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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고쟁이 Nov 07. 2023

하울의 움직이는 깟깟마을

사파여행 3일 차, 소수민족의 마을에 가다!

이곳은 어딘가 익숙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아니, 하울의 움직이는 성 쪽에 가깝다. 깟깟마을 속, 빨갛고 치렁치렁한 전통의상을 입은 나는 지브리 애니메이션 속의 등장인물이 된 것 같았다. 지브리 애니메이션 작품을 보다 보면, 조금은 불편한 현실의 메시지를 마구 버무려버린 환상의 미려함에 정신을 뺏긴다. 깟깟마을의 미려함에 정신을 뺏겼던 나는 지금, 의문이 든다. 그곳의 어디까지가 현실이었고, 어디서부터 환상이었을까.



간단히 아침을 먹기 위해, 샌드위치가 유명한 로컬 카페를 찾았다. 크지 않은 규모의 마당 곳곳에 놓인 좌석들. 그 사이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강아지와 고양이들. 뜨거워지는 햇살을 흔드는 초록초록한 이파리들과, 건너편 자리에 혼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외국인 관광객. 산들거리며 부는 바람. 그리고 과일이 담긴 봉지를 손에 쥔 채, 총총걸음으로 가게로 들어선 직원분의 가벼운 인사. 텍스트만 읽어도 느껴지지 않는가? 내가 '더 미스트'에서 느낀 충만한 여유가.


사파 여행 중 가장 여유로웠던 순간.
나와 애인, 둘이서 즐긴 간단한 아침(이라기엔 조금 많이 시켰다.)

그 흔한 헬멧도 없는 와일드함

깟깟마을은 시내에서부터 자동차 또는 오토바이로  5~10분 정도 가야 하는데, 가는 방법은 아래와 같다.


1. 사파 시내의 중심인 메인 광장으로 향한다.

2. 뚝딱거리는 여행자 표정 장착 후, 두리번두리번. (가방끈도 좀 잡아주면 뚝딱미 +10)

3. 하이에나처럼 우릴 노리는 오토바이 기사님들과 슬쩍슬쩍 아이컨택.


위 프로세스를 마치면, 오토바이 기사님들 중 한두 명이 우리를 향해 올 것이다. 그리고는 스파이 암호명을 대듯 말을 걸 것이고, 우린 대답만 하면 된다. "깟깟?" "예스" (가격흥정을 하기도 한다.)




깟깟마을로 향하는 입구부터 양 옆에 노점과 상인들이 가득했다. 크기도 모양도 색깔도 제각각인 수공예품들과 베트남 전통 모자, 의상들이 화려하게 진열되어 있다. 조금이라도 시선을 뺏기는 순간, 상인들의 호객행위가 시작된다. 해가 뜨거웠던 날이라, 베트남 전통 모자 '농라' 하나만 사서 쓰고 다니기로 했다. 여기서 이미 사고 있어도, 저기서 애타게 부르는 상인들. 동대문 밀리오레나 강릉 횟집거리 못지않은 호객 사운드를 뒤로한 채, 조금 더 깊은 산속으로 향했다.


가끔은 능숙한 한국어로 우리를 부르는 베트남 상인들도 있다. 진짜 동대문인 줄.

약 20분 정도 가벼운 트래킹길을 걷다 보면, 울창한 나무 숲 사이로 지브리 감성의 건축물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한다. 깟깟마을의 메인 스팟인 '물레방아'를 중심으로 음식점과 카페, 전통의상 대여점들이 줄지어있다. 입구에서만큼 심하진 않지만, 이곳에서부터는 전통의상을 입어보라는 베트남 상인들의 호객행위가 시작된다. 살면서 또 언제 베트남 전통 의상을 입고 돌아다녀볼까 싶어, 의상대여점 한 곳에 들어갔다. 상의는 입고 벗기 굉장히 불편한 소재였고, 하의는 치렁치렁 무거웠다. 나는 의상 외의 것은 대여하지 않아서 몰랐지만, 다른 분들의 후기를 보니 신발과 장신구, 화장까지 해주며 추가 비용을 받는 곳도 있었다고 한다. 철저하게 상업화된 대여 시스템이, 전주 한옥마을 주변의 한복대여점 못지않다.



깟깟마을의 물레방아 스팟 주변을 둘러보면 신비감이 든다. 음, 딱 애니메이션 속의 한 장면 같다. 크고 작은 요소들이 이곳의 분위기를 내기 위해 완벽하게 설계된 듯한, 촬영을 위해 지어놓은 세트장 같은 느낌도 들었다. 폭포를 배경으로 한 컷, 건물을 배경으로 한 컷. 어디를 바라보고 서느냐에 따라, 내 모습이 담긴 사진이 아예 다른 공간인 것 처럼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동화같은 배경에 치렁치렁한 베트남 전통의상을 입은 내 모습이 색다르게 느껴져 재미있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땡볕에 찡그려지는 표정을 감쪽같이 컨트롤한 채, 사진을 연신 찍어댔다.



이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깟깟마을을 다시 검색해 봤다. '깟깟마을 (Cat Cat village / 랜드마크) : 블랙흐몽족이 살고 있는 소수민족 마을'  깟깟마을을 설명하고 있는 문장을 보니 문득 궁금증이 들었다. 내가 그날 블랙흐몽족의 사람을 마주한 적이 있을까, 그 많은 전통의상 대여점들은 언제부터 생겨나기 시작했을까, 내가 봤던 그 알록달록한 깟깟마을 풍경 중 어디까지가 그곳에 살고 있는 소수민족들의 진짜 일상의 조각이며, 어디서부터가 관광객들을 위해 조성된 스팟이었을까?


깟깟마을에 가기 전, 나는 막연히 소수민족의 삶이 궁금했었다. 이렇게 산속 험한 지형 위에서 어떤 하루들을 보내는지 조금이나마 엿보고 싶었다. 다만, 돈 주고 빌린 전통의상인데 인생샷을 잔뜩 건져야 한다는 조급함에 기인하여, 정작 내가 그곳에서 본 건 인스타 감성의 구도라던지 빨간 옷이 더 돋보일만한 배경 같은 것들이었던 것 같다. 이런 생각이 드니, 조금 후회되는 마음이 의문으로 이어진다.



나,

정말 블랙흐몽족의 마을에 다녀온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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