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감(Regret): 마음에 차지 아니하여 섭섭하거나 불만스럽다
고 김용균 추모5주기 특별기획전시 <유감>은 지난 11월 25일~12월 3일까지 문래동 대안공간 이포에서 진행되었다. 이 전시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필요성과 산재로 인한 죽음, 살아 남은이들의 추모와 앞으로도 계속 살아야하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로 기획했다. 기획은 3가지 형식과 내용으로 나누었다.
첫 번째는 지난 2018년 12월 10일 태안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컨베이어벨트 상태점검을 하다 벨트와 롤러사이에 끼여 사망한 고 김용균의 공간이다.
이 공간은 고 김용균의 유품과 그의 유품들이 의미하는 것들을 생각해 보는 공간이다. 전면에 설치한 두 장의 사진. 한 장의 사진은 고용노동부 산하 안전보건공단에 이름도 없는 수천 명의 ‘00현장 00사고로 사망’ 이라는 기록속의 한 줄로 남았을지도 모를 그의 이름을 세상에 알려주었고 하청노동자, 불법파견, 차별, 원청의 책임회피등등 비정규직의 문제와 산재사망, 중대재해기업처벌이라는 사회적 숙제를 던져주는 계기가 되었다. 다른 한 장의 사진은 고 김용균 추모1주기 때 김미숙어머니가 아들의 묘지 앞에서 발언하는 사진으로 어머니 삶의 변곡점이라 생각했다.
두 장의 사진아래 고 김용균의 유품은 청년노동자의 피곤한 일상이 보인다. 사발면과 치약, 작업복과 슬리퍼, 켜지지 않는 작은 랜턴, 우산, 이어폰과 과자. 유품을 설치하던 중 작업복 안주머니에서 작은 열쇠 하나가 새로 발견되었다. 열쇠에는 준혁 이라는 이름이 적혀있었다. 함께 일하던 친구의 이름이다. 발전소에서 온 분들도 정확하게 용도를 알지 못했으나 벨브작업장으로 들어가는 출입문 열쇠라고 짐작할 뿐이었다. 전시기간 중 고 김용균의 시신을 처음 발견했던 이인구님의 방문으로 이 열쇠의 용도를 정확히 알 수 있었다. 이 작은 열쇠는 컨베이어벨트를 운전시키기 위해 쓰이는 열쇠였고 벨트운전을 책임지던 사람이 준혁 이라는 것이었다.
준혁은 고 김용균 사고이후 벨트 책임자로 자신을 자책하며 엄청 힘들어했다고 한다. ‘제가 벨트만 안 돌렸어도...’ 이인구님의 시간도 준혁의 시간도 함께 일한 모두의 시간도 멈춰버린듯하다.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김미숙 어머니가 소중하게 보관 중이던 자격증과 학생증 그리고 군번줄과 용균이가 직접 종이로 만든 절대반지도 공개했다. 절대반지는 2018년 당시 인기 있던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사우론이 자신의 영혼과 권능을 녹여 만든 반지로 소유주에게 걸 맞는 능력을 부여한다. 아마도 청년노동자의 삶에 희망 같은 반지가 아니었을까. 그가 죽기 전 인터넷으로 주문했던 절대반지는 그가 죽은 뒤 집으로 배송되었고 어머니는 이 반지를 모란공원 그의 묘역에 함께 넣어주었다. 마지막 유품으로 손목시계가 있다. 산산이 부셔진 시계는 벨트에 낀 그의 모습을 연상시켜 보고 있는 것도 버거웠다. 김미숙어머니가 유품을 가져 오던 날 눈치 없는 나는 왜 이리 기운이 없어 보이냐 물어봤었다. 다시 꺼내 봐야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어리석은 질문이었다.
고 김용균의 공간 옆에는 김미숙 어머니의 시간이다. 아들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투사가 되어버린 어머니가 지난 5년간 어떻게 싸워왔는지 연표로 정리하여 설치했다. 김용균재단이 만들어지고 중대재해처벌법이 만들어지기까지 그리고 여전히 끝나지 않은 재판과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그 기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도록 고군분투하는 모습이다.
어머니의 시간 옆에는 고 김용균의 죽음이후 산재로 사망한 이들을 아카이브형식으로 구성했다. 언론을 통해 알려진 이름들을 중심으로 연도순으로 서술해 놓았고 그 아래 팬과 ‘당신이 기억하는 죽음을 남겨주세요’라는 메모를 써 두었다. 관람자들 중에 나의 오빠가 00년 0월0일에 어느 현장에서 일하다 죽었다며 기록을 남기기도 하고, 기록이 잘못되었다며 연도를 수정해 주기도 했다. 기획 의도는 좀 더 많은 이들이 산재로 죽어간 이들을 기억하고 서로가 기억하지 못하는 죽음을 공유하여 새롭게 아카이브 하는 것이었다. 고용노동부의 이름 없는 공식기록이 아닌 이름으로 불려 지는 죽음들을 기록하고자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벽에는 고용노동부 산하 안전보건공단에서 정리한 수천 명의 이름 없는 산재 사망내용을 2018년 고 김용균의 죽음이후 부터 현재까지 나열식으로 정리하여 설치했다. 이 많은 죽음 앞에 고용주와 회사의 처벌은 있었는지 묻고 싶었다.
