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연 보는 휘 Feb 20. 2020

미국 뉴욕에서의 연극학 박사과정 첫 학기에 대한 단상1

1. 내가 들었던 강의들과 힘들었던 점

    적응하느라 정신없던 첫 학기도 다 지나고 어느덧 두 번째 학기의 두 달째. 브런치를 시작하게 된 김에 헉헉 쫓아가느라 어영부영이었던 첫 학기를 돌아보기로 했다. 학교에서는 이미 성적 리포트를 받았으니 (아직 교수님들께 못 받은 피드백은 많다...) 내 나름의 학기에 대한 정리를 해보고 싶어졌다. 그동안 다른 단문 플랫폼에 그때 그때 마음 상태에 대해 기록을 했지만, 종합적으로 바라본 일은 없는 것 같기에.


(넷플릭스야 앤윗언이를 되살려내라 시즌 캔슬을 캔슬해라)


내가 들었던 수업


1. 연극 연구:

콜럼비아 대학 동아시아 아카이브를 방문하여 조사. 1970년대 일본 국립 분라쿠 극장의 홍보물에서 읽어볼 수 있는 <소네자키 숲의 정사>에서의 情死의 낭만화에 대해 아티클 분량의 페이퍼를 썼다.


2. 연극 입문:

주마다 연극 장르별로 연극 서너 편씩 읽고 토론하는 수업. 비교문학 관점으로 컨퍼런스 분량 에세이를 두 편 썼다. 1) 분라쿠 <소네자키 숲의 정사>와 뮤지컬 <사의 찬미>에서 무대 공간과 情死의 연관관계. 2) 당대 사회상의 차이에 따른 프랑스 소극 <The Boy and the Blind Man>과 창극 <심청가>에서의 시각장애에 대한 관점차와 장르적 구현 차.


3. 독일 연극과 이론:

독일 연극사를 훑는 수업. 실제로 보는 영상도 많고, 평소 보던 연극과 다른 지점이 많아 흥미롭게 들었다. 제5언어를 독일어로 배워야겠다는 결심을 굳히게 해 준 수업. 언젠가 독일 연극을 자막 없이 보고 싶다. 이 수업자료에서도 자막/영문 대본이 없는 극들도 있어서, 상세한 내용조차 모르고 그냥 보는 경우도 종종 있었던 기억. 이자람 브레히트극 <억척가>와 추임새에 관해 아티클 분량의 페이퍼를 썼다.



힘들었던 점


1. 학술적 접근 차

    학석사 영문과 과정을 착실히 밟아왔던지라, 두 전공의 접근법이 다른 지점이 있어 적응하느라 어려웠다. 연극을 접근하는 방법은 크게 1) 문학적 접근 [드라마], 2) 연극학적 접근 [시어터], 3) 공연 학적 접근 [퍼포먼스] (에 받고 인류학적 접근은 3)이랑 연관이 깊다) 이 있는데, 내가 지금 다니고 있는 학교는 "연극&공연학" 전공이다. 나는 그동안 1) 문학적 접근 베이스로 훈련을 받았던 터라 배경지식 밑천이 탈탈 털리고 말음. 학교에서 가르쳐주셨던 연극 교수님이 공연학 전공을 하셨던 분이라 2), 3)에 대해 맛보기는 봤지만... 정말 맛보기였던 것이다... 희망적인 건, 달리 말하자면 나는 문학적 접근, 연극학적 접근, 공연학적 접근을 모두 배워본 연구자로 성장할 것이란 점.


    이건 외전 격인데, 나는  identity politics와 관련된 연극을 연구한다. 그러다 보니 관련 이야기가 자주 나올 수밖에 없는데, 내가 겪은 경험과 수업에서 이야기되는 경험 간의 간극이 클 때가 많다. 내가 이야기하는 지점이 그들에게는 이제 좀 지나고 지루한 주제가 될 수도 있고, 내 입장에서 그들이 이야기하는 이야기가 너무 나이브하게 들릴 때도 있다. 그 간극을 비교하는 게 흥미롭다.


2. 생소한 뉴욕의 연극 씬.

