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이 도망치고 있는 기분이다. 지금까지 얻은 것들은 더없이 하찮아 보인다. 더 좋은 상황을 원한다. 아니, 더 나은 것을 가져야 할 것 같다. 더 좋은 조건을 향해 이직'해야 할' 것 같다. 주변과 스스로도 이직을 원한다고 스스로에게 되뇌인다. 그럼에도 이력서와 경력기술서를 쓰지 않으며 그런 자신에게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이직하지 않아도 좋을 이유를 먼저 떠올린다.
문득 내가 변화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더 돈을 많이주는 회사, 더 큰 회사, 그러니까 더 유명한 회사에서 일하고 싶다는 단 한가지의 이유 말고는 다른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지금 일하는 곳에서 운이 좋은 것이겠지만) 사실은 변화를 무서워하고 있는 것이었다.
주입된 성역할적 가치관에 기인한 일말의 자존심일까. 두려울게 뭐가 있냐며 난 무섭지 않다며 강하게 부정하는 마음의 소리부터 들려온다. 그럴수록 의심이 강해진다. 일단은 어찌되었든 판단이 맞다고 가정하고 오늘은 스스로를 위로해주려 한다.
가벼운 것이어도 변화는 어려운 것이고. 몇 주 째 다이어트를 한답시고 달라진 식단을 유지하고 있는것도 충분히 큰 변화를 겪고 있는 것이며, 거절과 탈락을 두려워 해도 좋다고. 괜찮다고 되뇌인다. 요즘엔 이런식으로 결말이 '따뜻한 위로의 분위기'로 흘러가는것에 마치 알러지 반응처럼 경기를 일으키곤 했다. 그런데 사실은 감정을 인정하고 제대로 이해하고 보듬어주는 것이 결국엔 유일하고 용기있는 해법일지 모르겠다.
작은 인정으로도 기분이 벌써 조금 달라졌다. 도망치는 중이 아니라 단단한 발걸음으로 스스로의 길을 걸어나가는 중이라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