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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볼매거진 제6호] 축구의 신뢰와 마주하다


# 서보원 Editer '둥지를 떠나기 시작하는 유망주들, 또 다시 신뢰를 잃은 첼시'


로만 아브라모비치 구단주가 첼시를 인수한 이후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바로 훈련장이었다. 그렇게 코범은 세계적인 훈련장이자 아카데미가 되었다. 하지만 요 근래, 첼시 유망주들이 이 명성 높고 정든 둥지를 떠나기 시작했다. 세련된 둥지에서의 미래를 불신하기 때문이다.


첼시의 유소년 육성 정책은 그간 많은 질타를 받았다. 클럽이 공들인 유망주들을 거절할 수 없는 금액으로 영입했지만 이들을 주전 선수로 기용하지 않고 임대 뺑뺑이를 보내는 횡포를 보여왔기 때문이다. 이는 여러 가지 부작용을 낳았는데, 유망주들은 기대치만큼 성장하지 못했고 매년 다른 국가와 클럽에서의 적응 문제로 인해 제 기량을 선보이지 못했다. 또한 본래 있었던 첼시의 유소년들은 계속해서 영입되는 선수들과 맞서야 하는, 그야말로 무한 경쟁 시스템이었다.


결국 안정적인 경쟁 체제와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유망주들이 자처해서 떠나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케빈 더브라위너가 이에 해당된다. 첼시 입장에선 이들이 다른 구단으로 이적해 더 큰 위협이 되어 다가오니 이전의 정책이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되었고 유스들에게 기회를 부여하는 식으로 개선하게 되었다. 마침 영입 금지 징계, 프랭크 램파드의 부임이 맞물리면서 더 극적인 그림이 그려졌다. 그렇게 첼시 아카데미는 황금기를 맞이했다.


성공적으로 1군에 안착한 경우도 있었지만 2021 첼시 올해의 유소년상 출신, 발렌티노 리브라멘토는 이런 결과물을 신뢰하지 않았다. 그는 첼시와의 계약 만료를 앞두고 과감하게 사우샘프턴으로 이적했다. 과거 선배들이 임대를 전전하다 이적을 택했던 것과 달리 리브라멘토는 그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서 첼시 보드진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다 주었다. 리브라멘토뿐만 아니라 루이스 베이트, 마크 게히 등 다수의 아카데미 졸업생들도 이런 선택을 결심했다.


이러한 '탈 첼시 현상'은 전적으로 구단에 대한 신뢰가 떨어졌음을 암시한다. 그렇다면 왜 둥지를 신뢰하지 못하게 되었을까? 일단 램파드 감독 사임 이후 아카데미 기용률이 현저히 떨어졌다. 자리 잡았다고 생각했던 빌리 길모어도 임대를 떠나게 되었는데 이는 여전히 무한 경쟁 체제임을 알리는 경종이 되었다. 때문에 꾸준한 성장을 위해선 첼시 내 잔류 및 임대 혹은 이적을 해야 하는 상황에 봉착했는데 자말 무시알라 등 몇몇 선배들이 바람직한 선례를 남기면서 첼시를 떠나도 성공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이로써 둥지를 떠나야 하는 명분과 근거가 완성이 된 것이다.


하나의 유행이 된 '탈 첼시 현상'을 막기 위해선 충성심만을 강조할 수 없게 됐다. 선수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유스 시스템 구축이 있어야만 '제2의 KDB'가 탄생하지 않을 것이다.

 # 정채건 Editer '신뢰를 보여준 레전드를 대하는 팬들의 자세'


축구는 여전히 로맨티시즘이 살아있는 스포츠다. 축구 안에서 팬과 선수의 관계는 단순하지 않다. 팬들은 응원하는 팀의 선수가 구사하는 플레이뿐만 아니라 행동, 태도 그리고 행보에 웃고 때론 울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할 만큼 복잡한 관계성을 지닌다. 그만큼 이들의 관계에서 ‘신뢰’라는 단어는 중요하다. 우리는 이러한 신뢰를 오랜 시간 보여준 선수들에게 ‘레전드’라는 칭호를 붙여준다. 그리고 그들에 대한 대우는 축구가 여전히 낭만을 가진 스포츠라는 점을 반증한다.


상술한 것처럼 레전드란 한 팀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보여주고 증명한 선수에게 팬들이 지어주는 칭호이다. 대체로 많은 레전드들은 본인이 사랑과 애정을 쏟는 팀에서 은퇴한다. 혹 자신을 레전드라 불러주는 팀에서 은퇴를 못한다 하더라도 팬들이 보내는 사랑은 여전하다. 선수 말년에 부득이한 이적 이후 자신의 친정팀과 경기를 위해 돌아온 레전드에 대한 박수갈채가 쏟아지는 일을 자주 목격했던 것처럼 말이다. 심지어 리그 내 경쟁 클럽으로 이적하게 된 경우에도 그러하다. 램파드가 첼시를 떠나 잠시 맨시티에 머물며 친정팀을 맞이했을 때 받았던 박수가 대표적이다.


놀라운 성과를 거둔 레전드의 이름을 기억하기 위해 경기장의 이름 바꾸는 경우도 있다. 아약스의 요한 크루이프 아레나, 레알 마드리드의 산티아고 베르나베우가 그 대표적인 예시다. 혹은 동상을 세워주는 경우도 있다. 아스날의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의 한편에는 그들의 올 타임 레전드인 베르캄프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웸블리 스타디움에 있는 바비 무어의 동상이나 맨유가 세워준 조지 베스트를 비롯한 3인의 플레이어 동상 또한 그러하다.


