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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헤라디야 Nov 15. 2023

나이 든 고양이를 부탁해!

언젠가 맞닥뜨려야 할 현실

기관지염으로 골골대는 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거의 이틀마다 글을 올리다가 약 열흘을 훌쩍 넘겨 버리다니, 시간의 흐름은 이리도 빠른 것이구나. 글을 쓰기 힘들어진 이유가 또 하나 있다. 위층 사는 친구의 노묘를 15일간 돌보게 된 것이다.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끼리 같은 건물에 산다는 건 꽤나 편리한 일이다. 혹시라도 집을 비울 일이 생기면 서로 고양이를 돌봐 주면 되니까. 우리는 서로의 집 열쇠를 지니고 있고, 그동안 어느 한쪽이 여행을 가게 되면 다른 한 사람이 고양이를 돌봐주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올 가을에 헝가리에 다녀왔을 때도 이 친구에게 신세를 졌다. 친구는 9일간 날마다 내려와 고양이들에게 밥과 간식을 주고 화장실을 치워 주었다. 드디어 그 빚을 갚을 때가 된 것이다.


문제는 이 노령의 고양이가 최근 들어 신장과 심장 관련 진단을 받았다는 것이다. 안 그래도 걱정이 많은 성격인 친구는 인터넷으로 온갖 검색을 하며 고양이의 증상을 덜어줄 방법을 찾아 왔다. 그러던 차에 15일간 출장을 가게 된 친구는 휴대폰도 잘 쓰지 못할 것 같다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한때 왕성한 식욕으로 간식을 달라고 조르던 친구의 고양이는 이제 처방식과 특수 간식만을 먹어야 하는 몸이 되었다. 친구는 미안하지만 하루에 두 번씩 와서 고양이를 봐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당연히 알겠다고 했다. 건강이 좋지 않은 반려동물을 두고 어쩔 수 없이 장기간 집을 비우는 심정이란 어떤 것일까.


그렇게 해서 하루에 약 1-2시간씩 윗집에 올라가 고양이를 보살피게 됐다. 처음 열흘 간은 마른기침을 토해내며 위층으로 향했다. 고양이는 늘 침대 위에서 도도하게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두 번은 문 앞으로 마중을 나오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아침과 저녁에는 침대 위에 누워 나를 맞이했다. 많이 달라졌구나. 예전에는 문을 열면 곧바로 달려왔었는데. 친구는 고양이를 돌보는 방법에 대해 구구절절이 적은 A4 용지 두 장을 남겨 놓고 갔다. 아침에는 처방식 건사료를 1.5스쿱, 유산균 가루를 뿌려서 줄 것. 저녁에는 처방식 습식 사료에 영양제를 섞어 줄 것. 대충 그런 내용이었다.


실물과는 그리 닮지 않았지만 그림 한 컷.


그런데 곧 문제가 생겼다. 고양이는 즐겨 먹는다던 습식 사료에 좀처럼 입을 대지 않았다. 나중에는 습식 사료만을 먹어야 한다는데 이를 어쩔 것인가. 그건 내가 걱정할 일은 아니었지만 일단 최대한 많이 뭔가를 먹여야 했다. 노묘는 체중이 많이 줄어들면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나는 사비로 인터넷에서 고양이 신장 케어 간식을 여러 개 주문했다. 세 종류를 주문했는데 고양이는 그중 한 종류밖에 먹지 않았다. 까다로운 녀석 같으니. (내 돈을 돌려내라!) 그래도 건사료는 잘 먹는 고양이가 기특했다. 살고자 하는 의지는 충분하구나. 다만 입맛이 까탈스러울 뿐이었다.


신장 케어 츄르를 습식에 섞어서 줘 봤다. 영악한 녀석은 츄르만 핥아먹고 정작 습식 사료는 한 입도 먹지 않았다. 이번에는 블렌더를 가져가서 츄르와 습식을 함께 갈아서 줘 봤다. 처음 며칠은 먹는 척을 하더니 또다시 입도 대지 않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싱크대 밑에 보관 중인 간식을 달라고 그 앞에 가서 계속 애웅 야웅 울어댔다. 답답할 지고. 이 녀석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쉬크함의 결정체인 윗집 고양이. 간식 달라고 조를 때만 빼고.


그렇게 고민하면서 하루에 두 차례씩 위층으로 향한 지 14일째. 이제 내일이면 친구가 돌아온다. 그렇게 생각하면 어깨가 조금은 가볍게 느껴진다. 그렇지만 마음은 여전히 무겁다. 이제 친구는 고양이에게 처방식 습식 사료를 어떻게 먹여야 할지 궁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성공 여부는 고양이의 남은 수명 및 건강 상태와 직결될지도 모른다. 고양이가 하루 사료를 거부할 때마다 친구의 가슴은 까맣게 타들어갈 것이다.


이제 우리 집 1번이도 열 살이다. 몇 년 후에는 같은 고민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어떻게 해야 이 아이를 더 오래, 더 건강하게 살려놓을 수 있을까. 그러려면 고양이 본묘(?)의 협조도 필요할 것이다. 고양이들에게 지상에서 허락된 시간이 인간에 비해 상대적으로 지극히 짧다는 것이 아쉽기도 하지만 그것조차 현대 수의학 및 사료와 안전한 생활공간의 힘을 빌어 늘어난 수명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길고양이의 수명은 3-5년에 불과하다.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는 더러 스무 살을 넘기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 고양이를 '대학에 보낸다'라고 표현한단다. 20년이면 사실 그리 짧지만은 않은 세월이다.

 

그토록 짧고도 긴 시간 동안 우리와 함께해 주는 고마운 보들보들 푹신푹신한 존재들. 우리는 고양이가 우리 곁에 머무는 수년의 시간이 하루하루로 이뤄진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그 하루하루를 감사한 마음으로 보낸다면 고양이와 함께하는 시간은 상대적으로 더 길고 충만하게 느껴질 것이다. 고양이와 함께하는 하루하루는 그 자체로 값진 선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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