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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고쟁이 Jan 31. 2024

스물 하나와 스물 아홉의 차이점

그것은 바로 '생기'가 아닐까?

격변의 시기, 스물아홉ㅣEP.03


유튜브 숏츠를 휙휙 넘기며 보다가, 순간 블랙 아웃 된 화면에 비친 내 표정을 본 적이 있는가? 어느 날엔가, 그때의 내 표정을 한참 바라본 적이 있다. 어떠한 기분도, 어떠한 의미도 느껴지지 않는 표정. 무표정 그 자체. 한때 유행했던 인터넷 소설 속 시니컬한 남자주인공들의 필수 조건이었던 이모티콘 '(-_-)'으로도 표현하기 부족한, 그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또 어느 날엔 회사에서 양치질을 하다가 거울 속 나랑 눈이 마주쳤다. 눈동자끼리 맞닿을 만큼 가깝게 다가가서는 눈을 이리저리 굴려가며 관찰했다. 미세하게 충혈된 눈, 이름처럼 하얗지 못하고 누린자가 되어 있는 흰자가 보였다. 자리로 돌아와 업무를 보다가 문득, 모니터와 얼굴 사이를 손거울로 가로막고는 적나라한 내 얼굴을 마주해 봤다. 삐딱하게 뒤로 젖힌 고개, 반만 뜬 눈, 내려다보는 시선, 묘하게 분노가 느껴지는 입꼬리. 생기라고는 1도, 아니 0.1도 느껴지지 않는 얼이었다.


안나가 되기 전 유미도, 나와 같은 동태눈.



"내 눈빛이 원래 이랬나"

"내 표정이 원래 이랬나"


요즘 이런 생각이 드는 순간을 종종 마주하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꽤 속상하다. 물론 20대 초반이라고 늘 생기에 차 있고 매일이 의욕적이었던 건 아니었겠지만... 문제는 잦아졌다는 거다. 지금의 나는 예전보다 더 자주 무표정하고, 더 오랜 시간을 영혼 없는 눈빛으로 보내고 있다. 텐션이 높아 부담스럽다는 얘기까지 들어 봤던 내가, 어쩌다 이렇게 변한 걸까?





비슷한 맥락으로 SNS상에서 많은 직장인들의 공감을 얻는, <신입 vs 3년 차의 다른 반응> 콘텐츠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신입은 주로 긴장한 채로 또랑또랑하며 열정 가득한 모습인 반면에, 입사 3년 차는 시니컬한 태도와 '어쩌라고?'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 한숨과 영혼 없는 웃음이 디폴트값이다.



대부분... 오른쪽 얼굴에 가까우시죠?


올해로 직장생활 7년 차가 되는 나도, 지독하게 흑화 되었다고 자부한다. 직장생활을 좀 일찍 시작한 탓에 나이에 비해 지나치게 성숙하다는 얘기는 셀 수 없을 만큼 (아직도..ㅎ) 듣고 있고, 와일드한 화법의 직장 상사로부터 '얜 진짜 닳고 닳았지'라는 말도 들어봤다. '닳았다'는 표현이 썩 유쾌하진 않지만, 어찌 보면 정확하다. 20대를 지나며 만나 온 많은 사람들, 가슴 벅차게 좋았던 여행, 심장이 쿵 내려앉을 만큼 충격적이었던 일,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던 실수, 발랑거리는 기분이 들었던 칭찬들로, 나는 점점 닳았다.



지금도 실수는 종종 하지만, 머리가 하얘지지는 않는다. 

그냥 해결하고 수습할 뿐이지. 


여행은 여전히 좋다.

다만, 가기 전부터 얼마나 어떻게 좋을지 이미 너무 잘 안다.






솔직히 이제는 매일 생기 있을 자신은 없다. (내가 이제 생기를 뿜어야지! 한다고 그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럼에도, 내 눈이 반짝거릴 일 정도는 종종 만났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처음'을 만나야 한다는 것이 나의 결론. 너무나 뻔하지만 내가 노력해야 한다. 부지런해야 한다. '처음'을 만나기 위해서는 안 하던 짓을 해야 하니까. 그 어떤 새로운 걸 생각해 봐도 그다지 가슴 뛰지 않는다고? 삐빅- 정상이다. 나도 그렇고. 생각만 해도 가슴 뛰는 일을 찾기는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다. 그러니 그냥 미션 수행하듯 이것저것 해보는 거다. 그러다 보면 갑작스레 가슴이 뛰고 있는 스스로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내 눈이 반짝거리는 순간을 조금씩 늘려갈 수 있지 않을까?


최근의 나에게는 이 브런치가 그랬다. 회사 업무량이 많이 줄어 시간과 정신적 여유가 생긴 시기에, 3년 전쯤 써두었던 저장 글을 발견했다. 그냥 냅다 발행하려 했더니, 작가가 되란다. 브런치 작가가 되기 위한 단계는 생각보다 까다로웠다. 평소였다면 그쯤에서 되돌아섰을 것이다. "됐다, 굳이 뭘 이렇게까지" 싶으니까. 나는 꾸준히 글을 쓸 자신도 없고, 책을 내고 싶은 욕심도 전혀 없으니까. 


근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새로운 글을 쓰고 작가신청까지 일사천리로 마쳐버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그냥 뭐라도 '성취'하고 싶었던 것 같다. 회사에서도 갑작스레 일이 없었고, 운동도 안 했다. 정주행 할만한 드라마도 없었고, 영화도 끌리는 게 없었다. 24시간 내내 동태눈 모드에서 벗어나질 못했었다. 그렇게 갑자기 동태눈의 브런치 작가가 되어버렸다.


그 뒤로 며칠간은 이미 발행된 내 글을 계속 읽어보고, 1시간마다 통계를 확인했다. 유입된 경로를 다 눌러보기도 하고, 좋아요를 눌러준 분들의 계정을 눌러봤다. 그러다 브런치 메인에서 내 [하울의 움직이는 깟깟마을] 글을 발견했을 때, 매일 보던 곳에 떡하니 내가 찍은 여행 사진과 내가 쓴 글 제목이 걸려 있다니. 민망해서 아무도 몰랐으면 하는 마음과, 동네방네 모든 사람들이 알아줬음 하는 마음이 뒤섞여서 그런지. 괜히 심장도 조금 발랑거렸다. 그때의 내 눈을 들여다보진 않았지만, 분명 동태눈은 아니었을 것이다. 눈이 반짝거릴 일을 갑작스레 만난 순간이었으니.



여러 번 새로고침해서, 내 글이 가장 큰 영역으로 보일 때를 캡처했다.(ㅋㅋㅋㅋ)



이직이나 퇴사처럼, 직장인으로서 눈이 반짝이다 못해 도파민이 폭발하는 그런 이벤트까지는 아니더라도. 브런치처럼, 갑작스레 눈이 반짝여지는 일들이 작년보다는 조금 더 많은 한 해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결국 나의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어쨌든, 찐 스물아홉이 되어버린 이 시점. 나의 올해 계획은 잃어버린 생기찾기 프로젝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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