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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지연 May 30. 2021

(일단, 마지막)
일단, 놓기

한국 일지






2021.05.30




아직은 초록별 일지.

이 글을 읽어주는 이. 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마지막 여정인 베트남 종주. 까지 성실히 써서 스스로 뿌듯하고자 했지만

코로나가 점령한 포르투갈의 비아나 까르텔로 이후 모든 의욕을 상실했다.




중간에 일주일 다녀온 베를린, 

원인 모를 아픔으로 앓으며 지낸 포르투갈의 마지막 한 달,

입국, 출국마저 불분명했던 상태로 한국 경유 1박에 많은 거부와 금지 속에 

대만에 일정대로 입국한 당일 발표된 법 때문에 베트남에 가지도, 한국에 돌아가지도 못하는

바로 요상한 형태의 이방인으로의 일곱 달.

소박한 가산을 탕진하여 계획한 절반이 코로나의 시작으로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몇 장 남겨둔 그림도, 써둔 글도 어쩐지 일지. 로 남기고 싶지도 않았다.

오직 그간의 일지들보다 훨씬 긴.

투덜, 절망, 다독거림, 빈정댐, 화, 근심을 꽉 채운 노트 10권 정도의 미술 연필로 쓴 글과

휴대폰 노트에 매일 적어 내려간 분노, 좌절, 애써 희망 등만 빼곡히 채워져 있다.




훌쩍 정리하고 훌쩍 떠남.

나를 더 버리고 놓음에 대한 설렘.

결여된 꾸준함에의 도전.

이런 설레고 긴장되는 다짐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늘 머릿속을 헤집고 속삭이는 수많은 삶에 대한 의문들.

더욱 노골적으로 만나고, 부딪히고, 속고 속이는 시간들이었다.

버리려 했는데 어쩐지 더 단단해진 나.

평생 나를 옳아 매고, 조종하고, 훈계하는 나.

다녀오면 조금은 가벼워질 줄 알았는데

어쩐지 더 커진 그것을 목마까지 태우고 다니는 지경이 되었다.

사춘기 따로 겪은 일도 없이 꼬맹이때부터 줄곧 삐딱이, 였어도 삶에 대한 생각과 방향에 확신이 있었건만.

점점 알 수 없게 되어버려 방황하다 떠나고 돌아오니

이젠 내가 아침에 일어나고 밤에 잠을 자는 게 맞는 건지. 조차 의문이고

방향을 전혀 종잡을 수 없게 되어버렸다.




잦은 기록과 기억이 있으니

이 마음이 다독여지면 느리게라도 차곡차곡  대만까지의 일상을 남겨야지.

그리고, 쓰고 정리를 마무리해야지. 라는 생각은 

아물지 않은 마음에 독촉과 긴장을 뿌려댔고

한국에 들어온 지 8달이나 되었음에도 응어리처럼, 아물지 않은 커다란 피고름처럼

마음을 답답하고 아프고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누구도 재촉하지 않는데, 사실 누구도 기다리지 않는데

한시도 나를 내몰지 않으면 성에 안 차는 나. 는

시작하면 끝을 봐라. 는 나의 극단적 성향은

 지금도 안정감 없이 휘청이게끔 하고 있다.




일단.

여기서 중단한다.

언젠간, 아니 얼마 안 되어 다시 쓰고, 그리고 싶어 질지 모르지만

지금은 그 기억을 남기기를 저항한다.

그 저항을 인정해주기로 했다.




삶의 전부를 놓았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그 대가로 무언가 손에 잡고자 했던 미련과 불안이

초록별 일지를 예정대로 마무리 짓는 것으로 하나 남기고자 했던 욕심이었는지 모른다.

삶이 언제나 그렇듯. 계획대로 되지 않았고, 

갑작스런 변수로 인해 정말 무일푼에 정신마저 텅텅 비어버린 나의 대망의 계획.

마지막 일지까지 기록하지 않으면 나의 시간들이 실패한 것 같은 고약하고 찜찜한 기분.




기록의 마무리라......

그게 뭐라고.

안 그런가. 

여전히 오늘과 또 오늘의 영종도 일지. 도 계속되고 있는데 말이다.

버티는 나와 싸우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한국에 들어온 후 그냥 슬쩍만 보아도 흰머리가 10가닥쯤은 찾기 쉽게 반짝인다.

기록을 마무리 짓지 않았어도 내 기억엔 깊이 들여졌으니 

놓겠다.

출발했던, 늘 설레는 공항이 있는 이곳 영종도에서.




여기서 집착을 놓지 않으면 오늘. 을 살 수 없다.

당장 오늘이 숨이, 걸음이 가쁜 내 삶에

오늘이 주는 것을 읽기에도 벅찬 내 삶에 

놓음. 이 

숨. 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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