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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몽스 Jun 20. 2020

[비평문] 영화 《야구소녀》를 보고

야구소녀의 유리천장 부수기

야구는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니깐 여자건 남자건, 그건 장점도 단점도 아니에요


  세상을 판단할 때, 둘로 나눠버리는 것만큼 간편한 일은 없다. 제각기 다양한 개성을 지닌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나눠버리는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이분법적 사고에 너무나 익숙해진 나머지 대상을 사람으로 보기 전에 남자 혹은 여자라는 색안경을 쓰고 마주하기도 한다. 색안경을 쓴 채로 대상을 바라보게 되면, 누군가의 장점이 단지 남자라는 이유로 당연해지고, 여자라는 이유로 특별해지는 오류가 발생한다. 혹은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고등부 천재 야구소녀 주수인은 ‘야구’라는 스포츠에서 실력을 떠나 ‘여성’이라는 이유로 주목 받게 된다. 대중은 그녀를 판단할 때, 그녀가 즐겨 사용하는 투구의 종류가 무엇인지, 어떤 투구에 자신 있는지, 원하는 목표와 응원하는 야구팀이 무엇인지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는다. 오직 ‘여성’이란 사실에 초점을 맞춘다. 그녀의 공이 시속 130km를 넘기면, 주변인들은 ‘여자치고 잘 던진다’란 말을 하며, 주수인을 여자라는 우물에 가둬 사육하듯 상처가 될지도 모르는 칭찬을 툭 던진다. 고등부 감독조차 주수인에 대해 ‘저 정도 던지는 여자는 세계에 몇 없다’라며 야구선수가 아닌, 야구소녀로 그녀를 규정짓는다. 주수인의 어머니도 그녀가 여자이기에 프로로 입단할 수 없으리라 생각한다.

  스포츠계에서 여성 스타가 나타나면, 많은 대중은 그녀의 실력과 소속이 아닌, 외모와 사생활을 궁금해한다. 그리곤 자신의 입맛에 맞는 연예인이 되길 요구한다. 실력으로 판단 받아야 할 스포츠인이 외모와 사생활로 이슈가 되는 아이러니한 현상은 매우 높은 확률로 여성에게 나타난다. 자연스럽게 언론은 대중의 입맛에 맞춰 스포츠계 여성 스타의 사생활을 퍼다 나른다.


  주수인의 상황이 그렇다. 주수인은 고등야구부에 입학함과 동시에 언론의 관심과 ‘천재 야구소녀’란 찬사를 받았다. 그러나 주수인은 학년이 오를수록 같은 나이대 선수들과 기량 차이를 보이며, 주수인을 뺀 모든 사람이 그 이유를 그녀가 ‘여자라서’라고 생각한다. 정작 주수인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말이다. 그러나 그녀 역시 자격지심이 잠재되어 있다. 오직 빠른 직구만을 던지며 150km 이상만 던지면 프로가 될 수 있다는 생각과 행동이 그녀의 자격지심이다. ‘남자답게’ 빠른 공을 던져야 한다는 고정관념은 그녀의 성장을 점차 고통으로 몰고 갔다. 남들보다 배로 훈련을 해도 그녀의 구속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으며, 주수인은 자신이 프로 지명을 받지 못한 이유를 계속해서 구속 탓으로 돌린다. 문제의 갈피가 엇갈린 것이다.


 투수의 역할은 빠른 공을 던지는 것이 아니다. 타자가 치지 못하는 공을 던지는 것이다.


  새롭게 들어온 코치 최진태의 말로 주수인은 단점 보완이 아닌, 장점을 살리기로 한다. 상대적으로 낮은 구속을 높이려는 것이 아닌, 회전력을 이용한 너클볼을 연습하고 프로 2군 입단이란 결실을 본다.

  주수인은 새로운 길을 개척하여 유리천장을 부수는 첫 번째 타자가 됐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나아가기에 방향 설정부터 주변의 곱지 않은 시선까지, 견뎌야 할 난관이 헤아리기 어렵다. 가족마저 그녀의 꿈을 의심하고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고통이 동반되는 길임을 알기에 하는 조언과 간섭이지만, 주수인에겐 그 뜻이 올바르게 전해지지 않는다. 되려 답답하기만 할 뿐이다. 그러나 그녀가 길을 텄기에 뒤따라오는 동반자가 생겼으며, 이들이 겪을 험난함의 정도는 주수인의 것에 비해 덜할 것이다. 후임자들에게 용기를 주며, ‘여자도 할 수 있다’를 넘어 주수인이란 사람 자체로 본인의 실력과 장점을 증명했다. 또한 주수인은 “야구는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거잖아요?”란 자신의 질문에 행동으로 답을 보였다.

  사람과 대면할 때,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정보는 오직 겉모습이기에 서둘러 성별을 구분 짓는 행위를 완전히 고치기란 어렵다. 수박 겉햝기식의 대화라도 성립되어야 성별을 떠나 상대방을 판단할 수 있다. 그럼에도 뿌리 깊이 박힌 이 버릇을 완치하진 못해도, 일정 부분 고칠 수는 있고 개선의 여지가 있다. 《야구소녀》에서 주수인이 보여줬고, 현실에서도 많은 여자와 남자가 결과로 보여주고 있다. 끝으로, 현실에서 더 많은 주수인들이 등장하여, 성별이 아닌 오직 능력으로 성공하는 능력주의가 다시금 도래하는 신호탄을 쏴주었으면 싶다.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89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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