영구 결번을 통해 그 애정을 표현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AC 밀란은 말디니의 3번을 영구 결번 시켰고 로마는 그들이 황제라고 불러 마지않았던 토티의 10번을 더 이상 그 누구도 달지 못하게 했다. 전북의 이동국과 20번, 인테르의 사네티와 4번, 나폴리의 마라도나와 10번 또한 축구계 유명한 영구결번 중 하나이다.


이처럼 축구에는 다양한 문화적 흐름이 투영돼 있다. 축구를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세상을 읽을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축구는 팬과 선수들이 소통하는 프로 스포츠이며 이 둘의 관계를 빼놓고는 그 어떤 문화도 성립하기 어렵다. 선수는 팀과 팬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그런 선수에게 팬들은 신뢰라는 강한 연대를 표한다. 그리고 이 관계는 스포츠가, 아니 축구가 가진 낭만의 근간이다. 여러분은 어떤 팀을 응원하고 또 어떤 선수에게 신뢰를 보내는가. 다가올 주말 어떤 플레이를 기다리고 있는가. 축구는 오늘도 우리들의 가슴을 설레게 할 준비를 마쳤다. 우리는 축구와 함께 울고, 웃으면 된다.

# 오성윤 Editer '로컬보이를 향한 믿음'


K리그는 ‘코로나 팬더믹’이라는 재앙을 발판 삼아 구단의 U-22 선수, 즉 22세 이하 유망주의 기용을 강제하는 규정을 근 2년간 적용해왔다. 기존에 시행하던 U-22 선수 의무 출전 규정을 강화하고 코로나로 인해 교체 카드를 5장으로 늘린 유럽 축구의 흐름에 발맞추어 이른바 ‘U-22 교체 규정’을 창안한 것이다.


연맹이 제시한 U-22 교체 규정의 내용은 이러하다. 선발 라인업에 U-22 선수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면 교체 가능 인원을 2명으로 제한한다. U-22 선수 1명이 선발 출전한다면 교체 카드가 3장으로 유지되는데, 만약 네 번째 교체 이내에 U-22 선수 한 명이 교체 투입된다면 5장의 교체 카드를 확보할 수 있게 된다. 두 명의 U-22 선수를 선발 출전시켰을 경우에도 교체 가능 인원은 5장으로 확대된다.


팬들은 당시 팬•구단•선수들로 하여금 혼동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해당 룰에 대해 많은 비판의 목소리를 내비치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유망한 U-22 선수가 일찍이 발굴되어 성적 반등에 크게 기여하는 등 좋은 선례가 계속해서 생겨나자 규정에 대한 대중들의 반발 활동도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이와 같은 좋은 선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U-22 선수의 출전 시간은 증가하지 않는 추세로 보인다. 최근 들어 지양되고 있지만 3분 만에 U-22 자원을 교체 아웃시킨 사건도 발생했다. 그도 그럴 것이 감독으로서는 프로 무대에서 증명되지 않은 유망주에게 의구심을 품을 수밖에 없다. 선발 선수로 기용될 어린 선수의 1군 적응 여부는 구단의 성적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K리그의 고유 규정인 U-22 선수 교체 규정은 로컬 보이를 향한 감독의 신뢰를 더욱 돈독하게 하는 것이 하나의 목적인데 말이다.


규정이 강제한 신뢰를 통해 발굴된 신인 선수는 정상빈, 박진성 등이 있다. 두 선수의 공통점은 팀이 어려울 때 혜성처럼 등장해 스쿼드의 허점을 보완하고 성적 반등을 견인했다는 점이다. 이들이 각각 성인 대표팀과 올림픽 대표팀에 차출되었다는 사실을 미루어볼 때 어린 선수의 발굴은 최종적으로 대표팀의 선수 문제로 귀결된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풀백 자원에 대한 갈증 등으로 골머리를 앓는 대표팀의 현재 상황은 뛰어난 유망주 발굴에 의한 자연스러운 세대교체의 필요성을 갈구한다.


그렇기 때문에 U-22 선수의 출전은 단지 규정을 준수하기 위한 수단이 아닌 대표팀의 선수 활용 폭 확장, 그리고 구단과 리그의 수준 향상의 중심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예를 들면, 울산 현대의 홍명보 감독은 비단 U-22 선수뿐만이 아니라 대표팀의 미래를 책임질 것으로 예상되는 선수들에게 전폭적인 믿음을 보내왔다. 이처럼 어린 선수들을 향한 감독의 신뢰와 지지는 보다 더 명확해져야 한다.


사실 어린 선수들의 기본 실력이 전제되어야 감독의 신뢰가 따라오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선수가 제 기량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이 제공되어야 목표치에 도달하고 기대에 부응할 가능성이 커지는 것 또한 사실이다. 구단과 선수의 밝은 미래를 위해 우리 모두의 로컬 보이를 향한 믿음은 필요하다.

# 홍연진 Editer '신뢰의 명과 암이 뚜렷한 사제지간, 김학범과 황의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 당시 한국 축구 대표팀은 역대 다섯 번째 우승이라는 눈부신 성과를 이뤘다. 이는 ‘카잔의 기적’의 열기가 채 가시기도 전에 만들어낸 대업적이었다. 그리고 전 국민이 그 중심에 있던 사제지간, 김학범과 황의조에게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3년 후 개최된 2020 도쿄 올림픽에서 김학범호는 8강에서 좌절을 맛봤고 황의조 역시 대회 내내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그로 인해 이들을 향한 여론의 환호는 3년만에 비판으로 탈바꿈했다. 김학범호의 도쿄 올림픽 부진에는 여러 복합적인 이유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는 바로 황의조에 대한 김학범의 지나친 신뢰에 있다. 신뢰로 성공하고 신뢰로 실패한 김학범과 황의조, 그들은 명과 암이 뚜렷한 사제지간이었다.


