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몸을 새롭게 함으로써, 생태적 감수성을 제안하는 예술가 홍이현숙
홍이현숙은 한국의 페미니스트 예술과 생태 예술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예술가 중 한 명이다. 생태 예술은 지속 가능한 지구와 자연, 인간의 미래에 대한 염려와 그 개선을 고민하고 실천하는 예술이다. 페미니스트를 지지하는 생태 예술가로서 홍이현숙은 인간과 비인간의 이분법적 사고를 비판하고 인간 중심적인 인본주의 정신을 뛰어넘어 새로운 생태적 감각과 감수성을 제시하고 있다. 1988년 《은닉된 에너지》을 시작으로 <구르기>(2006), <폐경의례>(2012), <마고할미의 DMZ 팬파이프>(2015), <사자자세>(2016), <고래자세>(2018), <석광사 근방>(2020) 등의 작업을 하였고, 최근 2020년 아르코 미술관에서 연 개인전 《휭, 추-푸》은 많은 비평가들의 주목과 극찬을 받았다.
그녀는 흔쾌히 인터뷰에 응해 주었다. 나는 2024년 3월 4일 구기동에 있는 그의 작업실에서 인터뷰를 하였다.
여성으로서 예술가가 되는 길은 결코 쉽지 않다. 버지니아 울프는 글을 쓰기 위해 자기만의 방과 연간 500파운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여성 예술가의 근대적 주체 형성을 그려냈다고 평가받는 노르웨이 작가 코라 샌덜(Cora Sandel)은 자전적 소설에서 가부장적 원가족과의 관계, 섹슈엘러티와 재생산, 관계와 돌봄 노동이, 여성이 예술 작업에 전념하는 것을 어떻게 좌절시키는지 보여주고 있다. 여성이 예술을 통해 자아실현을 추구하는 길은 전혀 녹록치 않다. 홍이현숙은 이러한 복병들과 어떻게 씨름해왔을까?
“아이들이 초등학교 들어가자마자 작업을 시작했어요. 작업을 할 때도 아이들을 데리고 다녔어요. 통일전망대에서 설치 작업을 할 때도 (《꼬리를 흔들다》(2002)), 아이들을 전망대까지 데리고 갔어요. 아이들이 너무 이쁘고 키우는 게 정말 좋았지만, 결혼을 안 했으면 어땠을까 이런 생각도 지금은 들어요. 그때는 결혼 밖에 집에서 나올 방법이 없었는데, 혼자 스스로 독립하고 그랬을 조건이었으면 결혼 안 했을 것 같아요. 지금은 조금 후회되는 게 있어요.” 그러나 동시에 그는 예술 작업을 할 수 있는 좋은 환경도 있었다고 한다. “남편 식구들이 다 작가여서 나의 작업 활동을 이해 받을 수 있는 환경이었어요. 설치하러 어디 가고 재료들로 지저분한 설치 예술가와 살아서, 작가가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인지 몰랐다며, 외로웠었다고, 지금은 조금 아쉬워하지만 남편도 많이 이해해줬고, 아이들도 독립적으로 키워줘서 고맙다고 하고요.”
경제적 자원은 어땠을까?
“설치 작업할 때는 작업실이 없었지만 영상 작업 시작하니 누가 작업실을 주었어요. 경제적인 것은 남편이 돈을 벌어서 그에 기댔어요. 하지만 자존심이 상하거나 하지 않았어요. 나는 예술 작업을 열심히 했고, 다른 방식으로 노동했으니까요. 상사나 클라이언트 눈치 보는, 고객을 만족시켜주는 자본주의 체제에서의 노동을 안 한 거죠. 요즘 젊은 친구들은 경제적으로 독립해야 한다고 꼭 돈을 안 벌면 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거 같아요. 하지만 그건 자신의 존재 이유를 경제적인 가치에만 두는 거잖아요. 베짱이도 살 이유가 있고 충분히 연주하면 되지 않아요? 여성의 독립을 너무 경제적 독립에만 가치를 두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냥 남성에게 기대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아요. 비빌 언덕이 있으면 용감하게 비비면 돼요. 사실 여성의 돌봄 노동을 따지면 정말 많은 일을 하고 있잖아요.”
