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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토일 Feb 27. 2024

#7. 철권, 오스카와일드 그리고 아버지

낙선소설

 불모의 화산섬에 마그마가 이글이글 끓었다. 카즈야가 헤이하치를 안아 헤이하치가 그에게 했던대로 낭떠러지로 던진다. 카즈야는 뿔이 솟아 있었고 긴꼬리에 이제는 날개까지 돋아 있었다. 그는 세상의 정의를 다짐했다. 그러자 엔딩 스크롤이 올라갔다.   

   

아이들은 부모를 사랑함으로써 출발하고 

나이가 들면서 부모를 평가하며 

때때로 부모를 용서하기도 한다. 

오스카와일드.     


 미주는 낮은 소리로 육두문자를 내뱉으며 조이스틱을 내려놓으려다 멈췄다. 남아있던 한 챕터가 진행되었다. 게임은 이제 수수께끼의 남자를 따라갔지만, 그녀는 작고한 소설가의 다소 교훈적인 훈화 말씀을 듣고 무엇을 위해 여기까지 싸워 온 것인가를 생각하다 게임을 껐다.     


  선우의 고향 후배 봉철은 육개장에 밥을 말며 미주에게 오라고 손짓했다. 선우는 자신이 죽으면 꼭 연락해야 할 사람들의 연락처를 미주에게 알려주었다. 그 중에 봉철이 첫 번째였다. 

 

 집에 돌아온지 1년 만에 선우는 세상을 떠났다. 30년 만에 만나, 다시 또 긴 이별을 했다고 이번 이별은 기약도, 만약도 없다며 미주는 선우와의 짧았던 만남에 대해 생각했다. 봉철은 명함을 건네며 선우의 이야기를 했다. 진숙과 미주가 부둣가에서 저녁노을을 바라볼 때, 그는 사채업자들에 쫓기고 있었다. 업자들은 선우의 차 앞을 서성이고, 부둣가 여관방을 뒤지며 가족을 찾고 있었다고 했다. 선우는 그 길로 봉철이 아저씨한테 가서 의지했다. 진숙과 미주는 장인어른한테 가면 살거라고 생각했고 오히려 자신이 말없이 사라져 주는 게 더 나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진숙의 아버지는 검찰청 조사관으로 있었기 때문에 사채업자들도 그 댁에는 얼씬도 못 할거라고 생각했다. 선우는 가끔 사진 한장을 꺼내 보며 봉철에게 자식 자랑을 하기도 했다. 자신을 쏙 빼닮은 고기 호랑이라고 말했다. 봉철은 진숙을 형수라고 불렀다. 진숙은 언제 봤다고 형수냐고 앙칼지게 말하면서도 그 사람 따순 밥은 먹고 다녔냐고 확인하듯 선우의 안부를 물었다. 봉철은 미주에게 너무 긴 원망은 하지 말라고 말했다. 미주는 선우가 가족을 버리고 갈 게 아니라 어떤 힘든 일도 같이 이겨내야 했다고. 그게 부모고 그게 가족 아니냐고 맺힌 말들을 속으로만 눈덩이처럼 굴리다가, 이제와서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이에요. 하고 말했다.

 

 미주는 석달만에 선우의 산소를 다시 찾았다. 장례 때 못 다한 말을 하고 싶어서였다. 진숙은 선우가 좋아했던 육회를 꼭 사가라고 당부만할 뿐 같이 가지 않았다. 미주는 선우의 봉분에 풀을 뽑고 회를 펼치고 막걸리를 따랐다. 진숙에게 페이스톡을 했다. 진숙은 동네 언니들과 콜라비를 깎아 먹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 남자 잘 있냐고 물었다. 미주는 잘 있다고 말했다. 주변에 있던 엄마의 나이든 친구들은 미주보고 효녀라며 한마디씩 했다. 겉으로만 보이는 건 오해를 불러오기 마련이었다.

 

 미주는 막걸리를 종이컵에 따라 마셨다. 선우가 거기 앉아 있기라도 한 것처럼 두 손으로 그랬다. 미주는 지갑을 꺼내고 진숙 몰래 가져온 사진 하나를 꺼냈다. 선우가 보잉 선글라스를 끼고 어린 자신을 바라보는 사진이었다. 미주는 선우처럼 사진을 지갑에 넣고 다녔다. 앨범에서 꺼낸 기억의 작은 조각을. 막상 선우가 누워있는 봉분 앞에 마주 앉자, 아무것도 말이 되어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미주는 그렇게 멈춰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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