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 체제를 넘어, 문화의 힘으로 새로운 민주주의를 열자
┃억압의 시대를 넘어 표현과 삶의 민주주의로
┃탄핵 이후, 정치 교체를 넘어 ‘문화의 전환’을 고민할 때
윤석열의 파면은 단순히 한 정치인의 퇴진이 아닌,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권력을 사유화한 정권에 대한 역사적 심판이자, 이를 이끌어낸 시민의 힘이 증명한 민주주의의 승리다. 그러나 이 승리를 단지 과거를 청산하는 사건으로만 바라본다면, 우리는 같은 실패를 반복할 위험에 놓이게 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진정한 사회대개혁, 그리고 이를 가능케 할 체제 전환의 상상력이다. 특히 삶의 방식을 전환하는 문화적 혁신, 그 전환의 열쇠로서 ‘문화’의 역할을 다시 강조해야 할 시점이다.
억압과 혐오의 정치를 넘어, 문화사회의 정치로
윤석열 정권은 정치, 언론, 검찰, 자본이 결탁한 전형적인 내란 체제였다. 이 체제는 권력의 집중과 시민의 배제를 통해 유지되었고, 그 과정에서 표현의 자유는 침해당했으며, 예술은 검열당했고, 소수자는 배제되었으며, 사회적 약자는 투명인간 취급을 받았다. 검찰권의 정치화, 언론 통제, 예술에 대한 검열과 탄압, 차별과 혐오의 정치화 등은 모두 문화적 삶의 영역까지 침범하는 일이었다. 이런 사회에서 문화는 통제와 조작의 도구로 전락하거나 철저히 무시당했다. ‘정치’의 장에서 문화는 배제되었고, ‘경제’ 논리에서는 오로지 수익과 이윤 중심으로 문화를 바라봤다.
그러나 문화는 단순한 콘텐츠 생산이나 여가 활동이 아니다. 문화는 삶의 방식이고, 관계의 구조이며, 상상력과 감수성을 통해 사회를 재구성하는 힘이다. 권력이 시민의 일상에 스며드는 방식, 표현을 통제하고 취향을 규정하는 방식, 지식과 예술을 기득권에 종속시키는 방식이 해체되지 않는 한, 또 다른 억압이 반복될 것이다. 억압의 시대를 끝내고자 한다면, 이제 우리는 문화사회의 정치를 요구해야 한다. 이는 단지 문화정책의 확대가 아니라, 문화적 접근과 감수성을 통해 정치와 사회를 재구성하겠다는 선언이다.
문화와 함께하는 체제의 전환
문화사회란 단지 ‘문화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사회’가 아니다. 그것은 정치, 경제, 사회 전반이 문화적으로 작동하고, 시민이 삶의 주체로서 의미를 구성해나가는 사회다. 문화와 함께하는 체제 전환이란 단지 헌법이나 제도의 개정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시민의 일상, 감정, 관계, 상상력의 조건까지 변화시키는 보다 깊은 사회적 전환이다. 이러한 문화적 전환이 가능하려면, 무엇보다 문화의 역할을 중심에 놓아야 한다.
정치와 제도를 넘어, 사람들이 세상을 이해하고 연결하고 저항하는 방식 자체를 바꾸는 일이야말로 문화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작업이다. 과거의 정치는 시민을 ‘표’로만 여겼지만, 문화는 시민을 ‘주체’로 호명한다. 과거의 체제는 효율성과 성장의 이름으로 모든 가치를 수치화하고 기득권과 억압의 언어는 배제와 혐오를 재생산하지만, 문화는 삶의 질과 관계의 의미를 중심에 두며 공감과 상상, 연대를 가능케 한다.
시민의 감수성과 실천이 만드는 문화사회
더 이상 문화는 부차적인 것이 아니다. 우리는 문화권을 ‘삶의 권리’로, 표현의 자유를 ‘민주주의의 기초’로, 예술의 정치성을 ‘사회 변화의 동력’으로 다시 말해야 한다. 문화예산의 확대, 문화인프라의 재구성, 예술노동의 권리 보장 등을 포함하여, 그보다 더 근본적인 것은 문화가 사회의 중심적인 가치로 자리 잡도록 만드는 일이다. 이와 함께 우리는 검열과 탄압, 위계와 배제의 구조를 끝내야 한다. 예술은 권력의 장식이 아니라, 사회의 균열을 드러내고 새로운 질서를 상상하는 실천이다. 표현의 자유를 위협하는 어떤 권력에도 맞서야 하며, 이를 위한 시민적 연대와 사회적 안전망이 필요하다.
문화사회는 위로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거리에서, 광장에서, 학교와 일터에서 시민들이 삶을 바꾸기 위해 실천하고 연대할 때 만들어지는 것이다. 윤석열 파면 이후의 정치는 단지 새로운 리더를 뽑는 과정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질서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윤석열 이후의 시대는 무엇으로 채워질 것인가? 과거의 억압을 반복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상상력과 감수성으로 민주주의를 다시 구성할 것인가? 우리는 후자를 선택해야 한다. 이제, 문화 없는 혁명은 없다. 표현과 연대, 상상과 실천이 어우러지는 사회야말로 민주주의의 일상화된 형태이며, 우리가 꿈꾸는 세상의 방향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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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5.08. 김재상. 문화연대 사무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