나인투식스(9 to 6)로 일한 경험이 거의 없어 죄책감을 갖고 돈 걱정 안 해도 되는 ‘팔자 좋은’ 여성 예술가라는 비난에 수치심을 느끼는 나에게, 그녀의 삶의 방식과 사고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든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기도하면서도, 나부터 존재의 가치보다 필요의 가치에 우선순위를 두지 않았을까? 물론 필요의 관점에서도 우리 모두는 다른 이들의 노동에 기대고 있고 따라서 다른 사람들이 필요하다 (지금 PC로 글을 쓰고 있는 나 역시 그렇다. 키보드를 만드는 사람, 윈도우 체제를 만든 사람, 어제 워드 설치에 전화 너머 AS 준 사람, 옆에 있는 LED 전등을 디자인한 사람, 글쓰기 노동을 위해 틀어 놓은 음악을 만든 사람, 내가 끼고 있는 하드 렌즈를 처방해준 사람, 마시고 있는 커피의 원료인 커피 열매를 딴 사람 등의 각기 다른 노동이 없었으면 지금의 나의 글쓰기도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상호 의존적이며 평등하다. 혼자서 수행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조와 절대적 독립, 노력만으로 스스로를 창조하고 자수성가하는 예술가 되기를 유아적으로 공상하고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그녀의 생각을 곱씹으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라는, 그러면서 경제적으로도 사회에 기대지 말라는 자기 계발적 규범에 대해 비판적으로 생각해보게 된다.
홍이현숙은 설치 미술, 퍼포먼스, 비디오 아트, 또는 이 모두를 혼합한 형식을 통해 페미니즘과 생태 문제 의식을 표현해왔다. “저는 스토리를 만들고 이를 재미있고 유머러스하게 표현하는 것을 좋아해요. 2006년 이전에는 뭔가 미술은 이런 거다, 하는 것을 구현하고 싶었고, 통일 전망대처럼 도대체 감당이 안 되는 공간 등에서 아트 미술을 구현하는 것이 재밌었어요. 그러다 옆집에 사셨던, 동네 재개발 지역의 아파트 아줌마들 중 한 분이 자살한 사건을 계기로 영상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너무 힘들게 사시는 분들이었는데, 아이들 학교 보내고 다 모여서 화투 치고 애들에게 짜장면 시켜주고 그랬었는데. 어느 날 자다가 예사롭지 않는 쿵-하는 소리를 들었어요. 그리고 조금 있다가 그분의 어머니의 울음소리가 났었어요. 나이든 여성의 너무 깊은 울음소리… 그때부터 여성의 삶을 직시하고 들여다보게 되었어요. 설치보다 영상이 여성의 내면을 더 자세하게 보여줄 수 있었기 때문에, 집에서 퍼포먼스를 하고 그것을 영상으로 찍기 시작했어요. 영상 작업으로 내가 일상 주변에서 평소에 부딪히고 경험하는 것들을 좀 더 섬세히 표현할 수 있었어요. 좀 더 사람 중심으로 문제의식이 옮겨갔죠.”
예술가가 소통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따라 선택하는 재료와 도구, 감각과 언어, 형식과 방법이 달라진다. 이는 시각뿐 아니라 청각, 공감각이 될 수도 있고, 따라서 평면 그림뿐 아니라 퍼포먼스, 비디오 아트, 설치 미술이 될 수도 있다. 동시에 방법론은 거꾸로 주제 의식을 확장하고 변형하며 발전시킬 수 있다. 이러한 내용과 방법에 대한 상호보완적 선택은 작가의 역량과 스타일의 문제이기도 하다.