* 명(明)-신의 한수였던 김학범의 황의조 발탁


아시안 게임 개최 전이었던 2018년 7월, 과거 성남 시절 인연으로 인한 ‘인맥축구’ 논란에 김학범과 황의조는 결과로 증명하겠다고 답하였고 이를 실현하였다. 황의조는 7경기에서 총 9골 1도움을 기록하며 팀의 금메달 획득에 엄청난 기여를 하였고 자신을 비난하던 이들을 실력으로 잠재웠다. 특히, 손흥민과 찰떡 호흡을 보여주면서 해결사 역할도 톡톡히 해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황의조는 한국 역대 최고의 아시안 게임 와일드 카드라고 불리고 있고 그를 발탁하여 팀을 훌륭하게 이끈 김학범 역시도 명장 알렉스 퍼거슨에 빗대어 ‘학범슨’ 이라는 별명으로 칭송을 받고 있다.


* 암(暗)-결국 독이 되어버린 김학범의 지나친 황의조 신뢰


사고 한번 치고 싶다는 올림픽 출사표를 던진 김학범이었지만 여러모로 팬들에게 실망스러운 모습만을 보여주면서 부진을 면치 못하였고 결국 씁쓸하게 U-23 대표팀 감독직을 내려놓게 되었다. 대회 전, 무리한 K리거 훈련 차출 요구 및 강행으로 인해 많은 K리그 팬들이 김학범에게 등을 돌렸으며 이해할 수 없는 선수 구성으로 인해 의문을 받기도 하였다.


김학범은 이번에도 와일드 카드로 황의조를 발탁하였지만 문제는 전문 스트라이커 자원을 오직 황의조 한 명만 선택하였다는 것이다. 김학범호에 차출되어 좋은 모습을 보여줘왔던 오세훈, 조규성을 모두 배제하고 말이다. 게다가 4인 추가 발탁의 기회가 있었음에도 김학범은 끝까지 황의조만을 고집했다. 이러한 김학범의 지나친 고집과 신뢰는 리스크가 너무나 컸고 설상가상으로 황의조도 부진한 경기력만을 보여주면서 와일드 카드로서의 몫을 다하지 못하고 말았다.

# 이현우 Editer '연맹과 협회는 ‘완결성’에 대해 논할 자격이 있는가?'


‘역동과 감동, K리그’라는 슬로건의 프로축구가 막판으로 접어들고 있다. 승강제가 존재하는 K리그에는 강등을 피하기 위한 K리그1 하위권과 승격을 꿈꾸는 K리그2 상위권 팀들 간의 순위 경쟁이 치열하다. 그중 K리그1 하위권에 머물러 있는 광주는 지난 제주와의 30R 홈경기에서 무승부를 거뒀지만 결과적으로 승점을 추가하지 못했다. 이날 광주축구전용구장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사건의 전말은 이러하다. 광주는 1-0으로 앞서가던 후반 39분 김종우의 투입을 준비하다가 제주의 교체 움직임을 보고 김봉진을 추가적으로 교체하려 했다. 그런데 최일우 대기심은 김종우만 경기장 안에 들어가게 했다. 마지막 교체 횟수였던 광주는 대기심에게 3번째 교체라고 어필을 했지만 대기심은 “다음에 하세요”라고 답했다. 결국 김봉진은 주민규의 동점골이 터진 후에 그라운드를 밟았다.


이번 시즌 K리그1은 U-22 선수의 기용에 따라 교체 카드를 최대 5장 사용할 수 있지만 3회의 교체 횟수 안에서 사용해야 한다. 이는 교체 횟수가 많아지면서 발생하는 경기 지연에 대한 방지책이다. 다만, 하프타임 종료 후 후반전 킥오프 전에 진행하는 교체는 횟수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번 시즌 특별하게 적용되는 교체 규정을 보더라도 광주는 교체 횟수가 모두 소진된 후에 교체를 진행해 ‘그 시점에 경기출전 자격이 없는 선수’인 무자격선수를 투입했다. 이는 연맹 규정 제20조 2항과 4항을 위반하는 행위이고 0-3 패배로 간주된다. 결국 연맹은 이 경기를 1-1 무승부에서 광주의 몰수패로 정정했다.


연맹은 해당 결정에 관해 ‘설령 무자격선수가 출장하는 과정에서 대기심의 실수라는 요인이 개입되었다 하더라도, 해당 대기심의 책임에 따른 조치와 별개로 대회요강에 따라 경기 결과를 광주의 0-3 패배로 간주하는 불가피하다.’라고 설명했다.


더불어 연맹은 경기의 완결성을 훼손한 결과에 따른 책임은 광주에게 부과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런데 심판 판정과 운영에 대한 책임이 있는 연맹과 협회가 ‘완결성’ 대해 논할 자격이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광주의 몰수패 사건이 발생한 뒤 K리그1 31R 동해안 더비에서 울산이 승리했다. 경기 내용을 살펴보면 울산이 2-0으로 앞서던 후반 29분 원두재가 위험한 태클 시도로 다이렉트 퇴장을 당했고 수적 열세의 울산은 포항에게 1골을 허용하며 고전했다. 원두재는 상벌위원회 결과 사후 감면 조치를 받았다. 레드카드를 줄 정도의 파울이 아니었던 셈이다.


