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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르미 Nov 04. 2020

친정엄마 전문 미용사 울 서방님

엄마 이야기 6

남편은 손재주가 뛰어나다. 고장이 난 물건도 그의 손을 거치고 나면 멀쩡해진다. 가구를 만들기도 하고 전기, 수도, 보일러, 막힌 세면대나 변기까지 한 방에 해결한다. 심지어 집수리까지 해서 우리 집, 친정 집, 시댁까지 다 그의 손을 거쳐 재탄생하게 되었다.     


“우리 윤 맥가이버 씨 솜씨가 대단해! 못하는 게 없네?”     


그는 내가 이렇게 말해주길 바라고 늘 칭찬을 기대한다. 마음에 쏙 드는 칭찬을 한 번도 못해준 것이 미안하지만 나에게는 안타깝게도 그런 애교가 없다. 그를 아는 지인들은 가끔 도와달라며 부르면 온갖 장비를 들고 출동한다. 처음에는‘우리 남편이 재주꾼이구나!’하며 기분이 좋았지만 자주 비슷한 상황들이 벌어지니 그도 피곤해 보였고 보는 나도 피곤했다. 사소한 일이라도 내가 원하는 일에 더 집중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오랜 세월 같이 살다 보니 그 부분에 대해서는 빨리 포기를 했다. 그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는 것이 내 마음이 편했다.


손재주가 좋아 혼자 이것저것 다 하더니 이제는 머리까지 혼자 자른다. 처음 집에서 이발할 때 뒷머리를 다듬어달라는 부탁을 받고 대략 난감했다. 그냥 미용실 가서 편하게 이발하고 오라고 했더니, 비싼 돈 주고 잘랐는데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투덜댔다.     


내가 연습해서 자르면 전문가 뺨치게 잘 자를 수 있지.
난 눈썰미가 좋아서 딱 보면 딱 한다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남편이 큰소리를 치며 말했다. 처음 자른 머리가 스포츠머리라 고등학생 같기도 하고 안 어울리는 것 같아서 면박을 좀 주었다.     


“그런 머리면 나도 자를 수 있겠다. 그냥 밀어버리면 되잖아?”     


하지만 남편은 낙담하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잘할 때까지 해보는 성격이다. 자존심도 세고 승부욕 또한 강하다. 어느 날 내가 들어오자마자 나를 기다렸다는 듯이 뿌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머리 잘랐다. 어때? 괜찮지?”     

이번엔 제법 훌륭했다.     


솜씨가 늘었네? 이제 미용실 차리려고?   

난 장난스럽게 얘기했는데 뜻밖의 말이 그의 입에서 나왔다.     


이제 장모님 머리 잘라줄 수 있겠지? 싫다고 하시진 않겠지?    


친정엄마의 머리를 보면 마음이 아프다. 투병 중에 다 빠져버린 머리. 항암치료를 마치고 머리가 나기 시작했지만 항암약을 아직 복용 중이라 머리가 옆부분과 뒷부분만 조금 나고 잘 자라지 않았다. 항암치료 끝나고 엄마의 몸이 너무 쇠약해졌다. 두 분만 있는 시골에서 엄마가 손도 못 써보고 돌아가실 것 같았다. 내가 걱정을 하자 남편은 군산으로 모시는 것도 생각해 보라며 오빠랑 상의해보라고 했다. 부모님은 딸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서인지 처음에는 군산에 있는 병원에 있다가 몸이 좀 나아지면 돌아가겠다고 했다. 엄마가 군산에 있는 병원에서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며 차츰 회복하고 있을 때 나는 엄마에게 군산으로 이사 오라고 설득했다. 아빠가 싫다고 반대를 했지만 오빠와 상의한 후에 아빠 설득하기 대작전을 펼쳤고 남편까지 거들어 드디어 성공했다. 마침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같은 라인에 빈집이 하나 나왔다고 부동산에서 연락이 왔다. 리모델링을 한 집이라 깨끗하고 마음에 들어 바로 계약했고 그때부터 친정과 이웃이 되었다.      