"요가같이 몸으로 하는 것은 너무 좋아요. 제가 조각가 출신인데, 이렇게 만지고 붓고 이러한 과정에서 뭘 느끼는 거 같아요. 날씨 따듯한 날에 바위 클라이밍하면서 바위를 만지면 뜨끈뜨끈하고 오돌토돌한 게 느껴지고, 그렇게 만지는 것이 나에게는 뭐랄까, 생각할 틈을 주는 것 같아요. 일상에서 무엇인가를 하는 게 좋지, 개념적이고 사변적으로 흘러가는 것을 싫어하는 거 같아요. 저는 농부처럼 바깥에서 햇빛 받으면서 일하는 직업을 가졌으면 참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운 마음도 들 때도 있죠."
홍이현숙은 몸을 사용하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몸은 삶을 맞닥뜨리고 통과하는 데 있어 누구나 가진 ‘도구’이자 ‘재료’이며, 세상과 소통하는 가장 기본적이고 친숙한 ‘언어’이다. 또 그 몸은 보편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젠더, 계급, 인종 등에 따라 사회와 일상을 다르게 경험하게 되는 ‘방법’이자 ‘형식’(위치)이기도 하다. 이러한 몸을, 그는 그의 예술의 방법론으로 삼는다. 여러 작품들에서 북가좌동 철거현장, 눈 오는 노르웨이, 몽골 사막, 광화문을 비롯한 서울 도심에서, 태화 강변에서, 꽃무늬 파란 원피스를 입고 “더 이상 잃을 게 없는 파란 꽃무늬 여성으로, 사라지는 곳 어디서나 예상치 못한 모습으로 불쑥불쑥 나와서 기존의 법을 교란”(김미정, 박수진, 윤민화, 2021)해왔다.
여성의 몸을 통해 페미니스트 예술을 풍부하게 했던 것처럼, 생태 예술에서도 그는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몸이라는 일상적 ‘도구’를 새롭게 함으로써, 스펙터클과 추상성에 갇힌 동시대 생태 예술에 대안을 제시한다. 최근의 생태 예술은 기후 변화가 가져오는 생태적 파국을 보여주기 위해 자연물을 직접 찍거나 전시장에 가져온다. 예를 들어, 빙하가 녹는 북극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드론으로 이를 촬영하고 미술관에서 이를 확대하여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론은 오히려 그 경관 감상에 그치게 하거나 그를 대상화하는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나아가 인류세, 환경 재난, 기후 위기 등의 추상적이고 ‘거대한’ 용어는 우리로 하여금 이 문제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이를 우리의 삶과 관련 없는 것으로 치부하게 만든다(김미정, 박수진, 윤민화, 2021). 그러나 기후 위기는 이미 일어나고 있는, 매우 일상적이고 친숙하며 절박한 문제이다. 예를 들어, 전기세와 채소값, 밀값, 김값 인상에 따른 사회적 약자를 포함한 보통 시민들의 곤란과 고통, 아토피 피부염이나 알레르기 비염 등 ‘환경적 질환’, 폭염으로 인한 바깥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갑작스러운 죽음, 홍수로 인한 반지하에 사는 사람들의 죽음 등등. 그러나, 홍이현숙은 거꾸로 세속적이고 일상적인 도시에서, 우리로 하여금 우리 몸의 감각들을 통해 기후 변화와 생물다양성 등의 생태 문제를 경험하게 한다. 《휭, 추-푸》의 <여덟 마리 등대>는 그녀의 새로운 시도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에서 그는 미술관 공간을 마치 고래의 몸 속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착각하게끔 공간을 설치하고, 여러 종류의 고래의 소리들을 들려준다. 우리는 우리의 익숙한 몸과 감각 기관으로 이를 느끼고 경험한다. 이를 통해 홍이현숙은 지금의 우리에게 기후 위기 해결을 위해 필요한 새로운 감각을 일깨우고 생태적 감수성을 계몽한다. 기후 위기는 누구에게나 닥친, 일상적인 문제이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세상을 경험하고 바라보는 우리의 ‘몸’을 바꿔야 한다고 제안하는 것이다. 그녀의 제안은 정치적고 급진적이다. “정치적이게 된다는 것은 다른 무엇보다 정치적인 신체, 몸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몸 만들기는 정동의 변형을 수반하기 때문이다”(문규민, 2024).