아시아 리그 최초로 VAR을 도입한 K리그지만 심판 판정에 대한 잡음은 끊이지 않고 있다. 연맹과 협회에 분산되어 있던 심판 배정, 교육, 관리 등이 작년부터 협회로 심판행정 일원화가 되며 개선된 모습을 기대했지만 기대와는 다른 모습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 심판 판정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음에도 협회는 삼판 징계에 대한 내용은 일절 공개하고 있지 않다. 이는 PL과 분데스리가도 마찬가지다. 다만, 계속해서 불통을 이어가며 보수성을 유지하는 것이 좋은 방법은 아니다. 오히려 심판 판정에 대한 불신이 깊어지고 있다. 스포츠가 발전하고 스포츠 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선 심판의 발전 또한 필수불가결하다. 신뢰의 뿌리가 흔들리고 있는 지금, 심판 판정과 운영에 대해 깊은 고심이 필요해 보인다.

# 김건호 Editer '영국의 주장이 신뢰를 잃게 된 이유; 해리 케인의 파업'


올여름 이적시장은 유난히 굵직굵직한 영입들이 많았다. 새로운 에이스를 얻은 팀의 팬들은 환호성을 지르기 바빴고 팀의 에이스를 다른 팀에 넘겨준 팬들은 아쉬움을 삼켰다. 2000년 겨울 한 레스토랑에서 냅킨에 계약사항을 적어 팀에 입단한 바르셀로나의 영원할 것 같던 10번, 리오넬 메시는 오랜 기간 몸담았던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떠나 프랑스의 파리로 팀을 옮겼다. 붉은 유니폼을 입고 맨체스터를 환호의 물결로 만들던 젊은 포르투갈 공격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도 자신의 고향 팀이라 할 수 있는 영국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을 완료하였다.


하지만 모든 팀과 모든 선수의 이해관계가 맞을 수는 없기에 강하게 이적을 희망했지만 팀을 떠나지 못한 선수들 또한 존재한다. 토트넘 홋스퍼에서도 이러한 사건이 일어났다. 영국과 토트넘의 간판 공격수 해리 케인은 지난 20-21시즌의 불만족스러운 팀 성적으로 인해 타팀으로의 이적을 강하게 요구하였다. 이러한 상황에 토트넘의 팬들은 크게 실망하였다. 비단 그가 이적을 요구했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의 요구사항에 대한 표현 방법이 비판의 골자였다.


해리 케인은 구단에서 정한 휴가 일정이 지나고도 팀 훈련에 참여하지 않았다. 프리시즌이 끝나고 정규 리그가 진행되기 시작했음에도 케인은 여전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리그 개막전인 맨체스터 시티와의 경기에서도, 컨퍼런스리그 플레이오프인 페헤이라와의 경기에서도 케인은 보이지 않았다. 일종의 “파업”이었다. 꾸준히 맨시티와의 이적설이 대두되는 중이었기에 팬들은 그에게 큰 실망을 표하였다. 결국 8월 말, 케인은 SNS계정을 통해 팀에 잔류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그 누구보다 선수들을 사랑하는 것은 팀의 팬들이다. 팀에 큰 힘을 주는 에이스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에이스의 잔류를 간절히 원하지만 동시에 그 선수가 선택한 미래를 응원하며 떠나보내는 것이 팬들이다. 케인이 이적을 원한다는 것을 들은 팬들은 아쉬웠겠지만 만약 케인이 다른 팀으로 이적을 하게 됐다면 그의 의견을 존중하고 응원하며 보내주었을 것이라는 말이다. 그가 보여준 “파업”이라는 선택은 팬들과 구단에 있어 “신뢰”라는 보이지 않는 연결줄을 끊을 수도 있었다. 수년, 수십 년을 쌓아야 생기는 것이 신뢰이지만 무너지는 것은 사소한 사건 하나일 수도 있다. 한순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모든 팬의 신뢰를 잃을 뻔한 해리 케인, 부디 다음번에 비슷한 상황이 생긴다면 팬들과 구단이 이해할 수 있는 신사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의견을 표현해 주길 소망한다.

# 이경민 Editer '믿음으로 엮인 스승과 제자, 히딩크와 박지성'


2014년 12월 18일, PSV의 홈구장 필립스 스타디움에서 박지성의 공식 은퇴 행사가 열렸다. 태극기가 휘날렸고 팬들은 연이어 박지성의 이름을 외치며 환호했다. 구장 전체엔 박지성의 응원가가 메아리쳤다. 공식 은퇴 행사는 그 구단의 레전드로 인정받는 선수들만 받을 수 있는 큰 행사다. PSV는 박지성의 유럽 진출 당시 첫 소속팀이었다. PSV에서 활약한 건 3시즌뿐이었지만 구단이 공식 은퇴 행사를 열어 줄만큼 박지성이 PSV에서 보인 모습은 특별했다. 하지만 이는 박지성 혼자만의 힘으로 이뤄낸 것이 아니었다. 당시 박지성의 활약 그 이면에는 그의 스승 히딩크 감독의 굳은 믿음이 있었다.


