숟가락 좀 스스로 꺼내면 어디가 덧나요?

나의 사회생활 추구미

by 망고

격변의 시기, 스물아홉ㅣEP.05


얼마 전, 회사 임원진과의 간단한 회식이 있었다. 자리에 있었던 인원은 총 6명이었는데, 식당에 들어선 순서대로 4인용 테이블 두 개가 붙어진 자리에 앉다 보니 임원 셋과 우리 팀 직원 셋으로 나뉘어 앉게 되었다. 앉는 순간 '아차' 싶었다. 저쪽 테이블에서 식사잡무*를 할 사람이 없다. 두 테이블은 약간의 틈도 없이 딱 붙어있는 테이블이긴 했지만, 뭘 하든 팔이 멀었다. 사실 숟가락 정도는 가까운 사람이 알아서 놓으면 될 일인데, 그 찰나에 이런 눈치를 보며 불편한 내가, 불편했다.



*식사잡무? 숟가락 놓기, 물 따르기, 반찬 리필, 고기 굽기, 찌개 분배, 앞접시 세팅 등 원활한 식사시간을 위한 온갖 잡일을 의미하며, 방금 지어냈다.


에피소드 이해를 위한 테이블 자리배치도 (출처:직접제작)



숟가락이 들어있는 서랍 위치는 두 테이블의 양 끝이었고, 공교롭게도 왼쪽 끝에는 가장 높은 임원 A가 앉아있었다. 나는 내심 임원 A가 스스로 숟가락을 꺼내주길 바라며 지켜봤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모든 식사 주문이 끝났음에도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고, 결국 여섯 명의 숟가락은 오른쪽 끝 서랍 한 곳에서 모두 나와야 했다. 오른쪽 끝에 앉아있던 팀원 B가 그 옆의 내게 숟가락 세트를 건네기 시작했고, 나는 옆테이블에 앉아 있는 임원 세 명의 앞에 그것을 놓아야 했다. 손만 뻗으면 숟가락을 꺼낼 수 있는 사람 앞에 굳이 숟가락을 놓아드리기 위해서, 숟가락 세트 줄줄이 전달식이 시작된 거다. 나와 가장 멀리 있던 임원 A 앞까지 팔이 닿지 않아, 내 바로 옆에 앉아 있던 임원 C 쪽으로 몸을 기울이게 됐지만, C는 내 손에 든 숟가락 세트를 대신 받는 것 대신에, 얄밉게도 본인 몸을 뒤쪽으로 슥- 빼는 것을 택했다. 이 와중에 (위생에 무슨 의미가 있나 싶지만) 숟가락 아래에 깔아 둘 흐들흐들한 냅킨 한 장도 필수다.





사회생활.

사전적 의미로는 [사람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집단적으로 모여서 질서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공동생활]이다. 마치 별 게 아니란 듯 정의되어 있으나, 오늘도 하루를 버텨낸 모든 사회인들은 이 것이 이렇게 쉽게 정의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라는 것에 다들 동의할 것이다. 무슨 질서를 새롭게 세우라는 것도 아니고, 그저 유지하며 살아가면 되는 건데 그게 어찌나 힘든지. 나도 알고 싶지 않았다.


문제는, 각자가 생각하는 질서가 모두 다르다는 거다. 회사라는 집단에 소속되어 기꺼이 통제당할 수 있다고 여기는 범위도 사람마다 다르다. 그러다 보니 대개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우선순위가 되며, 그 과정에서 스스로의 기준치를 넘어선 통제나 개인의 가치관과 반대되는 문화나 상황을 아무렇지 않은 척 감수해야 하는 상황은 불가피하다. 불가피한데.... 불가피해서...... 그냥 다 패고 싶다.





나에게 사회생활의 쓴맛을 주로 느끼게 해주는 ‘회사’는, 내가 주체적이길 원하지만 주장은 없길 바란다. 능동적인 태도를 요하되 순응하는 사람을 좋아하고, Creative 함을 높이 평가하지만 튀는 순간 입방아에 오른다. 굉장히 아이러니한 이런 현상을 이해하기까지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쟤는 회의할 때 왜 저렇게 나대니?"

