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노동에 대한 정당한 보상권은 왜 필요한가>
[목차]
1. 미국작가조합과 미국배우조합의 파업이 주는 의미
2. 창작자들은 노동의 정당한 권리를 보호받고 있는가?
3. 저작권법 개정을 둘러싼 쟁점
4. 정당한 보상권(저작권 개정)이 중요한 이유
지난 5월 2일, 미국 영화 및 방송 프로그램 작가로 구성된 미국작가조합(WGA, Writers Guild of America)이 넷플릭스, 디즈니, 애플 티비 등과 같은 글로벌 디지털 플랫폼이 포함된 영화·TV 제작자연맹(AMPTP, Alliance of Motion Picture and Television Producers)를 상대로 작가들의 처우와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는 파업에 들어갔습니다. 7월 4일에는 미국배우조합(SAG-AFTRA, Screen Actors Guild‐American Federation of Television and Radio Artists)이 역시 파업에 동참하면서, 헐리우드를 포함한 미국의 모든 영상 제작 프로세스가 사실상 전면 중단된 상태에 들어갔습니다. 미국작가조합 소속 작가 11,500명이 파업에 참여했고, 미국배우조합의 16만 명이 파업에 합류하면서 역대 최대 규모의 파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들 파업의 쟁점 중 가장 큰 이유는 OTT 중심의 영상 유통 구조의 변화입니다. 기존의 극장과 TV방송 중심의 산업구조가 넷플릭스, 디즈니 플러스 등으로 대표되는 스트리밍 서비스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창작자들의 노동환경이 불리해지고 공정한 수익분배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단적으로 OTT 이전의 시대에는 재방송을 할 때마다 재방료가 배우, 작가들에게 지급되었으나, OTT에서는 재방송의 개념이 없고 한번 업로드될 때 고정된 로열티만 받는 방식으로 바뀐 것입니다. 게다가 OTT에 올라가는 영상이 지속적인 구독자 증가와 같은 수익 증가에 기여하는 만큼, 인기도에 따라 재방료를 책정해달라는 창작자의 요구에 OTT는 내부 자료를 공개할 수 없다는 이유로 일축을 해왔습니다.
또 다른 이유는 AI를 활용한 인력 감축 계획으로 인해 실질적 일자리 총량이 줄어드는 문제입니다. 작가들의 경우 ChatGPT와 같은 AI를 사용한 대본 작성이 가능해지면서, AI가 과거 작품을 토대로 생성한 대본 초안을 작가들이 수정만 하는 방식으로 작가의 역할이 변하게 된 것입니다. 과거 대본을 쓰는 주체였던 작가가 이제는 AI의 보조작가로 전락하게 될 가능성마저 공상과학 속의 이야기가 아니게 되어버렸습니다. 이는 배우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AI가 배우들의 얼굴과 목소리를 딥페이크 기술을 통해 생성할 수 있게 되면서, 영화나 드라마를 만드는 과정에 당사자인 배우의 도움 없이도 영상 제작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배우의 얼굴과 몸, 목소리는 초상권으로 보호받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상대적으로 힘이 없는 무명 배우들의 생체 정보를 스캔한 뒤 제작사가 소유권을 독점하게 되면 단역배우와 엑스트라들이 설자리가 없어지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은 미국만의 문제일까요? 당연히 아닙니다. OTT의 대두와 그에 따른 창작자의 노동권과 권리의 문제는 우리나라에서도 중요한 쟁점이 되고 있습니다. ‘구름빵 사건’ 이후로 창작자의 정당한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법 개정의 시도는 꾸준히 있어왔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영상저작물에 대해 영상 제작자가 저작의 권리를 양도받은 것으로 간주하는 영상물 특례조항(저작권법 100조)을 보완하기 위한 개정안(유정주 대표발의안, 성일종 대표발의안)이 법안 통과를 앞두고 주요한 쟁점이 되고 있습니다.