히딩크는 PSV 시절 전부터 박지성에 대한 전폭적인 믿음과 지지를 보냈다. 무명의 유망주였던 박지성을 2002 월드컵 멤버로 전격 발탁한 히딩크는 그를 주전으로 기용했고 박지성 또한 믿음에 화답하며 4강 신화의 주역이 됐다. 그리고 월드컵 이후 히딩크는 네덜란드의 PSV로 부임하면서 박지성을 영입했다. 이적 첫 시즌, 박지성은 무릎 부상과 새로운 환경에 대한 적응에 어려움을 겪으며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시즌 내내 8경기 출전에 그쳤고 선발은 2경기에 불과했다. 같은 팀 선수들과 홈 팬들마저 박지성에 대한 비난을 쏟아냈다. 부푼 기대를 안고 도전한 유럽은 결코 쉽지 않았다. 이처럼 기대에 미치지 못한 박지성이었지만, 히딩크는 묵묵히 박지성을 지지했다. 홈 팬들의 야유를 피해 원정 경기에만 투입하는 등 그를 배려했고 박지성이 유럽 도전에 대한 마음이 흔들릴 때도 끝까지 그에 대한 신뢰를 거두지 않았다.


결국 박지성은 히딩크의 신뢰 속에 부활했다. 이적 첫 시즌인 02-03시즌 8경기 출전에 그쳤던 박지성은 03-04시즌 40경기 출전, 04-05시즌엔 44경기에 출전하며 팀의 주축으로 올라섰다. 특히 04-05시즌은 44경기 중 43경기가 선발 출전일 정도로 팀의 핵심 역할을 담당했고 챔피언스리그에서도 AC밀란과의 4강 2차전에서 선제골을 넣는 등 맹활약하며 유럽 빅클럽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후 박지성은 04-05시즌의 활약을 바탕으로 05-06시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로 이적했다. 맨유에서도 박지성은 총 7시즌을 소화하며 팀의 주축 멤버로 활약했고 은퇴 이후 맨유 엠버서더에 위촉 되는 등 큰 족적을 남겼다. 박지성은 여러 인터뷰에서 수차례 본인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은 히딩크라며 히딩크가 보내준 믿음에 감사를 표했다. 히딩크 역시 종종 박지성에 대해 언급하면서 제자를 아꼈다. 물론 박지성의 성공에는 엄청난 노력과 포기하지 않는 성실함이 뒷받침되었다는 것은 익히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 노력이 더욱 빛을 발휘할 수 있었던 이유는 히딩크의 흔들리지 않는 신뢰가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 윤성욱 Editer '에메리의 자카에 대한 과도한 신뢰가 초래한 부작용'


아스날은 16-17시즌에 그라니트 자카를 영입했다. 자카는 이적 이후 팀 내 주전 미드필더로 지금까지 활약하고 있지만 거친 태클과 피치 위에서의 다혈질적인 행동으로 인해 팬들에게 후한 평가를 받지는 못하는 선수였다. 특히 에메리 감독 시절 이러한 특성이 더욱 도드라졌는데, 이엔 에메리 감독의 무조건적인 신뢰 역시 큰 지분을 차지한다고 볼 수 있다.


자카는 뛰어난 후방에서의 패스 전개력, 다양한 포지션 소화 능력, 강한 왼발 중거리슛 등이 장점으로 꼽히지만 좋지 않은 민첩성, 압박에 대한 대처 능력 부족, 거친 태클로 인한 카드 수집 등 치명적인 단점 또한 갖고 있다. 이로 인해 그가 받는 압박을 분산해 줄 수 있는 파트너나 감독의 전술이 상당히 중요한데, 에메리 감독은 이에 대한 적절한 대처 방안을 고안해 내지 못하고 무작정 그를 주전으로 기용했다. 게다가 에메리 감독은 그가 라커룸 내에서의 입지가 높다는 이유로 19-20시즌 초반에 그를 주장으로 임명했다. 경기력이 좋지 못한 선수를 주장으로 내세우니 당연히 팬들의 비판은 거세질 수밖에 없었고 이는 자카 본인에게도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가 받았던 극심한 스트레스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 하나 있다. 19-20시즌 PL 10R 크리스탈 팰리스와의 홈경기에서 자카는 주장 완장을 차고 선발 출전했다. 60분경 에메리 감독은 자카를 사카와 교체했는데, 교체되어 나가는 도중 관중석에서 홈 팬들의 엄청난 야유가 쏟아졌다. 자카는 이에 대한 대응으로 귀에 손을 가져다 대고 욕설을 했을 뿐만 아니라 주장 완장을 땅에 집어던졌고 유니폼을 벗으며 벤치가 아닌 라커룸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후 자카는 주장직을 박탈당했지만 그가 선수단의 지지가 굳건하다는 이유만으로 경기에 기용되고 꾸준히 단점을 노출하면서 팬들에게 받는 심리적 부담이 상당했음이 드러났다. 결국 에메리 감독은 시즌 도중에 경질되고 말았다.


현재 자카는 아르테타 감독 휘하에서 단점을 보완했고 팀의 핵심적인 미드필더로 거듭났다. 더 나아가 레프트백, 좌측 스토퍼 등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하면서 멀티성이 부각됐고 그에 대한 비판 역시 이전보다 크게 줄어들었다. 그 이면에는 아르테타가 에메리와 달리 그에게 적절한 신뢰를 주고 적절한 역할을 부여하면서 좋은 시너지를 만들어낸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감독의 신뢰가 올바른 방향으로 선수들에게 향한다면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이들도 더 나은 기량을 발휘할 수 있다. 맹목적인 신뢰는 선수의 기량을 오히려 저하시킬 수 있다는 말이다.

