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몽스 Oct 05. 2022

[리뷰 아닌 리뷰]미셸 공드리의 『무드 인디고』를 보고


행복할 자격은 따로 주어지지 않고, 그 정도 역시 정해져 있지 않다.

그저 피어오르는 행복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면 그만이다.

하지만 행복을 온전히 즐기기란 어려운 일이다.

행복이 크면 클수록, 그 너머에 느낄 감정이 항상 절정의 행복에 미치진 못하기 때문이다.

언젠간 붕 뜬구름 위에서 내려와 여전히 딱딱할 것이 분명한 땅을,

언제까지나 행복에 겨울 수 없는 현실을 마주한다.

이처럼, 행복이 빼곡할 때 문득 드는 불안감은 상실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비롯된다.



서로가 서로를 좋아한다는, 불가능할 것 같으면서도 누구나 겪거나 마주했을 이 사랑을 콜랭과 클로에 역시 시작한다.

행복이 절정인 결혼식, 잔인하게도 클로에의 몸 안에선 차가운 수련이 피어오른다.

차가운 수련 한 송이는 콜랭과 클로에의 색을 앗아가고 둘 사이를 흑백으로 물들인다.

붕 뜬구름을 타고 함께 파리를 내려다보던 둘은 현실이란 오래된 기찻길에 발을 딛는다.

어두운 터널도 함께라면 충분했던 둘이지만, 클로에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둘은 각자가 된다.

콜랭의 넉넉한 재산은 어느덧 바닥을 드러내고 처음으로 현실을 마주한다.



현실의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지만, 그 시간이 새겨진 얼굴은 저마다 다르다.

누구는 10일 동안 8년을 늙고, 누구는 8년 동안 10일을 늙는다.

느리게 새겨지던 시간은 점점 강한 바람이 되어 콜랭과 클로에를 훑고 지나간다.

둘은 함께 바람을 견뎠지만, 언젠가는 역시 무너져버리고 만다.

어느덧 잔잔해졌을 때, 콜랭은 홀로 현실에 발을 딛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클로에는 콜랭을 꿈 안에서도 꿈이라고 믿을 이상에 데려감과 동시에 한 번도 주하지 않은 현실과 마주하게 했다.

화려한 색으로 꾸며진 집과 파리의 판타지 같은 아름다움이 색을 잃어가는 모습은 현실과 가까워지는 과정이다.

다른 무엇도 끼어들 틈이 없을 만큼 가득한 행복은 순간에 머무르기에 소중한 것이다.

고개를 잠시만 돌려도 바뀌는 하늘과 영원할 수 없는 관계 역시 덧 없기에 남겨둘 가치가 있다.

찰나에 그치기에, 똑같이 반복될 수 없는 하루이기에, 사랑과 같은 감정이든, 소중한 기억이든 언젠가는 끝이 있기에,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면 모든 순간을 강렬하게 지낼 수 있다.

서서히 저물어 가는 노을을 바라보는 기분으로, 덧없는 것들에 시선을 둘 줄 안다면 허투루 지나는 관계와 하루는 존재하기 어려울 것이다.




https://naver.me/xtHK84gA


매거진의 이전글 [비평문] 영화 《야구소녀》를 보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