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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몽스 Oct 28. 2020

[리뷰]『창령사 오백나한의 미소 앞에서』를 읽고

한국 미술 에세이

현대미술이 ‘모데라토(보통 빠르기)’라면 고미술은 ‘몰토 아다지오(아주 느리게)’쯤 된다고 할 수 있다.


 책을 읽다 보면 나의 부족한 지식이 드러나 부끄러운 기분이 들곤 한다. 클래식 음악 에세이를 읽을 때가 그러했고, 고대 한국미술 에세이『창령사 오백나한의 미소 앞에서』를 읽으며 다시금 부끄러움을 느꼈다.


『창령사 오백나한의 미소 앞에서』의 저자는 특이하게도 경제학 교수 경력이 있다. 저자의 독특한 경력 때문인지 미술품 컬렉션을 수집하는 과정에서 저자가 마주한 미술 시장을 경제학의 눈으로 파헤치려는 시도가 자주 보인다.




미술문화가 자본과 경제력으로 양육된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사실을 받아들일 때가 되었다.
p.38

 미술 문화가 꽃피울 수 있었던 동력이 부와 권력을 지닌 재력가들의 후원임은 부정할 수 없다. 사업에 있어선 누구보다 계산적이었던 재력가들이 예술에 관해선 한없이 너그러워지는 신기한 현상 덕분에 오늘날 우린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예술작품을 마주할 수 있게 됐다.


 특정 미술이 있는 자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것 역시 위의 이유와 무관하다고 볼 수 없다. 부로 채워지지 않는 교양을 채우기 위해 재력가들은 집에 고가의 미술품을 장식하며 본인의 부와 교양을 과시한다.


 경제학도인 저자의 날카로운 눈엔 부와 미술의 연관성이 포착되었고 재력가들이 미술품을 선호하는 것으로 미술품이 상속에 유리하고, 장기적인 투자와 재테크 수단으로 더할 나위 없이 좋다는 이유를 제시한다. 나였으면 보지 못했을 부분을 저자가 날카롭게 짚어주며 경제학과 미술을 자연스레 연관 짓자 글이 빠르게 흡수되는 기분이었다.


 더불어 여타 시장과 다른 미술 시장의 특징으로 작품의 진위 여부, 정보의 비대칭, 과다한 거래비용, 폐쇄적인 시장을 들며 이는 곳 신뢰의 붕괴로 이어지기에 길게 본다면 미술 시장이 점차 쇠락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지녔다고 토로한다.


 이에 그치지 않고 시장의 투명성 회복을 도모하는 해결책을 제시한다. 미술 시장의 신뢰 회복을 위해선 작가 도록, 컬렉션 목록, 거래 이력 등을 데이터베이스화하고, 시장의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는 경매 시장 활성화를 제시하지만, "현실과 괴리되는 것이 이론의 숙명인지”라며 이론의 한계를 스스로 절감한다.

위의 사진은 일본에서 최초 공개되고 국내 반입이 성사되지 않은 「백제금동관음보살입상」이다.

  한국 고미술을 논할 때 빠지지 않는 주제가 바로 환수 문제다. 호란과 왜란을 겪고,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지나며 우리나라의 많은 미술품이 국외로 유출됐다. 그중에선 도굴 등의 불법적인 방법이 동원된 경우도 있고, 개인이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가져간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뼈아픈 역사가 있다 보니 문화제 환수 문제에 있어선 불법, 합법을 가르지 않고 온 나라가 예민하게 반응하며 언론은 이때다 싶어 불을 제대로 붙인다.


“명확한 증거도 없이 언론이나 정치권에서 호들갑을 떨며 불법인 양 몰아붙이고 소송을 제기한다든가 국가 간 문제로 부각시켜서는 더더욱 안 될 일이다. 그럴수록 물건은 지하로 숨어버리고 시장을 통한 환수 기회마저 원천적으로 잃어버리게 된다. 목적이 환수에 있다면 그 목적 달성을 위해 국가기관이 전면에 나서기보다 민간의 힘과 지혜를 빌려 그들이 알아서 경매에서 낙찰받거나 사오게 하면 되는 것이다.”
p.37
“맹목적인 애국심과 단기 실적주의에 매몰되면 부작용이 커지고 국외에 소재하는 문화유산은 점점 더 지하로 숨어들게 된다. 시장에서 사올 수 있는 기회마저 잃어버린다는 말이다.”
p.191


 이에 저자는 문화유산 환수 문제는 국가가 아닌 민간에 의해서 시행되는 것이 올바르다고 지적한다. 국가가 전면에 나서게 되어 환수 문제가 시끄럽게 만들어진다면 정당한 방법으로 사들일 수 있는 기회조차 수면 아래로 사라지게 될 것이라 경험에서 우러나온 조언을 건넨다.

「사슴 모양의 뿔잔」

 저자의 한국 고미술 컬렉션에 대한 애정은 책 곳곳에 듬뿍 스며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물건을 즐겨 모으거나 한 분야에 몰입하는 사람을 우리는 흔히 마니아라고 부른다. 수집 마니아를 ‘수집광’으로 부르듯, 그 말에는 부정적인 의미보다 오히려 순수하고 긍정적인 의미의 ‘병적이거나’ ‘미치광이’라는 뉘앙스가 담겨있다.”
p.113


 책 속 위의 문장을 보는 순간은 저자와 나의 급격한 공감대와 내적 친분이 형성되는 순간이었다. 마니아를 한국어로 풀어 말할 때 '~광' 등 뒤에 미친 자를 의미하는 단어를 붙이지만, 실상 '미친'의 의미는 더없이 순수한 욕구를 말한다. 좋아하는 문구류, 좋아하는 저자의 책, 영화 포스터 등을 야금야금 수집하는 나로서 기분이 괜히 좋아졌다.

「청자 양각 구룡 정병」

 책 사이사이엔 미술품 사진이 있기에 저자의 경험에 대한 이해가 수월하다. 위의 사진에 나온 「청자 양각 구룡 정병」은 웬만해선 미술품에 관심 없는 나조차도 소유욕을 일으키게 했다. 문제는 갖게 된다 하더라도 설거지를 어떻게 해야 하냐는 의문이 남는다.




다양한 상상력이 스토리텔링에 더해질 때 차가운 유물은 온기가 돌고 살아있는 생명체로 거듭나게 되는 법이다.


 올해 초에 한성백제박물관 안에 있는 정보자료실에서 한 달간 일한 적이 있다. 아무래도 일하는 곳이 박물관 안에 있다 보니 출퇴근 길엔 항상 전시되어 있는 유물을 보았고 시기마다 하는 기획전을 보기도 했다. 어떤 유물은 굳이 박물관에 있어야 하나 싶기도 했고, 어떤 유물은 정말 가치가 있어 보였다.

 굳이 이런 얘기를 하는 건, 한성백제박물관의 유물이 별로였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알아보는 나의 지식, 정보, 상상력이 부족했기에 유물을 차가운 돌덩어리들로 취급했단 것이다. 전문가는 아니더라도, 한국의 것들에 관심을 갖고 박물관을 들르며 지식과 정보를 쌓고, 해당 전시, 유물에 대한 상상력을 곁들인다면 모든 유물이 저마다의 이야기를 담고 있음을 깨닫는 날이 올 것이다.



http://naver.me/x6iaXi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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