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경제만 있고 문화가 없다 – 경제분야 토론회 리뷰
[21대 대선, 실종된 문화공약을 묻는다]는, 세 차례의 대통령 후보 초청 토론회를 문화정책의 관점에서 작성한 연속 리뷰입니다. 각 후보의 발언 속에 드러난 문화 인식과 공약을 짚으며, 문화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경제·사회·정치와 연결해 제시합니다.
6·3 조기 대선을 앞두고 개혁신당, 국민의힘, 더불어민주당, 민주노동당 후보들이 첫 TV토론회에 나섰다. 정책과 비전 제시가 상대적으로 아쉬웠던 이번 토론회에서는 경제 정책의 전통적인 지표인 성장, 수출, 고용 등이 중심으로 논의됐고, 경제의 기반이며 사회 구성의 핵심 조건인 ‘문화’에 대한 언급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그나마 언급된 문화 역시 ‘문화산업’이라는 이름 아래 축소되어,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문화의 주변화 현상이 이번에도 이어졌음을 알 수 있었다.
‘문화산업’이라는 개념 자체도 이제는 진부할 정도다. 문화를 경제 논리로만 해석하며 ‘국민경제에 기여’해야 한다는 협소한 관점은, 문화를 국가와 자본의 도구로 종속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러나 문화가 경제에서 중요한 이유는 단지 상품화하여 잉여가치를 극대화하고 그 이익을 자본에 환원하는 데 있지 않다. 문화는 사회적 신뢰, 공동체 의식, 창의성 증진 등 경제 활성화에 필수적인 토대를 형성하며, 사회적 약자와 소외계층의 문화권 보장, 시민의 삶의 질 향상, 지역 균형 발전 등 통합적인 사회 구조를 지탱하는 역할을 한다. 이는 소비 확대와 내수 진작, 지역 경제 활성화로도 이어지며, 문화의 다차원적 효과를 입증한다. 2023년 「문화다양성 정책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문화다양성 보호와 증진 정책이 사회적 통합, 지역 활성화, 경제적 기회 창출 등 다양한 긍정적 파급효과를 만들어낸다고 평가했다. 그럼에도 현재 문화 담론은 여전히 경제적 이윤 동기와 자본 축적 중심의 시야에 갇혀 있다. 이제는 문화와 경제의 접점에서, 문화를 경제의 수단이 아닌 사회적·경제적 기반으로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이번 토론회를보며, 왜 이러한 문제의식이 구체적으로 다뤄지지 못했는지 명확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일부 후보는 신성장 산업 육성 비전의 하나로 문화산업을 언급하며 성장 중심의 신자유주의 문화경제학에 기댄 시각을 드러냈고, 다른 후보들은 문화에 대해 어떠한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조차 확인할 수 없었다. 물론 경제 분야에서 주로 언급되는 부채, 성장률, 재정 건정성, 노동 등 전통적인 키워드는 중요하다. 그러나 정치, 경제, 기술, 예술, 일상 등 다양한 사회 영역이 이미 문화적 조건과 방식에 의해 구성되고 있는 ‘문화화된 사회’로 전환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흐름을 반영한 실질적인 문화정책을 제시한 후보는 찾을 수가 없었다. 간헐적으로 발언한 문화 관련 내용 역시 대부분 본질을 벗어났다. 일부 후보는 한국의 문화적 역량이 향후 경제적 기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며 문화산업 육성의 필요성을 강조했고, 또 다른 후보는 문화산업을 관광산업과 함께 3차 산업의 핵심 과제로 설정하거나, 전통예술·고전음악 분야에 대한 지원 필요성을 언급했다. 그러나 이는 문화의 구조적 역할에 대한 인식 없이 접근한 일시적이고 지엽적인 대응에 불과하다.
이 지점에서 대선 후보들에게 분명히 질문하고자 한다.
경제정책과 문화정책의 접점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
창작 노동의 사회적 안정과 시민의 문화권 보장을 위한 구체적 방안은 무엇인가?
지역 문화 경제를 활성화하면서, 문화의 공공성과 산업성을 함께 고려하는 정책적 균형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문화를 개별 정책이 아닌, 경제·사회·지역 등과 통합된 전략 축으로 삼기 위한 방안은 무엇인가?
문화는 경제, 복지, 교육, 환경, 도시 등 다양한 정책 분야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하며, 이를 위한 범정부적 협력 체계와 민관 거버넌스가 필수적이다. 문화체육관광부 단일 부처 중심의 한계를 넘어, 문화정책을 통합 조율할 수 있는 구조적 전환도 함께 검토되어야 한다.
이번 토론에서 드러난 문화정책의 공백은, 한국 사회가 여전히 문화의 본질적 가치와 파급력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대선 후보들은 문화정책을 경제·사회·지역 정책 등과 입체적으로 통합 설계하며, 문화의 공공성과 산업성 사이에서 균형을 구현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실행할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문화는 더 이상 경제의 부속물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창의성과 포용성, 지속가능성을 이끌어갈 핵심 전략이자 사회 변화와 정책 혁신의 출발점이다. 향후 토론회에서는 분야별로 문화정책의 구조적 전환을 위한 후보들의 인식과 계획이 검증되어야 하며, 이를 통해 문화의 전략적 위상과 정책적 우선순위를 실질적으로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문화연대는 정부가 현장 문화예술인들이 이룬 K-컬처 성과를 자화자찬할 때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장르별 문화산업 지원사업에만 머물지 말고, 국가 차원에서 문화의 경제적 가치를 다각도로 연구하고 조망해야 한다. 지금이 이를 위한 중장기 지원 플랫폼을 마련할 시점이다. 정부는 오래전부터 ‘21세기는 문화의 시대’라며 문화경제, 창조경제, 창의경제, 콘텐츠산업 등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실질적인 정책 수립과 체계적인 지원 환경 조성에는 무관심했기에, 문화연대는 다음과 같은 과제를 제안한다.
'(가칭)<문화경제청>'은 장르별 지원사업 수준이 아닌 국가 단위 중장기 문화경제 및 창의경제 플랫폼으로서 콘텐츠진흥원을 재구성하고, 문화분야 산업과 일자리, R&D 등에 대한 통합적 투자 강화가 필요함을 언급한다. 세부 내용은 아래 제안서 전문에서 확인 바란다.
** 제21대 대통령 선거 문화연대 문화정책 제안서 전문
블랙리스트와 미투를 겪고 내란범들까지 만난 후에야 문화와 일상의 소중함을 알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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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5.20. 김재상. 문화연대 사무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