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망고쟁이 Dec 12. 2023

나, 글 쓰는 거 좋아하네

굳이 외면해 왔던 진실

격변의 시기, 스물아홉ㅣEP.02


전공은 문예창작이고, 매일은 아니지만 거의 10년째 앱으로 쓰고 있는 일기, 성인이 된 지 한참 지나 맞은 크리스마스에도 친구들에게 손편지를 써댔던 이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글쓰기를 싫어한다고 생각했다. 시를 쓰라는 전공 수업은 너무 재미없었고, 책 읽는 것도 안 좋아했으며(실제로 지금도 그다지 독서를 하지 않는다. 1년에 한 두권 읽을까 말까 하는 정도?),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을 보면 대단하다 싶긴 했지만 딱 그뿐이었다.


늘 활동적인 사람이었던 내가, '글쓰기'와 같은 정적인 취미를 갖는다는 건 뭔가 어울리지 않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해왔던 것 같다. 보통 독서를 많이 해야 어휘력이 좋아지고 글을 잘 쓴다던데, 책에 대한 흥미는 죽어도 생기지 않는 내가 글을 써 본들, 잘 쓸리 없다고. 그러니 난 글 쓰는 걸 좋아할 리 없고, 어차피 내가 글을 쓰며 밥 벌어먹고 살 일도 없을 거라고. 문예창작학을 전공으로 배웠던 4년의 대학생활 내내 그렇게 생각했다.


20대 초반, 나의 이런 생각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 줬던 건 역시 SNS다. 그때도 가끔 본인 계정에 '한 줄의 멘트'가 아닌 '장문의 글'을 써서 올리는 친구들이 있었는데, 그 친구들의 게시물들에는 '감성충', '개오글' 등의 단어들이 따라다녔다. (자매품으로 '술 먹고 씀?'이 있었다.) 그 옛날 구절절 썼던 싸이월드의 글들이 흑역사가 된다는 것을 깨달아 버린 우리는, 그저 보여질 사진의 임팩트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간결한 멘트나 재치 있는 드립 정도를 덧붙이는 것에 익숙해졌다. 빠르게 휘발되고, 화려하고 자극적인 SNS 세상에 개인의 단상이나 감상이 담긴 글은 멋이 없다고, 그저 오글거린다고 받아들여졌던 시기를 겪었다.




그랬던 내가, 참 웃기지만

글을 쓰며 밥 벌어먹고 산다.


프로젝트 상황을 정리하는 메일을 쓰고, 미안한 마음을 담은 문자를 남기기도 하며, 내 생각을 설명하기 위한 문서를 만들고, 프로젝트를 수주하기 위한 매력적인 이야기가 담긴 제안서를 쓴다. 대학 때 수업으로 배웠던 문학적인 글은 아니지만, 결국 모든 것이 글이었다. 보고를 위한 기획서를 쓰다가도, 그렇게도 지루하기만 했던 전공수업에서 배웠던 것들이 떠올랐다. 특히, 광고회사의 제안서는 숫자로 된 팩트 따위 없는 스토리 하나가 강력한 힘이 되는 경우가 있었으며, 실체 없는 스토리가 힘이 되려면 아주 잘 쓰여 있는 '글'이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또,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난 마음이 어지러울 때마다 일기 어플을 켰다. 잠들기 전 침대에 앉아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면서, 누구에게도 말 못 할 생각과 감정들을 적어댔다. 그렇게 어지러웠던 마음이 정리되는 기분을 느끼기도 하고, 힘들지만 해야 할 일에 대한 의지가 다시 솟기도 하고, 글로 주욱 적어놓고 보니 '생각보다 별 일 아니잖아?' 할 때도 있었다. 아주 가끔은 지독히 우울한 글을 써 내려가면서 그 우울감을 즐기기도 했던 것 같다. 흐리멍텅하게 있던 생각이나 감정들이 글로써 또렷해지면, 나의 그 생각과 감정들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내가 어떤 것에 기뻐하고, 뿌듯해하며, 불편해하고, 속상해하는 사람인지가 보였다. 내가 쓴 글을 보며, 나는 나를 알아갔다.


귀염뽀짝한 일기 어플 <무다(mooda)>를 쓰고 있다.


글 쓰는 것이 좋다. 늘 품고 있었지만 희미했던 그런 마음들이 선명해지는 것도 좋고, 여기저기 있었던 조각들이 글을 통해 하나의 모양으로 딱! 맞춰지는 듯한 그 순간도 좋다. 내가 글을 잘 쓰는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냥 난 내 성격과 생각이 담담히 담겨있는 내 글이 마음에 든다. 20대 후반이 되자, 자연스럽게 SNS를 하던 시간이 점점 줄어들었고, 가끔 보기만 했던 브런치와 블로그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격변의 시기 스물아홉, 나에게 일어난 이 변화도 마음에 든다. 



여전히 책 읽는 건 흥미 없지만,

이제 자신 있게 인정할 수 있을 것 같다.


나, 글 쓰는 거 좋아한다!





작가의 이전글 인스타 스토리가 더 이상 궁금하지 않을 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