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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고쟁이 Jun 12. 2024

독립으로 키우는 독립심

사람을 너무 좋아하는 1인 가구

격변의 시기, 스물아홉ㅣEP.04


"그래서 내가 이렇게 말했더니, 답장이 뭐라고 왔게?

이런 말을 하더라니까, 기다려봐 카톡 다 캡처해서 보내줌. 봐봐"


화나는 일이 있었을 때, 썸을 타기 시작했을 때, 놀라운 일이 있었을 때. 나의 심경에 조금이라도 변화가 생겼다면 당장 누군가를 붙잡고 구구절절 털어놓아야만 하는 병에 걸렸던 시기가 있었다. 주로 친한 친구들이 그 대상이었고, 그들에게 한참을 털어놓고도 모자라 똑같은 레퍼토리로 애인이나 가족에게 똑같이 해대야만 성에 차던 시기.


지금 생각하면 그런 내가 버거웠던 사람도 있었겠구나 싶다. 나는 상대의 상태를 파악하기보다는 나의 상태를 설명하기에 급급했었다. 내게 재미있는 이야기가, 당연히 그들에게도 재미있을 거라고. 나를 화나게 하는 이야기에, 당연히 그들도 같이 화를 내줄 거라는. 그런 어리석고 이기적인 생각이 그때의 나에겐 당연했다.


지금은 안 그러냐고? 

아니, 사실 난 아직도 그런 사람이다.





전화...? 참아...! 할말...? 참아...!


물론 이제는 '꾹 참기' 마스터다. 와다다다 써놓은 카톡 다시 읽으며 전송 버튼 꾹 참기. 통화 버튼 꾹 참기. 목까지 차오른 이야기들도 꾹 참기. (하지만 애인에겐 못 참지) 주변의 친구, 가족, 지인 모두들 각자의 힘듦에 허덕이고 있다는 걸 알면 알수록, 공유하고 싶은 일상도 위로받고 싶은 마음도 이야기하기가 참 어려워진다. 이렇게 점점 내색하지 않고, 감정을 크게 드러내지 않으며 적당한 관계를 유지한 채 살아가는 존재가 어른이라면, 나 같은 사람이 어른이 된다는 건 정말이지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때마다 자기만의 동굴로 들어가는 사람들도 많던데, 난 왜 이렇게 세상을 향해 오픈하고 싶어서 안달일까? 아무래도 나는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꽤나(많이) 좋아하는 사람인 듯하다. 내가 좋아하는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함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부정적인 감정은 상쇄되고, 긍정적인 감정은 증폭된다. 사람을 대할 때, 자의던 작위던 텐션이 오르는 내 모습이 좋다. 요즘 다들 하는 말로는 극E, 뭐 그런 것 같다. 법 없이도 살지만, 사람 없이는 못 살 사람. 그게 바로 나다.


*MBTI와 함께 좋은 순으로 나열해 보기. 나는 ESFP,  2-1-3-4 순


이런 내가, 벌써 나혼자산다 4년 차다. 독립을 통해 찐 독립심을 키우고 있는 느낌이랄까. 20대 후반. 매일 같이 만나던 친구들은 각기 다른 지역으로 흩어지고, 가족과도 떨어져 살게 되며, 더 이상 새로운 친구는 사귀기 어려운 시기. 말만 들어도 꽤나 외로운 시기의 막바지인 스물아홉의 나는, 1인 가구 라이프에 조금씩 적응 중이다. 혼자인 것이 나름 좋기도 하다. 내 공간에서 문득 느껴지는 해방감이나. 시간이 느려진 듯한 정적감. 환한 낮에 누워서 맞는 시원한 맞바람 등. 이런 순간들이면 기분이 좋아지는 걸 보니, 다행히도 아직까진 감성이 살아있는 1인 가구다.


이마저도 익숙해져 무뎌지기 전에, 이런 순간들을 의식하고 의존하려 한다. 스마트폰 속 누군가를 통해서가 아니라 이런 순간들을 통해서, 복잡했던 마음과 치솟았던 감정을 혼자서 적당히 해소할 수 있는 그런 어른이 되고 싶다. 가끔 게임이나 OTT 콘텐츠를 통한 도파민의 도움도 필요하겠지만. 어쨌든 혼자서 담담히 소화해 낼 수 있는 성숙한 사람이 되고 싶다. 그렇게 구불구불했던 마음이 직선 비슷하게 펴지면, 내가 혼자가 싫은 이유이자, 사람이 좋은 이유인. 결코 고쳐질 수 없는 29년 고질병이 스멀스멀 올라오겠지.

 


시임
시임
해애






이건 뭐, 어쩔 수 없다.

언제나 최근 통화 내역 맨 위에 있는 애인의 번호를 누르는 수밖에.





결론 : 애정하는 모두들! 우리 집에 놀러 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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