그는 몸을 도구 또는 언어로 삼을 뿐 아니라 나아가 공존해야 할 존재로 여긴다. “예전엔 정신이 신체를 다스렸는데, 요새는 거꾸로 신체가 정신을 다스리는 게 있어 신기해요. 예를 들어, 요새 꿈을 많이 꾸는데 꿈꾸다 일어나서 《금성까지 왕복 달리기》(그의 전시들을 망라한 도록 제목)에 대한 영감이 떠오른 것처럼, 내가 제어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 거 같아요. 꿈은 뇌가 꾸는 것이고 뇌는 몸의 일부이니까 그것은 몸이라고 해야겠죠. 몸이 구동하는 방식이 신기해요. 그래서 건강관리 차원보다는 몸을 어떻게 돌아가게 할까, 하는 것에 고민이 있어요.”
퍼포먼스를 하기 위해 몸을 어떻게 관리하느냐는 나의 우문에, 홍이현숙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나의 질문은 정신/의식이 몸을 통제하는, 몸과 정신의 위계적 이분법을 전제하였다. 그러나, 그는 몸을 정신/의식과 동등한 위치에서 상호작용하는 비의식(非意識)으로 보고, 그 존재를 놀라워하며 같이 살아가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이러한 탐색은 그의 작품에서 인간과 비인간의 공존을 추구하는 자세와 닮아 있다. 그녀는 <사자 자세>(2016)에서 직접 동물의 자세를 하거나 <석광사 근방>(2020)에서 원피스를 입고 고양이가 걷는 자세로, 고양이가 어슬렁거리는 돌담이나 지붕에서 엉금엉금 기어가서 눈을 맞추고 쓰다듬는다. 그는 사자와 고양이를 다가오게끔 미끼로 유인하거나 전시장에 박제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직접 고양이가 사는 곳에 가서 고양이와 같은 몸이 되고 고양이와 같은 생각을 하고자 한다. 비인간과의 공존을 탐색하면서도 “필연적으로 무언가를 대상화하고, 수동적인 자리에 둘 수밖에 없는 시각 (생태) 예술의 고민”(김미정, 박수진, 윤민화, 2021)에 그는 하나의 답안지를 내놓는다. 이러한 모색은 작품과 미술관에 한정된 실험이 아니다. 그의 대답에서 볼 수 있듯이, 이는 나의 의식이 아닌 것, 즉 몸이라는 비의식 존재를 일상적으로 경험한 데에서 나온 실천적 고민의 연장선에 있다. 일상에서의 몸과의 공존에 대한 성찰은 작업에서 비인간과의 공존에 대한 고민으로 확장된다. 이러한 점에서 홍이현숙에게 예술은 그의 삶의 방식과 방향성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의 작업은 거듭할수록 성장하고 업그레이드되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홍이현숙 역시 그의 확장되는 세계관과 작업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1988년 《은폐된 에너지》에서 처음 버드나무 작업을 했을 때에는, 버드나무밖에 보이지 않았어요. 시내에서 보는 버드나무가 저에게 정말 많은 힘을 주었는데 서울 올림픽 때문에 다 잘려나간 거예요. 그래서 5톤 트럭에 가득 실은 잘려 나간 버드나무들을 다시 전시장에 가져와 닦고 다듬고 하면서 버드나무에 대한 애도를 표했어요. 그런데 35년이 지난 작년 난지도(난지 스튜디오)에서 또 버드나무를 본 거예요. 내가 잊고 살았는데 그 사이에 다시 자라서, 살아서, 돌아왔구나! 하고 너무 기쁘고 감격스럽고 해서 부산현대미술관에서 버드나무 작업을 또 했어요. 하지만 이번에는 버드나무가 정말로 돌아온 게 맞는지 의심스러운 거예요. 우리는 무엇인가를 멸종시켜 버리면서, 그 사실을 잊어버리고 또 처음부터 없었던 양 아무렇지 않은 듯 살아가고. 멸종시킨 것, 잊어버린 것, 버린 것은, 쓰레기로 만들어진 난지도나 부산 을숙도(부산현대미술관이 있는 곳)처럼 한 곳에 쌓아두고 묻어버리면 된다고 여기고. 그렇게 계속 덮어버리며 사는 중인데, 버드나무가 돌아왔다고 행복해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정말로 버드나무가 돌아온 건 맞는지, 의심이 들더라고요. 이런 현타가 오면서 거리두기가 되더라고요.”
