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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 Dec 17. 2021

스물일곱에 대학을 졸업했다

군대에 가지 않았는데도.

대학교를 8년 동안 다녔다. 군대를 갔다 온 남학생이면 그다지 이상하지 않을 햇수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여자다. 군대는 가지 않았지만 유학은 다녀왔다. 러시아에서 10개월을 지냈다. 그렇다고 해도 학부를 8년 동안 다니는 건 너무 심하지 않나? 생각이 든다. 학문에는 나이가 없다며 다양한 연령대가 대입에 도전하는 시대지만, 대학이 갖는 위상이 ‘학문의 상아탑’에서 ‘취업사관학교’로 옮겨 간 지 오래인 지금 여자가 대학교를 8년이나 다닌다는 건 빠른 경제적 독립과 안정을 촉구하는 사회의 엄격한 시선으로 봤을 때 어떻게 보일지에 대해 생각한다. ‘학부를 왜 8년이나 다녔어요?’라고 물을까, 아니면 ‘오래 다닌 만큼 스펙도 많이 쌓았겠죠?’라고 물을까.



11월에 서울에 왔다. 마지막 학기였다. 전 세계를 강타한 바이러스로 인해 아홉 번째 학기를 지방의 본가에서 보내고, 2년이 다 되어가는 사투를 바이러스와의 공생으로 마무리하려는 정부의 시책 아래 열 번째 학기의 마지막 두 달을 서울에서 보내게 되었다. 오고 싶지 않았다. 성년이 되기 전까지는 지방에서만 살았던 내게 서울은 아주 많은 것을 보여주었다. 아마 어느 나라든 그렇겠지만, 수도에는 그 나라에서 가장 좋은 것과 가장 나쁜 것이 공존한다.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가는 서울, 가만히 있으면 뒤처지지만 뛰어도 현상 유지밖에 할 수 없겠다는 기분이 드는 신기한 곳이었다. 그래서 결국 서울살이 5년 차에 지방의 집으로 돌아갔다. 무한경쟁에서 살아남아야지만 내 가치를 증명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다고, 먹는 시간과 자는 시간을 줄이며 공부를 하고, ‘나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를 거야’라는 오만과 ‘다들 이 정도 노력은 하니까, 이보다 더 노력하는 사람도 많으니 더 열심히 해’라는 다그침을 오가며 스스로의 목을 졸랐던 내게 떨어진 진단은 번아웃이었는지, 우울증이었는지.


스스로 만든 지옥이었다.  가족,  친구,  주변의 나를 사랑해준 사람  누구도 나를 다그친 적이 없었다. 빠른 졸업, 빠른 취업, 빠른 결혼 같은, 예전보다는 다양성을 존중하는 시대라고 해도 여전히 권장되는  ‘정상적인루트를 내게 강요하거나 권유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감사하게도. 하지만 나는 언젠가부터 사회가 정하고 다수가 따르는 ‘정상성 집착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거기서 이탈해도 죽지 않는다는 ,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존재한다는  그때는 믿지 못했다. 한국에서 가장 다양한 사람이 존재하는데도 어째서인가 가장 획일화된 도시처럼 보였던 서울을 떠나고서야 그걸 알았다. 또한 그때의 나는 치를 떨었던 서울조차 이제는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방법으로 행복을 찾으려 노력하는 사람이 가득한 도시임을 안다. 그냥 그때는 서울이 무작정 미웠던  같다.


그리고 열 번째 학기를 보내러, 8년 만에 대학을 졸업하러 돌아온 서울은 즐거웠다. 추억이 가득한 교정을 홀로 거니는 건 외로웠지만 이렇게 홀로 과거를 곱씹을 수 있는 것도 특별한 경험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내 추억을 장식해주었던 많은 사람, 이제는 사회인이 된 여러 사람을 다시 만나고 이야기를 들으며 길었던 학부 생활 역시 결코 헛된 시간은 아니었음을 실감했다. 오케스트라 대신 공부만 했다면 지금 이 사람들을 만나지 못했겠지. 하지만 공부만 열심히 했어도 좋았을 것 같다. 지금의 나는 안다. 나는 과거의 내 선택이 지금의 나를 어떤 자리에 데려다 놓았든 간에, 어디서든 의미를 찾고 기쁨을 찾아낼 사람이라는 걸.



