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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 Oct 20. 2024

여행을 가자고 하더라고.

근데 자기도 목적지를 모른대.


여행을 가자고 하더라고. 근데 자기도 목적지를 모른대.

그게 무슨 말이야? 그러면 여행을 어떻게 가?

일단 내일 아침에 출발하는 버스를 아무거나 타재. 그리고 어디든 내키는 데 내리자는 거야. 거기를 좀 걷고 구경하다가 또 아무 버스나 타재.

좀 이상한데… 완전 자유여행 같은 건가? 가서 언제 돌아와?

몰라. 일단 가재.

그게 무슨 말이야?

어디로 가는지도 정하지 않았고, 뭘 보게 될지도 확실히 모르고,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고, 심지어 나중엔 따로 갈 수도 있다더라.

그게 말이 돼?

몰라. 일단 나랑 같이 가는 거 자체가 중요한가 봐.

아니, 그럼 그 사람이 네가 가고 싶게끔 만들어야 하지 않아? 근데 목적지도 없고 아무것도 없으면 누가 따라가겠어?

…근데 난 가보고 싶더라고.

미쳤어?

그럴지도 몰라. 근데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게 목적지일까? 함께 떠난 사람과 뭔가를 보고, 듣고, 느끼는 그 과정이 더 중요할 수도 있지 않을까?

…됐다, 그냥 가라. 처음부터 그럴 마음이었으면서 왜 물어본 거야?

누가 반대를 해도 가고 싶은 마음이 그대로인지 궁금했어.

진짜 때리고 싶다.


사랑은 여행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적지를 알 수 없는 여행. 오로지 ‘당신과 함께 하고 싶다’라는 마음만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그래서 불안하지만, 그 손을 잡고 알 수 없는 길을 향해 한 걸음 내디뎌 보고 싶어지는 것.


처음에는 당신의 눈동자를 보고 시작하지만, 나중에는 눈, 코, 입, 얼굴, 손, 발… 그런 당신이 딛고 선 땅과 우리가 함께 내딛는 발끝도 보게 될 것이다. 자갈밭을 걸을 때 당신의 걸음이 얼마나 느려지는지, 오르막에서 그 호흡이 얼마나 밭아지는지, 그 와중에도 내 손을 고쳐 쥐고 나와 눈을 맞추는지를 보게 될 것이다. 당신도 내게서 그런 모습을 보게 되겠지.


많은 것을 보게 되리라 생각한다. 아름답고, 추하고, 멋지고, 무섭고… 어떤 수식어가 붙을지 모르는 것들을 보며 웃고, 울고, 감탄하고, 떨고, 어쩌면 화를 내게 될지도 모른다. ‘이런 곳에 오게 되다니 정말 기쁘다’고 할 수도 있고, ‘어쩌다 이런 곳에 오게 되었지’하고 한탄할 수도 있다.

 

그러다 나중에는 손을 놓게 될지도 모른다. 서로 다른 길로 가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의 여행은 여기까지니까 이제부터는 따로 가자’고 하게 될지도. 그러면 울게 될까. 이미 원래 있던 자리에서 너무 먼 곳으로 와버려서 다시 돌아가는 길을 모르겠다고,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당신이 남기고 간 발자국을 보면서 눈물만 뚝뚝 흘리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면 너무 슬프겠지.


하지만 되돌아갈 것을 걱정하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법이다. 손을 잡고 함께 도달한 그곳에서 나는 새로이 걸음을 뗄 것이고, 함께 보고, 듣고, 느낀 모든 시간은 그 자체로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사랑은 목적지 없는 여행이다. ‘어디에’ 가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가는 것' 그 자체가 중요한.


그러니 나는 가는 것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불가항력이라고 되뇌면서 모르는 척 손을 잡는다. 어디로 가는지는 몰라도 일단 가보고 싶으니 어쩔 수 없다. 오로지 당신과 함께 하고 싶기 때문에.



이 글을 수십 번 다시 읽고 고쳤다. 처음에는 한 사람 같은 두 사람의 대화 부분만, 나중에는 해설 같은 산문이 덧붙었다. 고친 부분은 거의 없다. 그렇다면 내 마음도 그대로라는 뜻이 아닐까? 아니, 그대로는 아니다. 목적지 없는 여행이라고 했지만, 이제는 그 알 수 없는 목적지까지 함께 가면 좋겠다는 바람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목적지를 알지 못하니 둘 모두에게 무책임한 바람일 수 있지만, 어쨌든.


사랑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사랑을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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