# 조재희 Editer '프랜차이즈 스타의 밑거름'


자본의 영향력이 나날이 커지는 현대 축구 시장은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우승을 다투는 최상단에 위치한 팀들은 매년 경쟁에서 더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 이적 시장에 천문학적인 금액을 투자한다. 뛰어난 전력은 구단을 운영하는 데 있어서 모든 선순환 구조의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흐름은 자연스레 선수의 가치를 논하는 데 있어서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거대한 자본을 짊어진 구단들의 지출은 비교적 현재 지향적이다. 미래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미래엔 또다시 그 상황에 맞는 어마어마한 지출을 이뤄낼 것이라는 말이다. 그들은 마치 한계가 없는 것처럼 돈을 쏟아붓는다. 이러한 기조에 따라 발생하는 빈번한 이적은 선수들로 하여금 경쟁 구도를 과열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각광받는 선수들은 더욱 밝게 빛나게 되고 도태된 선수들은 그 빛을 빠르게 잃어간다. 그러나 실력 있고 인정받는 선수들을 모든 팀이 가질 수 없다. 모든 팀이 그들을 품을 자본력을 가진 것도 아니다. 몇몇의 팀들은 한 발짝 물러서서 조금 더 현실적인 답안을 내놓아야 한다.


리버풀은 그들이 가진 클럽 규모, 경쟁 팀들의 지출 수준에 비해 한참 떨어지는 투자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매 시즌 부진한 이적 시장 성과로 인해 팬들의 실망은 더해지고 있으며 기대감 또한 낮아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리버풀엔 하비 엘리엇이라는 초신성이 등장하였다. 경제력이 부족한 구단 상황과 맞물려 위르겐 클롭 감독은 시선을 곧바로 팀의 유망주로 돌렸고 리버풀은 그에게 경험치를 부여하기에 너무나 충분한 환경이 만들어져 있었다.


엘리엇은 2004년 생의 어린 유망주이다. 엘리엇 앞에 놓인 미래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지만 팀의 상황과 맞물려 장기적이고 꾸준한 기회를 얻을 환경이 갖춰졌다. 가장 중요한 것은 본인의 인내와 노력이겠지만 반대로 리버풀 또한 그에게 적절한 신뢰를 보내줄 필요가 있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아직 미성숙한 선수이기 때문에 가진 잠재력을 꽃피워 훌륭한 커리어를 이뤄 나가기 위해선 리버풀도 엘리엇에게 충분한 신뢰를 보내주어야 한다. 물론 최근 부상으로 인해 엘리엇의 도전에 제동이 걸렸지만 그는 리버풀을 넘어 잉글랜드 전역을 대표하는 프랜차이스 스타로 자리매김할 능력이 있는 선수다. 엘리엇은 클롭이 보내는 신뢰에 반드시 긍정적인 응답을 보낼 것이다.

# 김성준 Editer '신뢰를 외면한 로빈 반 페르시'


축구라는 신성한 스포츠에 반드시 필요한 덕목 중 하나는 바로 신뢰다. 보드진이 감독에게, 감독이 선수들에게 신뢰를 주고 그에 보답하면서 팀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감독이 선수에게 신뢰를 보냈지만 그 신뢰에 보답하기는커녕 뒤통수를 친 선수가 있다. 그는 일명 '반통수' 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로빈 반 페르시다.


반 페르시는 네덜란드 '페예노르트 로테르담'에서 데뷔했다. 당시 뛰어난 재능으로 큰 주목을 받았지만 클럽 안팎으로 구설수에 휘말렸고 감독과의 불화까지 발생하면서 아스날로 이적했다. 당시 아스날 팬들은 마치 시한폭탄과 같았던 반페르시의 모습에 많은 우려를 표했지만 그 덕분에 굉장히 싼 가격에 영입할 수 있었다.


반 페르시는 아스날로 이적한 후에도 불같은 성격으로 상대팀 선수들과 잦은 마찰을 빚었다. 이에 앙리, 베르캄프와 같은 선수들뿐만 아니라 아르센 벵거가 멘토로서 주기적으로 반 페르시를 관리했다. 그 이후 윙어에서 스트라이커로 포지션을 변경했고 실력 또한 점점 상승곡선을 그렸다. 그러나 문제는 반 페르시가 심각한 유리몸이었다는 것이다. 반 페르시는 늘 중요한 순간마다 부상으로 경기를 뛰지 못했다.


팀의 주전 스트라이커였던 아데바요르를 내보내고 반 페르시를 주전 스트라이커로 기용한 09-10시즌에도 그는 단 16경기 출전에 그쳤다. A매치에서 장작 6개월 부상을 당했기 때문이다. 그런 반 페르시에 대해 팬들은 부정적으로 평가했지만 벵거는 끝까지 신뢰를 보냈다. 이와 같은 벵거의 믿음에 반 페르시는 10-11시즌 후반기부터 살아나기 시작했고 11-12시즌 주장으로 선임되어 리그 전 경기 출전 30골 14도움이라는 경이적인 퍼포먼스로 아스날을 이끌었다.


그러나 문제는 얼마 남지 않은 계약기간이었다. 아스날과 관련된 모든 이들이 반 페르시의 잔류를 바랐지만 결국 반 페르시는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설상가상 라이벌 클럽인 맨유와 반 페르시의 링크 기사가 영국 전역을 뒤흔들었다. 당시 벵거는 이적 전날 저녁식사에 반 페르시를 초대해서 잔류를 제안했지만 그는 우승을 원했고 이적을 선택했다. 그리고 이적 기자회견에서 반페르시는 " 내 안의 작은 아이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라고 속삭였다"라는 말을 하면서 전세계 아스날 팬들의 불화살을 받아야만 했다.