    한국에서는 말 그대로 대학로를 누비고 다녔다. 연초면 뭐가 어디 올라오는지 꿰고 있었고, 배우와 창작진도 각자의 색을 내 나름 파악하고 있었다. 그래서 "ㅇㅇ연출가가 ㅇㅇ극을 올린다"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내 나름의 해석을 할 수 있었음. "오? 의왼데?"라든지, "아, 그건 그 연출가 특장점이지~"라든지. 그런데 여기 오니 정말 남은 건 채워 넣을 일뿐인 새하얀 타블라 로사의 상태가 되어버렸다... 그나마 한국 연극 뮤지컬 씬이 라이선스극을 발 빠르게 들여오는 편이고, 브로드웨와 연이 깊다 보니 메인스트림 쪽은 걱정이 덜하다. 실제로도 메인스트림 뮤지컬 보는 걸 좋아하기도 해서 몇 편 보고 나니 따라가기 바쁜 상황에서는 벗어날 수 있었다. (브로드웨이의 뮤지컬은 한국과 달리 시즌제가 아니라 롱 러닝이다 보니, 다관람이 아니라면 자주 볼 필요가 없다.)


    문제는 오프 브로드웨이 씬. 아무래도 동기, 선배들이 실제로 연극하는 친구들도 많고, 이미 미국 연극 씬에 대해 빠삭하게 잘 알고 있는 친구들이다 보니 수업시간과 평소 담소에 여러 예시들이 볼링공처럼 굴러다닌다. 우스터 그룹...? 카페치노...? BAM에서는 주로 어떤 색의 연극이 상연되지...? 왜 이 친구들은 친구의 친구들끼리 서로 다 아는 사이지...? (연극관계자라 그렇다.) 이렇게 내가 잘 모르는 게 문젠데, 아무래도 동시대 현대 연극 씬이다 보니, 어디 정리가 된 것도 아니고 내가 따라잡을 수밖에 없다. 7개월 차인 지금, 전보다는 더 주워들을 수 있는 이름이 많아졌지만 여전히 모르는 그룹과 연극계 이름들이 너무 많다. 그래서 이번 학기에 70년대 미국 연극 수업을 수강하고, 우리 학교에서 수여하는 연극 상인 The Booth Award 위원회에도 참여하게 되었다. 마치 처음 연극 뮤지컬 덕질을 시작하게 된 기분? 옥주현 배우와 조승우 배우 밖에 모르던 그 시절.


3. 언어의 문제에서 생산성의 문제로

    학석사 다니던 영문학부에서 수업을 대부분 영어로 진행했고 과제도 다 영문으로 냈어서 그렇게까지 어려울 줄은 몰랐는데 역시 오산이었다고 하네요. 수업을 참여하는 건 문제가 아니었다. 다만 스스로 더 나은 내 모습을 알고 있다는 점이 가장 답답했다. 똑같은 표현이라도 자국어로 표현하면 더 명확하게 전달될 텐데, 똑같은 글이라도 자국어로 읽으면 쓱 금방 읽어버릴 텐데, 친구들한테 더 농담도 많이 하고 (지금도 수다쟁이긴 하지만) 더 수다쟁이일 텐데 하고 자꾸 비교를 하게 되는 게 문제였음. 그리고 학석사 때 글쓰기 센터 좀 열심히 다닐 걸... 거기는 일일히 오류를 잡아주는 편인데 하고 바로 후회함. 이제야 부랴부랴 라이팅 컨설테이션과 워크숍을 열심히 다니고 있긴 한데 갈 길이 정말 멀다. 


    문과 박사 쪽에서 언어의 문제는 생산성의 문제로 직결되기 때문에 그게 가장 스트레스다. 당장 출판의 문제가 닥쳐온다. 컨퍼런스야 자료가 남는 게 아니라 앱스트랙 제출->발표기 때문에 가서 열심히 전달하고 내려오면 되지만, 출판은 글 솜씨의 문제가 정말 크다. 이렇게 못 써서 저널 출판할 수나 있을까 하게 되는 것. 게다가 옆의 동기들의 글을 접하게 될 일이 많으니 더 그렇다. 나만이 이야기할 수 있는 이야기는 분명 있다. 다만 그 이야기를 표현하는 방식에 있어 어느 정도 수준을 요구받게 된다. 게다가 곧 이제 대학에 처음으로 연극 입문 강의를 하러 가게 된다. 마찬가지로 영어 자국어인 학생들에게 영어로 수업을 하려니,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다. 다 익숙함의 문제라는 건 안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


4. 마이너 어그레션

    와, 이거 정말 뉴욕은 그나마 양반이긴 한데 그래도 남의 나라에서 외국인으로 살아남기는 쉽지는 않더라. 문화적 차이와 성격 차이도 있긴 하겠지만, 내 일에 대한 크레딧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꼭 뭐든지 2배씩 들어간다. 품도, 노력도, 시간도. 남부에서 겪었던 거에 비해 훨씬 덜했지만 자잘하게 마음을 긁고 지나가는 일들이 많다.




(2.그럼에도, 좋았던 점에서 계속)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