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때리기 대회 2014-2018> - 웁쓰양
<퍼블리셔스 테이블>행사에 갔다가 우연히 발견하게 된 책! 표지에서 이미 마음을 뺏겨버리고 책 설명을 듣자마자 바로 구매를 했다. (근데 정작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저 초록색 모양이 글자 '멍'이라는 걸 알아차렸닼ㅋㅋ) 이 책은 웁쓰양이라는 아티스트가 2014년부터 2018년까지 <멍 때리기 대회>를 만들고 진행한 과정을 담은 책이다. 물론 <멍 때리기 대회>는 2019년에도 계속 되고 있긴 하다. 책에는 어떻게 멍 때리기 대회라는 '퍼포먼스'를 만들게 되었는지와 그와 관련된 에피소드나 감정을 솔직하게 적고 있다. (크러쉬 얘기도 나온닼ㅋ)
<멍 때리기 대회>가 열리는 중에 일어난 일보다도 대회를 준비하면서, 그리고 열리고 나서의 비하인드 얘기가 담겨있어서 사실 더 재미있었다. 일회적으로 보이는 대회 이면에 어떠한 노력들이 담겨있는지, 어떠한 의도로 대회가 주최되었는 지를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솔직'해서 좋았다. 대회를 기획하면서 안 좋은 일이 있었어도 미화시키거나 대회를 좋게 포장할 수도 있었을 텐데 웁쓰양은 그 과정에서 일어난 일 중 거슬리는(?) 일들을 모두 솔직하게 밝힌다. 아티스트로서 자신의 대회가 어떤 퍼포먼스를 했으면 하는지, 어떻게 보호받길 원하는지, 그리고 사람들이 이러한 의도를 어떻게 치부하는지 등등 대회와 관련된 감정들이 마구마구 담겨있어서 좋았다. 오히려 이런 솔직함이 더 매력적이고 대회를 위해 노력했다는 것이 보여서 그런 것 같다. 나도 이전까지는 <멍 때리기 대회>를 어떠한 저작권이 있는 예술로 생각하지 못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예술가들의 저작권 보호에 대해 많이 생각해보았다. 당연한 것을 왜 이제까지 생각하지 못했을까. 누군가 개인이 주최를 했을 거라는 생각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계속 생각한 것은 무언가 '하고 있다'는 감정이 얼마나 부러운 감정인지에 관한 생각이었다. 웁쓰양이 이 대회를 구상하게 된 계기는 번아웃 때문이었다. 모든 에너지가 소진되어서 매일 진공 속에 있던 웁쓰양은 현대에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도시인들, 자신과 같이 번아웃 상태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하기 위해 대회를 떠올렸고, 그렇게 <멍때리기 대회>는 무기력, 불안 같은 감정에서 시작된 열정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이제는 5년 째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요즘 나는 무기력 상태에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며 '나도 무언가를 위해 다시 달리고 싶다'는 생각이 너무 들었다. 무엇이 나를 움직이게 했는지, 무엇이 나를 힘들게 하면서도 기쁘게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솔직히 이 책을 읽는다고 다시 몸과 마음이 움직이진 않는다. 하지만 내가 무엇을 '하고 싶어 한다'라는 감정을 떠올리도록 연결해준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책이었다.
p.35
먹고 자고 하는 일 외에 어째서 인간은 쓸데없이 그렇게 가치를 더 ‘생산’하는 일에 시간을 ‘소비’하는 거지?
p.36
보잘 것 없는 자신을 대면하는 시간은 처음엔 스스로에 대한 실망에서 무기력으로, 그 다음엔 불안과 우울로 번져나갔다. 불면이 시작되었다. 하루하루가 진공상태로 아무런 소리도 자극도 없이 뭉그러진 채 형태없이 흘러갔다.
(중략)
나의 증상은 ‘소진 증후군’, 소위 말하는 번아웃 신드롬(burnout syndrom)이라 불리운다는 것이다. 알 수 없는 병에 시달리다가 정확한 병명을 알게 된 환자처럼 이 단어는 오히려 안도감을 주었다. 만세! ‘저런 단어가 있을 만큼 흔한 상황에 있던 거구나’ ‘아, 내가 지난 몇 년간 소진되고 있었구나’.
p.39
<멍 때리기 대회>에 대한 나의 이야기에, 주변의 반응은 대체로 기대와 달랐다. 웃긴건 기대와 다른 이런 반응은 개최 열망으로 가득 찬 내게는 아무런 방해도 되지 못했다. 아니 왜? 이렇게 재미있는데! 나 꼭 할꺼야!
p.65
어쩐지 일이 너무 잘 풀린다 싶을 때, 불안한 느낌이 든다면 당신은 예민하고 경험이 많은 사람일 것이다.
p.115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는데,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으니까 좋습니다. 마음이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