"회식 못 가? 요즘 사회생활 안 하네~"

"오늘 박대리 옷 입은 거 봤어? 패션쇼 가나?"

"그 친구는 묘하게 뭐랄까.. 이유는 모르겠고, 이상해"


'누군가를 향한 부정적인 평가'가 담긴 위와 같은 이야기들을 과장 조금 보태서 하루에 한 번 정도는 듣게 되는데 상황에 따라 내심 동의가 될 때도, 동의가 되지 않을 때도 있다. 사실 나의 동의 여부와는 관계없이 이러한 발언들은 일종의 '사회생활 가이드'로써 나에게 남는다. 이 가이드들은 야금야금 나의 색깔을, 취향을, 가치관을 빼앗고, 빼앗기면 빼앗길수록 나는 성실한 직원이자 회사생활을 잘하는 이 구역 처세왕으로 거듭난다.





직장생활을 한지 어느덧 8년이 되었는데도, 난 여전히 개인 일정과 상사의 번개 사이에서 늘 당황하며 고민한다. 사실 이 문제는 어떤 것을 택해도 불편하다. 상사의 번개에 응할 경우, 내 일상보다 상사의 즐거움을 우선시하는 '비위 맞추기형' 사회생활을 하는 내 모습이 싫다. 개인 일정을 택할 경우, 요즘 말로 MZ직원이라 날 통칭하며 수군대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을 떠안게 되는 내 모습이 또 싫다. 서두의 [숟가락 에피소드]와 같은 상황에서도, 웃는 얼굴로 숟가락 세트 전달식을 하고 있는 '나'와, "당신들은 손이 없어, 발이 없어?"라는 생각에 씩씩대는 '진짜 나'는 늘 부딪힌다.


일만 잘 해내기도 힘든 회사생활을 더욱 버겁게 만드는 것은 이런 사회생활 때문이 아닐까. 점점 나의 의견이나 생각보다는 회사 내 암묵적인 룰에 의해 이리저리 떠밀린다. 그러다 보면, 나를 휘두르고 있는 이 조직의 분위기가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인지도 판단하기 어려워진다. 나의 예민함이 문제인지, 대다수의 무심함이 문제인지, 정체감 가득한 회사가 문제인지, 더 나아가 대한민국 사회의 분위기가 문제인지. 매우 씁쓸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지금의 나는 부당함에 부당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나의 사회생활을 해칠 수 있음에 공감하는 사회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검색어 리스트에서 느껴지는 대한민국 사회인들의 고충..


유튜브 검색창에 '사회생활'이라는 단어를 입력하면, 자동 검색어 리스트에 '사회생활 잘하는 법'이라는 검색어가 가장 먼저 따라온다. 나 또한 평소에 이런 타이틀의 콘텐츠들이 눈에 띄면 지나치지 못하고 재생하는 편인데, 사실 기억에 크게 남거나 와닿는 이야기들은 많지 않았다. 다만 느끼는 점은, 각자가 겪는 사회가 이렇게 모두 비슷한 듯 다르니 사회생활의 정답이라는 건 없구나 싶다. 똑같은 상황이라 하더라도 개인의 성향과 가치관에 따라 어떤 이에게는 고충이 될 수도, 다른 이에게는 당연한 일상인 경우도 많을 테니 말이다.


그래, 어차피 정답도 없는 거. 뭘 하든 틀린 건 아니지 않나?


앞으로 나는 사회생활에서 맞닥뜨리는 모든 상황을 조금 더 예민하게 생각하려 한다. 숱한 분노와 자괴감을 조금 더 겪어야 하겠지만, 그 과정에서 내린 결론들로 '나의 사회생활 가이드'를 단단히 쌓고 싶다. 얼굴은 웃고 있지만 내면이 갉히는 기분은 더 이상 겪고 싶지 않다. 불합리한 질서를 마주한다면 가끔 혼란을 일으키기도 하는 그런, 유연하지만 불편한 어른이 되고 싶다. 의전과 예의를 잘 구분하고, 지켜야 하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단단하고 줏대 있는 사회인. 이제부터 이게 내 추구미다.



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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