한 곡으로는 ‘Rihanna’의 “Cheers (Drink To That)”, ‘Christina Aguilera’의 “Beautiful People” 이외에도 ‘Cher’, ‘Backstreet Boys’의 곡을 써주었다.
하지만 그녀라고 처음부터 탄탄대로를 걸은 것은 아니다.
[Live] LP – Lost On You
2006년 세계적인 뮤직컨퍼런스 SXSW에서 인상깊은 공연을 펼쳤던 엘피. 그녀와의 계약을 성사시키기 위해 여러 음반사가 경쟁적으로 참여했으나 데뷔 이후부터 “Lost On You” 전까지 여러 레이블을 옮겨다녔다. 이 곡은 그 중에서도 탑3 음반사 워너와의 계약 파기 이후 발매된 곡으로 그녀를 놓쳤던 음반사들에게 쓴 맛을 보여줬다. 그녀의 곡 중 가장 큰 성공을 거뒀으며, 본인이 말하길 자신이 쓴 곡 중 가사가 가장 아름다운 곡이라고 한다. 이별 이후 연인을 그리워하는 내용이지만 실제로는 바람을 피워 헤어진 연인과 결별 1년 전에 쓴 곡이다. 여러모로 의미가 있어서인지 특히 이 라이브는 나를 포함한 많은 팬들이 엘피를 처음 접한 영상이자 곡이다. 라이브 속 엘피의 얇고 카랑카랑한 보컬은 여러 리뷰를 통해 극찬을 받았으며, 오페라를 전공했던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고음부분을 내 지를 때 탄성을 자아낸다.
엘피에 관한 인터뷰나 리뷰를 찾아보면 특이하게도 '속된 말로 팔리는 상품이 아니다'라는 문구를 찾아볼 수 있다. 아티스트에게 이런 무례한 말이 어디있나 싶겠지만 엘피 역시 먼저 언급하고는 한다.
내 음악의 인디 본성을 몰랐던 것 같다. 대중음악이라는 울타리 안에 있는 게 좋긴 하지만, 내 음악은 좀더 복잡하다. 메이저 레이블은 상업적으로 다듬어지길 바랐지만 내 음악의 특성, 특이함이 사라지는 것이다.
분명 레이블에서 탐내는 인재는 맞으나 확실하게 수익을 내주는 요새 음악과는 거리가 있다는 뜻이다. 지금이야 유럽, 미국 등 전세계 투어를 돌만큼 성공해 본인이 하고 싶은 음악을 할 수 있어 좋다고 답했지만, “Lost On You” 발매직전 계약이 엎어졌을 때는 ‘이제 어떻게 해야하나, 이 길이 맞나’ 걱정이 컸다고 한다.
[Live] LP – Girls Go Wild
2018년 발매한 가장 최근 정규 앨범 [Heart To Mouth]. 연인관계에서 겪을 수 있는 사랑, 불안함, 속죄 등 모든 복잡한 심경이 담긴 앨범이다. 이 앨범의 첫번째 싱글이었던 “Girls Go Wild”는 쾌활한 분위기의 개러지 곡으로, ‘난 아웃사이더계의 무법자’라는 가사가 인상적이다.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인 우클렐레를 든 모습도 볼 수 있다. 곡 전반에 걸쳐진 엘피의 허밍, 우쿨렐레 사운드, 휘파람 소리까지 듣고나면 당장 어디든 떠나고 싶은 생각이 든다.
[MV] LP - Recovery
이 곡은 이별에 대한 가사와 애절한 보컬 덕에 나에게는 가장 먹먹한 곡으로 다가온다. 잔잔한 피아노 멜로디를 기반으로 한 "Recovery"는 이별 후의 심정을 현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엘피는 주로 그녀의 경험을 토대로 곡을 쓰는데, 이 곡 역시도 그녀와 전 연인의 사연이다. “’Recovery’란 상처에서 나아진다는 뜻이다. 헤어진 연인에게 다시 연락하는 것은 스스로에게 독이 된다. ‘회복하기 위해 혼자만의 공간과 시간이 필요하다’라는 교훈을 내 스스로에게 되뇌이기 위해 쓴 곡으로 나와 그녀가 서로에게 중독되었던 관계를 노래했다”
엘피의 곡들을 찬찬히 들어보면 대중적이며 동시에 인디적이다. 그래서인지 다른 가수들과 달리 팬층이 무척이나 넓다. 60대 여성이 다가와 ‘자신의 감성을 다시 풍성하게 해줬다’라고 하거나, 공연장에서는 50대 중년 남성이 눈물을 흘리며 즐기는 모습 등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다양한 팬을 보유하고 있다. 그 중 아티스트로서의 엘피뿐 아니라 한 어른으로서 그녀의 역할을 빛내 준 팬들이 있다면 바로 성소수자들일 것이다.
인터뷰를 보다보면 정체성에 관한 질문이 더러있다. 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말을 인용하며 글을 마치려한다.
“정체성 문제를 겪는 어린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생겼는 지, 누구인지 크게 상관하지 않았으면 해요. 자기의 감정을 믿으세요. 저도 처음에는 이게 무슨 말인지 몰랐지만, 옆에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이 있을 거에요. 이미 우리는 사회속에서 다르게 분류되곤 해요. 하지만 이 문제 자체를 생각하지 않았으면 해요. 우리는 자기 자신을 믿어야하고 내가 누군지 진실되게 살아야 해요. 자기가 사랑하게 된 사람을 사랑하란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