<창작자 권리 보장을 위한 저작권 개정안>
저작권법 개정안 여러 차례 발의되었고, 한국방송협회,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한국IPTV방송협회, 한국인터넷기업협회, 한국OTT협의회 등으로 구성된 ‘미디어플랫폼 저작권 대책연대’는 저작권법 개정 법안들이 창작자의 과도한 이익을 대변하는 법안이라며 반대입장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대해 창작자 단체인 한국영화감독조합(DGK), 한국시나리오작가조합(SGK), 한국독립PD협회는 재반박 입장문을 내며 첨예한 대립구도를 드러내기도 했다. 현재 저작권법 개정안은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도 몇 차례 올라왔지만, 창작자 측과 영상 제작 및 유통업체 간의 의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현재 저작권법 개정을 둘러싼 쟁점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첫번째로 OTT 등 영상산업계의 보상 부담을 고려하여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문화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공정한 보상권이 도입될 경우 보상금 규모 추정치를 제시한 바 있습니다. 매출액에 2.5% 요율을 적용해서 보상을 지급하는 경우, OTT(넷플릭스·웨이브·티빙·왓챠 4개사) 업체가 지급해야 하는 금액은 총 338억 원 규모로 예상했습니다. 그리고 국내 OTT 업계는 최근 적자가 누적되고 있는 상황이어서 이러한 보상금 지급이 발생되면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2022년 기준 웨이브는 1,213억원, 티빙은 1,191억원의 영업 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 이러한 주장이 설득력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국내 OTT에 대한 보호만큼이나 국내 창작자들과 창작생태계를 보호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즉, OTT와 창작자들이 공존할 수 있는 적절한 선을 찾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위의 이유는 정당한 보상권 자체가 기각되어야 할 만한 이유는 아닙니다. 게다가 OTT업체가 지불해야 할 338억 가운데 상당부분은 넷플릭스과 같은 해외 OTT가 지불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넷플릭스코리아는 국내 토종 OTT들의 적자와 대조되게 2022년 기준 7,732억 원의 매출과 142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습니다. 즉, 국내 OTT와 창작자라는 이분법으로만 이 문제를 볼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창작자에 대한 보상금을 줄인다고 국내 OTT의 적자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는 않는다는 것도 생각해봐야 합니다. 넷플릭스의 사례를 보듯이 결국은 업체 경쟁력을 높이는 방안을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며, 최악의 경우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이 될 경우 국내 창작자와 OTT 모두 몰락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두 번째는 정당한 보상이 사적자치의 계약 원칙에 위배된다는 것입니다. 사적자치의 원칙이란 민법의 기본원리로 자기의 의사에 따라 법률관계를 스스로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쉽게 말하면 저작권은 사적인 계약이기 때문에 별도의 법(저작권법)을 통해서 규제하거나 간섭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적자치는 원칙 내에서 원활할 해결에 대한 가능성이 있을 때 적용이 되는 원리입니다. 현재 저작권법 쟁점은 거대자본과 창작자라는 명백한 힘의 불균형이 존재하는 관계에서 발생되는 문제라는 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적자치의 원칙을 적용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셋째로, 정당한 보상권이 도입되면 제작자에게만 과도한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콘텐츠의 제작 과정에서 흥행 또는 실패에 대한 리스크는 제작사가 온전히 지고 있는데, 정당한 보상권으로 인해 리스크에 대한 부담이 없는 창작자와 수익을 나누는 것이 제작자 입장에서는 불합리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불합리함은 이후 콘텐츠 투자에 대한 위축을 불러올 수 있고, 수익이 보장된 안정적인 작품만 찾게 됨에 따라 오히려 신진 창작자의 기회를 박탈하는 효과를 가져 올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즉, 정당한 보상권으로 인한 결과가 창작자에게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주장인데, 이 또한 논리적 비약과 많은 가정들을 전제하는 주장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리스크에 대한 예측과 대응이 투자의 본질이라는 점에서, 투자에 대한 리스크와 책임을 창작자에게 지우는 것은 또한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게다가 창작자 개인의 관점에서 보면, 창작자들은 이미 창작의 과정에서 많은 리스크를 지고 있는 것과 다름 없습니다. 영화를 한편 만들더라도 이 과정에 창작자들은 몇 년의 시간을 투자하는 경우가 많고, 그 결과를 온전히 개인이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외에서 직접적인 계약의 당사자가 아닌 창작자들이 정당한 보상권을 OTT 등에게 직접 요구하는 것에 대한 적절성의 여부나, 민간 기업의 영업의 자유에 대한 침해 소지 여부 등의 여러 가지 지적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지적들은 대부분 부수적인 문제제기에 불과하며, 협의의 과정과 법리적 보완 과정을 통해서 충분히 해결이 가능한 내용들입니다. 그리고 해외에서는 정당한 보상권과 같이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법제도가 이미 도입되었거나 도입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대표적으로 유럽연합의 경우 이미 2019년에 「유럽연합 디지털 단일 시장 저작권 지침」(DSM)을 마련하여 글로벌 디지털 환경에서 디지털 플랫폼이 콘텐츠를 재사용하여 획득한 수익에 대한 대가를 저작자에게 분배하는 규정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 문제는 창작자의 권리보호를 위한 제도 마련이라는 목표도 있지만, 글로벌 콘텐츠 유통 생태계에서 국제적 상식과 표준을 맞춰나간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정당한 보상권 도입을 둘러싼 저작권법 개정은 왜 중요할까요? 사실 저작권법 개정을 통한 창작자의 권리 보호와 노동권 보장은 최근의 일만은 아닙니다. 멀게는 구름빵 사건을 시작으로 검정고무신 작가 사망 사건까지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는 논의는 꽤 오래되어온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창작자 권리보호를 위한 법제도와 관련된 논의는 그 이후로도 단 한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쟁점이 되는 저작권법 개정 논쟁은 그 과정들의 결과입니다.
물론 저작권법 100조 영상특례조항에 대한 개정은 창작자 중 영상물에 대한 저작권자, 그 중에서도 감독과 작가에 국한된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작법 개정을 통해 당장 창작자의 권리와 노동권 증진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이라도 이제는 더 이상 이 문제가 그들만의 문제나 일부 창작자들의 이야기로 치부해서는 안 됩니다. 안정된 창작환경과 지속가능한 문화콘텐츠 창작생태계를 만들기 위해서 뭔가 변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출발점이 창작자 권리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법제도인 저작권법 개정안 통과가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