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종이비 May 16. 2020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으니까 좋습니다

<멍때리기 대회 2014-2018> - 웁쓰양


 

 <퍼블리셔스 테이블>행사에 갔다가 우연히 발견하게 된 책! 표지에서 이미 마음을 뺏겨버리고 책 설명을 듣자마자 바로 구매를 했다. (근데 정작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저 초록색 모양이 글자 '멍'이라는 걸 알아차렸닼ㅋㅋ) 이 책은 웁쓰양이라는 아티스트가 2014년부터 2018년까지 <멍 때리기 대회>를 만들고 진행한 과정을 담은 책이다. 물론 <멍 때리기 대회>는 2019년에도 계속 되고 있긴 하다. 책에는 어떻게 멍 때리기 대회라는 '퍼포먼스'를 만들게 되었는지와 그와 관련된 에피소드나 감정을 솔직하게 적고 있다. (크러쉬 얘기도 나온닼ㅋ)



  <멍 때리기 대회>가 열리는 중에 일어난 일보다도 대회를 준비하면서, 그리고 열리고 나서의 비하인드 얘기가 담겨있어서 사실 더 재미있었다. 일회적으로 보이는 대회 이면에 어떠한 노력들이 담겨있는지, 어떠한 의도로 대회가 주최되었는 지를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솔직'해서 좋았다. 대회를 기획하면서 안 좋은 일이 있었어도 미화시키거나 대회를 좋게 포장할 수도 있었을 텐데 웁쓰양은 그 과정에서 일어난 일 중 거슬리는(?) 일들을 모두 솔직하게 밝힌다. 아티스트로서 자신의 대회가 어떤 퍼포먼스를 했으면 하는지, 어떻게 보호받길 원하는지, 그리고 사람들이 이러한 의도를 어떻게 치부하는지 등등 대회와 관련된 감정들이 마구마구 담겨있어서 좋았다. 오히려 이런 솔직함이 더 매력적이고 대회를 위해 노력했다는 것이 보여서 그런 것 같다. 나도 이전까지는 <멍 때리기 대회>를 어떠한 저작권이 있는 예술로 생각하지 못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예술가들의 저작권 보호에 대해 많이 생각해보았다. 당연한 것을 왜 이제까지 생각하지 못했을까. 누군가 개인이 주최를 했을 거라는 생각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계속 생각한 것은 무언가 '하고 있다'는 감정이 얼마나 부러운 감정인지에 관한 생각이었다. 웁쓰양이 이 대회를 구상하게 된 계기는 번아웃 때문이었다. 모든 에너지가 소진되어서 매일 진공 속에 있던 웁쓰양은 현대에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도시인들, 자신과 같이 번아웃 상태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하기 위해 대회를 떠올렸고, 그렇게 <멍때리기 대회>는 무기력, 불안 같은 감정에서 시작된 열정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이제는 5년 째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요즘 나는 무기력 상태에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며 '나도 무언가를 위해 다시 달리고 싶다'는 생각이 너무 들었다. 무엇이 나를 움직이게 했는지, 무엇이 나를 힘들게 하면서도 기쁘게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솔직히 이 책을 읽는다고 다시 몸과 마음이 움직이진 않는다. 하지만 내가 무엇을 '하고 싶어 한다'라는 감정을 떠올리도록 연결해준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책이었다.




p.35

먹고 자고 하는 일 외에 어째서 인간은 쓸데없이 그렇게 가치를 더 ‘생산’하는 일에 시간을 ‘소비’하는 거지?



p.36

보잘 것 없는 자신을 대면하는 시간은 처음엔 스스로에 대한 실망에서 무기력으로, 그 다음엔 불안과 우울로 번져나갔다. 불면이 시작되었다. 하루하루가 진공상태로 아무런 소리도 자극도 없이 뭉그러진 채 형태없이 흘러갔다.

(중략)

나의 증상은 ‘소진 증후군’, 소위 말하는 번아웃 신드롬(burnout syndrom)이라 불리운다는 것이다. 알 수 없는 병에 시달리다가 정확한 병명을 알게 된 환자처럼 이 단어는 오히려 안도감을 주었다. 만세! ‘저런 단어가 있을 만큼 흔한 상황에 있던 거구나’ ‘아, 내가 지난 몇 년간 소진되고 있었구나’.



p.39

<멍 때리기 대회>에 대한 나의 이야기에, 주변의 반응은 대체로 기대와 달랐다. 웃긴건 기대와 다른 이런 반응은 개최 열망으로 가득 찬 내게는 아무런 방해도 되지 못했다. 아니 왜? 이렇게 재미있는데! 나 꼭 할꺼야!



p.65

어쩐지 일이 너무 잘 풀린다 싶을 때, 불안한 느낌이 든다면 당신은 예민하고 경험이 많은 사람일 것이다.



p.115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는데,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으니까 좋습니다. 마음이 좋아요.”




매거진의 이전글 순간의 머무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