두 번째는 산재사망으로 고통 받는 가족들에게 또는 언론을 통해 회사와 고용주들은 어떠한지 묻는 나쁜 말들의 나열이다. ‘병 있는데 숨기고 입사했지?’ ‘재수 없게 여기서 죽었냐’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해서 죽은 거다’ ‘위험한 현장이 아니다’ ‘작업자가 부주의해서 죽은 거다’ ‘하청업체가 시킨 일이다. 우리와는 상관없다’ ‘근로 여건이 열악하지 않다’ ‘업무요청을 한 것이지 업무지시를 한 것이 아니다’ ‘얼마 원하냐’ 등등 이 어이없는 말들이 죽음을 대하는 책임자들과 회사의 입장이다. 처음엔 발뺌하고 마지막엔 유감으로 정리되는 노동자의 죽음과 사용자의 태도에 분노의 시간이 되길 바라는 설치였다. 전시장 입구에서부터 이런 쓰레기 같은 말들로 기분이 엉망이 되길 바라는 기획이었다.
세 번째는 노동자의 안전장치다. 회사에서 지급하는 안전물품이 노동자에게 진심 안전한 것인지. 그나마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에게는 지급되지 않는 안전물품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가 흔하게 접하는 노동의 현장을 보여주고 싶었다. 노조에 요청하여 다양한 직종의 노동자들의 물품을 전달받았다. 처음 기획의도는 현장에서 사용하다 버리는 물품이나 쓰고 있는 물품과 노동복이었다. 하지만 보내온 물품들은 대부분 깨끗한 새것들이 많았고 노동복은 일부현장의 것뿐이었다. 직종별 보내준 물품의 수는 많았지만 노동현장을 그대로 구현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또한 복장을 입체화 시키려하니 마네킹등 사람의 형태를 구현할 도구가 필요했는데 이 또한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중간에 기획을 바꾸고 현장성을 살리기 위해 작업장의 사진을 배경으로 하고 안전물품을 오브제형식으로 설치하기로 했다. 노동의 직종을 정리하여 사진가들에게 사진요청을 했다. 급하게 요청했음에도 빠르게 사진들이 도착했고 전달받은 사진들은 전시장 벽 싸이즈에 맞게 편집하고 안전물품인 오브제를 부각시키기 위해 흑백으로 전환해야했다. 사진가들은 이 모든 걸 아무런 요구 없이 사용가능하도록 해주었다.
콜센터 노동자는 사진이 없다. 국민들의 개인정보를 처리하는 곳이라 일하는 사람조차 현장 사진을 편하게 찍을 수 없다고 한다. 항공승무원은 노동자의 편의를 위한 승무복이 아니라 보여지기 위한 복장으로 신축성이 전혀 없다. 산림청 산불진화복은 방염처리 되어있지만 방수처리가 안돼 물호스 작업을 하거나 헬리콥터에서 쏟아지는 물줄기에 온 몸이 젖은 상태로 진화작업을 한다. 자동차노동자는 하청노동자와 정규직 노동자가 하는 일이 같다. 복장도 같다. 다만 하청노동자의 경우 로고가 다르다. 급식노동자의 장화는 물기있는 조리공간에서 미끄러지기쉽고, 택배노동자의 잠바는 한겨울을 버티기엔 역부족이다. 조리사는 조리장갑을 개인돈으로 장만해야한다. 건설노동자 또한 하청노동자의 경우 작업화등 안전장비를 개인이 장만해야한다. 노동자들은 안전장비의 불안전함을 쉼없이 이야기한다. 우리의 노동은 안전한가!
김용균 추모5주기 특별전시 유감(Regret)은 김용균재단에서 매년 추모주기에 진행하는 기획사업의 하나이다. 기록을 위해 글로 정리하다보니 서술과 감정이 뒤죽박죽이지만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보내주신 물품들을 모두 전시에 사용하지 못한 것에 미안하고 대안공간 이포 전시공간을 빌려주신 관장님께도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공간 구성과 작품 설치등 관장님과 상의 할 수 있어서 큰 의지가 됐다. 전시장이 문래동 철공소 골목 안에 위치해 노동의 소리까지 전달 할 수 있어서 기획의도가 한층 잘 드러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