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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이비 May 14. 2020

학원의 풍경


   요즘 학창 시절보다도 더 오래 학원에 있는다. 화요일과 목요일마다 5시간 동안 대치동 수학학원 조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교라고는 하지만 사실, 별로 하는 건 없다. 4시간 정도는 (관리감독이라는 명분으로) 앉아서 멍 때리기, 마지막 1시간은 그나마 채점하고 보충 설명해 주는 식이다. 학원에 들어가면 휴대폰을 제출해야 하는데, 나만 낸다. 딴짓하지 말고 애들 공부하는 거 관리하라는 부원장 선생님의 뜻이다. 집중을 위한 취지라면 학생들 폰을 걷는 게 맞지 않나 싶지만 나는 돈을 받는 입장이니 그냥 내고 있다. 가끔 옷 지적도 하셔서 안 마주치려고 피해 다닌다. 이렇게 불평스러운 생각을 하면서도 여기서 번 돈이면 한 끼 식사의 질이 달라지기 때문에 1년 동안 꾸준히 일을 나가고 있다.


 o한동안은 5시간을 알차게 써보자 해서 빈 A4 용지와 볼펜을 가지고 그동안 쓰고 싶었던 글, 생각나는 것들을 쓰며 몇 편의 시를 써보기도 했다. 학원 조교 일기 컨셉으로 에세이를 주기적으로 써볼까도 했는데, 10시에 학원이 끝나고 집에 도착하면 넷플릭스를 켬과 동시에 침대에 눕기 일쑤라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쓰고 싶은 소재가 생각이 안 나는 날에는 학생들을 관찰한다. 5시간 동안 앉아서 같은 장면을 바라보는 것은 시간을 아주 느리게 흐르게 만들고 느끼고 있는 모든 감각에 관해 생각하게 한다. 며칠 전의 의식의 물결은 이러했다.


[ J는 매일 같은 모자를 쓰고 온다. 노란색 캡 모자인데 앞에는 파란색 말이 그려져 있다. J를 떠올리면 그 모자가 함께 딸려온다. 다른 학생들은 시험지를 풀 때 정수리가 보이는데 J는 동그란 모자 꼭지가 보인다. J에게는 매일 아침에 모자를 쓰는 게 의례 같은 일일까? 하루의 기분이 이 모자에 달려있을까? 어머니께서 모자를 꼭 쓰라고 일러주셨을까? 쓰는 걸 깜빡해 학교에 가다가 머리를 만져보고 헐레벌떡 집으로 뛰어간 적이 있을까? 저녁때가 되면 머리에 떡이 많이 지는 걸까? 근데, 모자는 언제 빨지? ]


대충 이런 식이다. 학원에서 변하는 풍경은 학생들의 옷차림뿐이기 때문에 대부분 옷에 관한 의식의 흐름이다. 그래서 계절의 변화를 아이들의 옷차림에서 발견하기도 한다. 겨울이 왔음을 알려면 초등학생들의 소매 쪽을 보면 된다. 겨울이 되면 소매에 캐릭터 내복이 슬쩍 얼굴을 내밀고 있기 때문이다. 옷을 입을 때 내복이 말려 들어 가지 않도록 손으로 꼬옥 잡고 있던 탓에, 손에 쥐었던 부분만 늘어져 소매 끝에 튀어 나와 있다. 이렇게 아이들을 통해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느낀다. 요즘 아이들은 마스크를 쓰고 문제를 푼다.


이러면 학생들에게 관심이 많은 것 같지만 사실 같이 있는 시간에 비해 서로 아는 게 없다. 학생들에게 나는 그저 앉아있는 조교 선생님이고, 나에게 학생들은 이름도 모를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매달 그만두거나 새로 오는 학생들도 많고, 난 숫자로 가득한 답지에 동그라미와 빗금만 그을 뿐이다.


내가 맡고 있는 학생들의 연령대는 대부분 초2에서 중1이다. 하지만 풀고 있는 문제지에는 중1-1에서 수1까지의 마크가 붙어있다. 나는 학원 같은 학원을 중2 때 처음 다니기 시작했다. 피아노나 미술 같은 예체능 학원은 어려서부터 다니긴 했는데, 초등학생 때까지 다니는 학원들은 또 다른 어린이집 같다. 맞벌이하시는 부모님들이 일하는 동안 아이들을 맡길 곳이 필요해서 보내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중학교 2학년 때가 돼서야 나는 문법을 배우는 영어학원을 갔고, 1형식과 5형식의 차이를 알게 됐다. 1형식은 짧은 문장, 5형식은 긴 문장이라고 생각했던 나에게는 꽤 충격적인 일이었다. 그런데 ‘학’원이라는 곳을 다니긴 했어도 나에게 있어서 학원은 배움의 공간보다 학교의 연장선으로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의 의미가 컸다. 수학 학원도 하교 후에 같이 봉고차를 타고 가는 친구들이 부러워서 다니기 시작했다. 고3 때는 야자가 끝나고 친구들이랑 다같이 학원에 가서 보고 싶은 유튜브 영상을 프로젝터로 틀며 놀았다. 다들 공부하겠답시고 2G폰과 전자사전을 가지고 다녔기 때문에 이 시간이 유일하게 유행을 따라잡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런 나로서는 요즘 내가 보고 있는 학원의 풍경이 1년이 지나도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중2인 C는 고1 진도반에 있는데 학원의 멈추지 않는 속도를 따라잡기 위해 구몬, 과외까지 한다. 그런데도(혹은 그래서) 늘 비가 내리는 채점지를 받으며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 틀린 문제를 오답 노트에 받아 적는다. 학년이라는 게 무슨 의미가 있고 학교가 어떤 공간이 되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학교에서는 자유학기제라고 시험을 없애고, 학원에서는 진도를 빼기 위해 매일 시험을 낸다. 그 사이에서 아이들은 성장 없이 멈춰있다.

  이 일은 마냥 남의 일이 아니다. 초등학교 5학년인 동생에게 학교에서 쉬는 시간에 뭘 하냐고 물어보면 학원 숙제를 한다고 대답한다. 학교 끝나고 친구들이랑 안 노냐고 물어보면 학원에서 만나면 된다고 대답한다. 나는 책가방을 던져두고 놀이터에서 경찰과 도둑 놀이를 하며 놀았던 운동장의 풍경이 남아 있지만, 동생에게는 무거운 책가방과 학원에서만 만나는 친구들이 놓여있다. 그러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듯, 당연한 듯 학원에 가는 아이들이 안타까우면서도 미안하고 막연하게 겁이 난다. 이러한 상황이 답이 아님을 알고 있으면서도 당장 돈을 벌기 위해 학원 조교인, 과외 선생님인, 동생의 숙제를 봐주는 누나인 나는 힘이 없다.


  학원에 5시간 동안 앉아있다 보면 결국 여기까지 의식이 흐를 때가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해야만 하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지만 결국 모르겠다. 답이 없는 현실에서 가만히 앉아서 답안지를 기다리는 내가 바보 같이 느껴진다. 그리고 바보는 그저 10시가 되면 제출했던 휴대폰을 챙겨 아이들을 데리러 온 대치동의 비싼 차들을 사이사이 지나쳐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 침대에 눕는다. 현재에 사는 나는 미래가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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