아르센 벵거는 유리몸의 대명사였던 반 페르시에게 끊임없는 신뢰을 보냈다. 하지만 반 페르시는 벵거의 믿음을 저버리고 라이벌 구단으로의 이적을 단행했다. 신뢰를 저버리고 라이벌 구단으로 이적한 스트라이커, 반 페르시. 어쩌면 신뢰를 외면했던 최악의 선수가 아닐까.

# 박수용 Editer '팀에 신뢰를 불어넣은 주장 옵둘리오 바렐라'


신뢰받는 주장의 기준은 무엇일까? 여러 유형이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팀이 어려울 때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모습은 신뢰받는 주장의 필수적인 덕목이라고 볼 수 있다. 혹자는 극적인 상황을 노리는 대중매체의 영향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실제로 축구 역사에서 이와 같은 사례가 많았음은 부정하기 어렵다. 신뢰받는 주장은 축구 내적인 부분에서도 부족함이 없으며 축구 외적인 리더십까지 겸비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1950년 여름, 브라질에는 우루과이 대표팀으로서 브라질과의 월드컵 결승 리그 마지막 경기를 앞둔 신뢰받는 주장이 존재했다. 그의 이름은 바로 El negro Jefe, 즉 검은 우두머리로 불렸던 옵둘리오 바렐라다.


당대 세계 최고의 하프백이었던 옵둘리오 바렐라는 1942년 우루과이의 코파 아메리카 우승에 기여하며 대회 MVP를 수상했던 스타플레이어였다. 그리고 1950년 월드컵에서는 우루과이 대표팀의 주장으로 대회에 출전했고 팀의 결승 리그 진출을 선봉에서 이끌었다. 결승 리그에는 개최국 브라질, 당대 최강의 팀 잉글랜드를 따돌리고 진출한 스페인, 디펜딩 챔피언 이탈리아를 밀어내고 올라온 스웨덴이 기다리고 있었다.


결승 리그에서 가장 순항하던 팀은 브라질이었다. 브라질은 스웨덴과 스페인을 대파하며 2승을 선점했다. 반면 우루과이는 스페인과는 2-2로 비겼고 스웨덴에게는 전반전까지 1-2로 밀리다가 후반전에 오스카 미게즈의 멀티골로 3-2로 신승했다. 당시 결승 리그는 2승인 브라질이 1승 1무의 우루과이와 비기기만 해도 우승을 확정 짓는 상황이었다. 실제로 결승 리그에서의 경기력도 브라질이 더 훌륭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중들은 물론 언론들까지 브라질의 우승을 단언했다. 우루과이의 선수단과 감독 후안 로페즈까지 동요했을 정도였다. 이에 주장 바렐라는 감독마저 제 역할을 못하는 상황에서 팀을 다독였다. 동료들을 모아놓고 브라질의 우승을 확실시하는 신문지에 소변을 누기 시작했다. 바렐라가 당당하게 소변을 누자 동료들도 그를 따라 그 신문지에 소변을 누며 분위기를 다잡았다.


그 이후 수비적인 전술을 지시하려 하는 후안 로페스에게 바렐라는 "당신은 좋은 감독입니다. 하지만 오늘은 실수하셨습니다. 만약 우리가 수비적으로 나온다면 우리도 스페인이나 스웨덴과 같은 꼴을 당할 것입니다."라고 말하면서 두려움에 빠진 감독의 마음을 돌렸다. 그리고 경기 시작 직전 동료들에게 "경기는 경기장에서 이루어진다. 경기장에 나오면 관중들을 신경 쓰지 마라. 그들은 단지 숲 밖에 있을 뿐이니까.", "경기를 하는 것은 우리다. 자! 이제 쇼를 보여주자!"라고 말하며 동료들을 고무시켰다.


하지만 브라질의 공격진은 여전히 강력했다. 바렐라가 지지뉴를 무력화시켜도 아데미르와 자이르가 우루과이의 수비진을 괴롭혔다. 결국 후반 2분에 프리아사에게 선제골을 내줬다. 이 골은 오프사이드 논란이 있어 바렐라가 팀원들을 대신해 주심에게 항의했지만 주심은 브라질 관중들에게 눌려 골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항의가 소용없음을 알았던 바렐라는 이제 우리가 본때를 보여줄 때가 왔다며 팀을 독려했다.


바렐라의 독려 이후 우루과이는 방심한 브라질의 수비진을 공략했고 결국 후반 21분에 스키아피노의 동점골과 후반 34분에는 기지아의 역전골이 터졌다. 바렐라는 역전한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팀을 이끄는 동시에 브라질의 에이스 지지뉴를 무력화시키며 우승을 일궈냈다.


보통의 선수가 이런 말을 한다고 분위기를 뒤집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바렐라는 당대 세계 최고의 하프백이었다. 즉, 실력이 출중함은 물론 강인한 정신력으로 냉정함을 유지했으며 열정적으로 팀을 독려하는 열성까지 보여주었다.


그야말로 냉과 온의 적절한 조화가 이뤄진 신뢰받는 주장 그 자체였던 것이다. 이처럼 우수한 실력, 냉철한 상황 분석력, 열정적인 리더십을 모두 갖춘 바렐라의 일화는 지금도 모든 주장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 그란데사커 Editer '신뢰로 뭉친 1982년 스페인 월드컵의 아주리'


1982년 월드컵에서 이탈리아의 우승을 예견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1980년 이탈리아를 강타한 승부조작 스캔들, 일명 '토토네로' 사건으로 이탈리아의 축구계는 흔들리고 있었으며 지난 대회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준 스트라이커인 파올로 로시 또한 스캔들에 연루되었다는 혐의로 2년 출장 정지 처분을 받았기 때문이다. 물론 로시는 2년간의 징계를 끝낸 뒤 월드컵 개막 2달 전에 복귀했지만 출전은 사실상 불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아주리의 수장, '엔초 베아르초트' 감독의 생각은 달랐다. 로시는 스캔들에 자신이 연루되지 않았다며 결백을 주장하였는데, 베아르초트는 이를 신뢰했다. 또한 선수로서도 로시를 신뢰하며 그를 소집 명단에 포함시켰다.