엄마를 모시고 미용실 가는 길은 나에게 너무 힘들었다. 휠체어를 밀고 가야 했는데 인도는 울퉁불퉁하고 높은 턱을 만날 때면 난감했다. 마음씨 좋은 누군가는 “제가 밀어드릴게요.”하며 도와줬지만 또 누군가는 무심하게 바라만 봤다. 체격에 비해 힘이 없는 부실한 나는 식은땀이 났다. 그래도 엄마 앞이라 웃으려 노력했다. 내가 힘들어하거나 아프면 분명 엄마가 미안해서 다시는 나가자고 하지 않을 걸 알기에. 미용실을 두 곳을 가 봤지만 친절도가 떨어져서 괜히 엄마가 의기소침해질까 봐 걱정되었다. 하루는 미용사인 친구 동생에게 집으로 출장 와달라고 부탁했다. 엄마도 고마운 마음에 차비까지 넉넉히 주었지만 동생은 딱 만원만 받겠다며 돈을 돌려주었다.      

머리 자르는 일조차 어렵게 생각하는 엄마를 보며 고민이 되었다. 때마침 남편이 학원도 안 다니고 독학으로 커트를 배운 것이다. 그 후로 남편은 엄마의 전담 미용사가 되었다. 엄마의 삐죽삐죽 나온 머리가 정리되고 깔끔해지면 엄마는 거울을 보고 이렇게 말한다.     


미용사보다 우리 사위가 더 잘 자르네.
어떻게 이렇게 잘 자르는지 재주가 참 좋아. 깔끔하고 좋다!


엄마는 칭찬을 할 때 풍성한 표현으로 상대를 더 기분 좋게 한다. 엄마 나름의 칭찬 방식이다. 엄마가 아빠한테 얼른 미용실에(남편한테) 이발비 주라며 웃었다. 남편은 안 받으면 엄마가 다음번에 부탁을 쉽게 못할까봐 주는 돈을 받으며 멋쩍게 웃는다.


감사합니다. 하하. 마음에 드세요?    

 

엄마는 너무 시원하다며 환하게 웃는다. 또 남편이 좋아하는 자장면과 탕수육을 시켜준다. 남편은 쩝쩝대며 아주 맛있게 먹는다. 먹는 것도 아주 잘 먹는다. 어른들이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다. 치킨을 먹어도 살을 쪽쪽 다 발라먹고 깨끗한 뼈만 남겨있는 그릇을 보면 너무 신기하다. 

남편과 나는 사고방식이 달라 부딪힐 때도 많지만 내 남편을 자세히 탐구하다 보면 그만의 매력이 있다. 특히 부모님께 잘하는 모습은 요즘 사람 같지 않다. 혼자 사는 큰 이모도 무슨 일이 생기면 남편을 찾는다. 그러면 남편이 달려가서 뚝딱뚝딱 고쳐주고 무슨 일이건 해결해 주고 온다. 남들은 손재주가 뛰어난 남편과 사니 얼마나 좋으냐고 말한다. 처음부터 알아서 잘하던 사람이라 나는 오히려 무덤덤하다. 그래도 엄마의 머리를 잘라 줄 수 있을 때까지는 남편이 해주면 좋겠다. 남편이 손재주가 좋으니 좋은 점들이 많다. 엄마가 좋아하니 내가 큰 효도나 한 것처럼 마음이 뿌듯하고 든든하다. 젊어서부터 인덕이 많고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았던 엄마. 지금은 몸이 아파서 맛있는 음식 먹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좋은 구경도 못하지만 여전히 우리 엄마는 복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전문 미용사가 사위라니 참 특별하지 않은가? 비록 아마추어지만 솜씨는 제법이니 말이다.               


       <친정엄마 머리를 이발하고 있는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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