홍이현숙은 버드나무에 대한 자신의 애정으로 작업을 시작했고 그렇게 완성된 작업은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애도라는 생태 정치적 의미를 품었다. 그러나, 그는 인간이 버드나무를 포함한 물질과 생명을 어떻게 버리고 멸종시키며, 이러한 “버리고 버려지는” 시스템이 어떻게 유지되는 지에 대해 비판적으로 사유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이제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 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고 이를 넘어서 구조와 시스템의 변화를 꿈꾸는 “포괄적인 혁명적 정치학”(벨 훅스, 2017)까지 모색하기 시작하였다.
생태주의 예술가는 보통 작업 활동을 통해 사회에 비판적으로 개입한다. 그러나 홍이현숙은 텍스트를 넘어서 직접 행동에도 오랫동안 참여해왔다. 홍이현숙에게 예술이 혁명적 정치를 사유하는 공간이라면, 사회 운동은 이 혁명적 정치를 직접 요구하고 실천하는 공간이다. 그는 페미니스트로서, 《가상의 딸: 가족-상상의 공동체》(2005) 등을 시작으로 다른 페미니스트 작가들과 함께 예술 행동을 했었다. 세월호 참사 때는 진상 규명을 위한 청와대 앞 1인 시위를 1년 반 남짓 했었고, 기후 /동물/생태 프로젝트 집단인 아가시와 세미나와 시위, 공동 예술 작업도 같이 했었다. 작년 기후정의행진에서 문화연대와 예술가들이 함께한 기후 정의 퍼포먼스에도 함께했었다. 그는 나이가 들었지만 지금이야말로 시민 운동을 하기 딱 좋은 나이라고 한다.
“60살이 지나면 시위하기 제일 좋은 나이래요(웃음). 예전에 시위에서 피켓팅 작업을 했었어요. 시위대와 전경과 대치하는 그 긴장감 속에서, 전경들 앞에서 피켓을 들고 미뉴에트 음악에 맞춰 이렇게 저렇게 춤추듯이 걸었었어요. 그러니까 손자뻘인 젊은 전경들이 할머니 앞에서 전의를 상실하는 거예요 (웃음)… 고래가 폐경하면 할머니 고래가 크릴새우가 어디에 얼마만큼 있다는 정보 등등을 가르쳐주는 생존 교육을 담당한대요. 사람도 아이 다 키우고 이런 저런 시기를 지나 폐경을 하면 가뿐하잖아요. 생리에 들이는 에너지만큼 바깥 쪽에 써도 될 것 같고. 나이 먹은 사람들도 잘 엮어 내기만 하면 다들 참여할 의지와 태도를 가지고 있어요. 진짜로.”
그러나, 시민운동이 축소되고 그 발화의 힘을 잃어가는 지금, 그는 예술가로서 어떻게 사회운동에 참여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예술과 활동을 넘나들기 하는 게 필요할 거 같아요. 활동에서 예술성을 발견하기도 하고, 활동 현장에서만 포착되는 지점들이 있고. 하지만 둘 다 하는 게 쉽지가 않죠. 예술가들끼리도 연결이 잘 안 되어 있는 거 같아요. 동물권 세미나를 하는 친구들도 되게 열심히 하지만 서로 잘 연결 안 되어 있고, 동물권 비건 작가들이 많을 거 같지만 막상 별로 없기도 하고. 활동가와 예술가도 서로 같이 소통하며 넘나들기 하는 것도 중요해요. 하지만 막상 부딪히면 비껴가는 부분들이 있어요. 각자 갇혀 있다는 느낌? 예술가가 좀 내향적이라 먼저 나서서 못하는 기질도 있는 거 같아요. 나도 여기저기 후원도 하고 같이 하자고 하면 기꺼이 참여하고 너무 잘할 거 같은데, 막상 내가 나서서 하기는 쉽지 않아요. 마음은 있지만 전시 뒤풀이에서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만 하는 거 같아요. 또 징검다리 역할을 하면서 물밑작업을 할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품이 많이 들면서도 잘 돋보이지 않은 일이기도 하고요. 쉬운 일이 아니야. 하지만 이제는 정말 할 마음이 있어요. 해야 할 나이도 되었고.”