그렇게 아주리의 1982년 월드컵 도전이 시작됐다. 당시 1982년 월드컵은 24개국이 참가하여 4팀씩 6조로 1차 조별리그를 거친 후, 각 조의 1, 2위 팀(총 12팀)이 2차 조별리그에 진출하여 3팀씩 4조로 2차 조별리그를 거쳤고 각 조의 1위팀이 준결승 토너먼트를 치르는 방식이었다. 이탈리아는 1차 조별리그를 2위로 통과하긴 했지만 3전 3무라는 실망스러운 경기를 펼치며 거센 비난을 받아야만 했다. 베아르초트가 선택한 로시까지도 무득점에 그첬다.


2차 조별리그에 올라온 이탈리아의 상대는 디펜딩 챔피언이자 디에고 마라도나가 버티고 있는 아르헨티나와 지쿠-소크라치스-파우캉-세레주의 4중주를 필두로 한 세계 최고의 팀 브라질이었다. 모두가 이탈리아의 탈락을 단언했다. 그러나 이탈리아는 아르헨티나에 2 대 1, 브라질에 3 대 2 승리를 거두며 예상을 뒤엎고 준결승에 진출했다. 월드컵 역사에 남을 죽음의 조에서 말이다. 특히 두 번째 경기인 브라질 전의 주인공은 단연 파올로 로시였다. 전반 5분 만에 선제골을 기록했고 브라질이 곧바로 동점을 만들었지만 로시는 또다시 득점을 성공시키며 달아났다. 후반 파우캉이 다시 한번 승부를 원점으로 되돌리지만 파올로 로시의 결승골이 터져 나왔다. 로시는 해트트릭을 완성시키며 이 명승부를 자신의 경기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제 우승까지 남은 승리는 단 2경기. 부활한 로시의 이탈리아는 강력했다. 준결승에서는 폴란드를 맞아 2 대 0 승리를 거두었는데, 로시는 멀티골을 기록하였고 서독과의 결승전에서도 로시의 득점포는 멈추지 않았다. 그의 귀중한 선제골, 마르코 타르델리의 추가골, 알레산드로 알토벨리의 쐐기골이 터지면서 점수 차를 벌렸다. 후반 막판 서독의 파울 브라이트너가 만회골을 기록하였으나 경기를 뒤집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로써 아주리는 1934년, 1938년에 이어 통산 3번째 월드컵 트로피를 들어 올리게 됐다.


이 대회의 주인공은 단연 파올로 로시였다. 1차 조별리그 3경기와 2차 조별리그 첫 경기까지만 해도 최악의 선수였지만 세계 최강 브라질을 상대로 한 상징적인 해트트릭과 준결승에서의 멀티골 그리고 결승전에서의 선제골은 정말 결정적이었다. 이러한 활약으로 로시는 대회 득점왕과 MVP, 그리고 1982년 발롱도르 위너가 된다.


물론 로시의 활약으로만 월드컵 우승이 가능했던 것은 아니다. 베아르초트 감독은 상대의 전술을 연구하여 팀을 조직하는 부분에서 특히 뛰어났고 선수 개개인에게는 자유로운 움직임과 플레이를 지시하는 유형의 감독이었다. 이러한 부분이 큰 원동력이 되었던 셈이다. 이 대회에서는 3-5-2 포메이션을 기반으로 했으나 전체적으로 포메이션에 얽매이지 않는 전술을 보여주었다.


라이트 윙백인 브루노 콘티는 윙어 출신으로 거의 윙어나 다름없는 움직임을 보였으며 레프트백인 안토니오 카브리니 또한 적극적인 오버래핑으로 공격에 가담했다. 또한 스위퍼 가에타노 시레아는 수비 시 수비라인 뒤에서 조율을 하다가도, 공격 시 전진하여 빌드업의 중심이 되는 사령관이었다. 중원의 타르델리-오리알리 듀오와 플레이메이커 및 처진 스트라이커였던 안토뇨니-그라지아니도 조직적이면서도 자유로운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즉, 3-5-2 포메이션이었지만 사실상 4-4-2 포메이션, 4-2-1-3 포메이션과 같이 유동적인 플레이를 펼친 것이다. 이 전술은 토탈 사커와 이탈리아의 전통적인 전술인 카테나치오 접목시킨 조나 미스타 전술로, '조나 미스타'라는 이름부터 '복합 지역' 정도로 직역된다.


우승의 원동력에는 또 하나가 있었는데, 이는 바로 언론과의 접촉을 차단한 것이었다. 정확히는 1차 조별리그에서의 3무 부진 이후 베아르조트 감독은 팀을 비판하던 언론과의 접촉을 모두 차단했다. 선수들이 최고의 플레이를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 것이다. 이처럼 베아르초트 감독은 파올로 로시를 신뢰했고 언론과의 접촉을 막아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이러한 신뢰를 원동력으로 유동적이고 자유로운 플레이를 펼친 선수들은 진정한 '원 팀'이었다. 그리고 1982년 스페인의 여름을 짙은 푸른색으로 물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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