대학원에 가고 싶었다. 지금도 그 마음은 그대로다. 러시아어가 좋고, 러시아 문학이 좋다. 하지만 하고 싶은 게 명확해도 불안하다는 걸, 아니 사실 인간은 사는 내내 불안하다는 걸 요 며칠 사이에 깨달았다. 이 나이가 되어서야 취업사이트에 들어가 보고, ‘취업일기’라는 걸 검색해봤다가 내가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진 사람인지 깨달았다. 이름을 들어본 기업의 합격자 스펙과 아무것도 없는 내 스펙을 비교해보며 우울해하고, 인생을 헛산 것 같다고 생각했다. 먼저 사회에 나간 모든 사람이 ‘뭘 해서든 먹고살게 된다’라고 말해주었지만 취업과 취준의 ㅊ조차 모르는 내게는 딴 세상 이야기처럼 들렸다. 서탈(서류탈락)이니 최탈(최종면접탈락)이니 하는 단어와 지쳤지만 끊임없이 취업에 도전하며 노력하는 사람들의 기록을 보고 나 자신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 함께 밀려오는 불안감은 ‘내가 이 사회에 어떤 식으로든 이바지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에 대해서였다. 그렇지 않으면 나라는 사람은 가치 없는 사람이 되는 것 같아서.


낮에는 마지막 기말고사 공부를 하고 밤에는 취업 관련 정보를 찾으며 우울해하는 날을 반복하다가 어제야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또다시 회한에 잠겨 다른 사람들은 다 해본 것 같은, 스펙을 쌓기 위한 경험을 해보지 못한 과거의 나를 비난하는 모습이 사회가 정해놓은 ‘정상성’에 대한 집착과 이어져 있음을 깨달았다. 물론 합리화일수도 있다. 다른 친구들은 연차가 쌓여갈 때도 나는 취업조차 하지 못한 상태가 아닐까 하는 불안감, 친구들이 부모님께 용돈을 드릴 때 나는 내 생활에만 급급하게 살고 있지 않을까 하는 부끄러움. 먼 미래는커녕 내일조차 알 수 없는 것이 삶인데도 나는 ‘현재의 내’가 그러한 정상성 궤도에서 매우 멀리 이탈했다는 사실만으로 과거의 나는 물론이고 과거의 내가 일구어낸 지금의 나까지도 비난하고 있었다. 그 궤도를 열심히 따라가는 사람들에게는 나한테 없는 것이 있을 테고, 그것을 따라가지 않았던 내게는 또 그들에게 없는 것이 분명히 존재할 텐데.


그렇다면 그 비난과 뒤늦은 후회를 자양분으로 삼아 지금이라도 다른 이들의 뒤꽁무니라도 쫓아가려고 노력해야 할까? 다시금 사회가 권장하는 ‘정상적인 궤도’에 들어가기 위해 발에 피가 나도록 달려야 할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것과, 그래서 ‘어떤 방향으로 움직일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은 다르다. 언젠가는 나도 내가 속한 사회와 집단의 요구에 맞춰 나의 고유함을 다듬고 깎아내야 함을 안다. 하지만 당장 지금부터 그러고 싶지는 않다. 나는 공부를 하고 싶다. 나는 언어를 공부하고, 문학을 공부하고, 그것을 통해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고 싶다. 인간에게 작용하는 사회의 이데올로기를 파헤치고 싶고, 그것이 인간의 감정을 어떻게 이용하는지를 알고 싶다. 내가 하고 싶은 건 그런 공부다.


그리고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내 심장이 어떤 일을 할 때 뛰는지 알게 된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뒤늦은 스펙 쌓기나 취업 준비가 아니다. 물론 딸을 아주 먼 곳까지 보내어 긴 대학 생활 내내 지원해주신 부모님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건 그만둬야 한다는 걸 안다. 부모님도 그렇게 말씀하셨고. 서울에서 보낸 마지막 학기는 등록금과 생활비를 내가 번 돈으로 해결하며 나름대로 독립을 연습해보는 기간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고작 두 달이었지만 깨닫고 느낀 바가 많았다.



대학교를 스물일곱 살에 졸업하는 내가 앞으로 어떤 삶을 살게 될지 나조차도 궁금해서, 부모님조차도 ‘나중에 뭘 하려고 이러나’하고 걱정하실 수도 있는, 현실감보다는 이상과 몽상과 고집만 가득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궁금해서, 건방진 결심과 포부와 선언으로, ‘학생’인 나에게 안녕을 고하고 타이틀 없는 나에게 인사를 건네고자, 꿈으로 향하는 과정의 첫 페이지로써 이 글을 썼다. 나도 내가 어떻게 살게 될지 궁금한데, 혹시나 당신도 대체 이런 사람은 어떻게 살게 될까 궁금해졌다면 이 글의 부차적인 목적도 달성한 셈이다. 그렇다면 종종 이 브런치에 들러주어도 괜찮지 않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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