그녀의 직접 행동에의 경험과 고민, 의지는, 예술로 사회 문제를 소통하는 예술가가 되고자 하는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게) 시사점을 준다. 작품 활동 자체도 정치적이다. 하지만 제주도의 이례적인 5월의 폭우, 중국과 브라질의 대홍수, 방글라데시의 극심한 더위 등 기후 변화로 인해 지구가 점점 더 살기 어려운 곳으로 변해가는 것을 매일 접하고 있는 지금, 예술 활동을 넘어서서 무엇인가를 해야 하지 않을까?(글을 쓰고 있는 현재 2024년 5월). 예술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생존과 안전이 먼저 더 보장되어야 하기 때문에. 당연하게도. 지구 시스템 변화의 임계점이 코앞에 있는 시점에, 온 인류가 힘을 합쳐 협동해도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자 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 미국의 편파적 두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 서아프리카의 말리와 부르키나파소에서의 테러 등 지구촌은 서로 싸우고 죽이기에 정신 팔려 있다. 인터넷을 뒤덮은 혐오 댓글들을 보듯이, 우리 역시 일상에서 서로를 불신하거나 서로에게 적대적이다. 우리는 대체 어떻게 되려고 하는 걸까? 제정신이긴 한 걸까? 나야말로 제정신인가? 말로만 떠들잖아.
생태 예술가, 사회 문제를 소통하는 예술가는 기후 위기 시대에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무엇을 해야 할까? 누구와 어떻게 함께, 기후 변화 해결을 위해 어떤 실천을 할 수 있을까? 홍이현숙을 인터뷰하면서, 예술가로서의 나의 방향성에 대한 고민의 답은 더 절실해졌다. 적어도 이것만은 분명하다. 사랑하는 조카들을 위해, 또, 나와, 사랑하는 사람들과, 살아 있는 모든 존재들의 마지막의 평온한 죽음을 위해, 예술 활동과 더불어, 일상의 실천과 직접 행동에의 참여가 절실히 필요한 때라는 것을. 아니, 때는 이미 지났고 하루라도 더 빨리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연대하고 협동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을. 더더욱 절실히, 더더욱 꾸준히.
참고문헌
김미정, 박수진, 윤민화 (2021), “전시장에서 비인간 동물을 호명하기: 홍이현숙 작품을 중심으로”, 한국 생태 미술의 흐름과 현재: 자연미술에서 생태미술에 이르기까지, 국립현대미술관
벨 훅스 (2017)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문학동네
작가 소개
나의 작가 이름은 Cheddar. 순우리말로 채다(차오르다)이며 영어로는 내가 좋아하는 치즈 Cheddar로 표기하고 있다. 무엇을 어떻게 그릴 지 잘 모를 때, 잘 살펴보면 마음에서 스스로 차오르는 게 있을 거라며, 그것을 믿고 나아가라고 미술 선생님이 말해주었다. 사회학과 문화 연구를 오랫동안 공부하고 기후 변화 문화 정책에 대해 박사 논문을 썼다. 지금은 기후 변화를 포함한 사회 문제를 예술을 통해 소통하는 도전을 막 시작하였다. 3번의 인터뷰 기고 글에서 한국 생태주의 예술가들이 어떤 문제의식을 가지고 이를 어떻게 예술적으로 풀어내는지 탐색하고자 한다. 인터뷰로 만난 홍이현숙 선생님도 김홍희, 윤석남 선배가 여전히 열정적으로 작업을 하는 걸 보면서 당신도 힘이 난다고 하였다.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나를 포함한 다른 예술가들이 영감을 얻고 작업을 꾸준히 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