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는 즐겁다 라고, 내가 그러기로 결정 했거든요.
3월이 되고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우리 집 삼 남매도 새 학년 새 학기 새 학교로 점프업! 했다.
첫째는 중학교 신입생이 되어 한동안 교복을 챙겨 입는것부터가 등교의 시작이다.
누가 신입생 아니랄까봐 새하얀 셔츠가 교복 뒷구멍으로 스멀스멀 뱀처럼 기어 나오고 자크만 잘 잠그면 되는 넥타이도 처음이라 그런지 삐뚤빼뚤하여 어른의 손길이 절실했지만 이튿날 부터는 그 흐트러짐의 정도가 하루하루가 나아지고 있다. 둘째 셋째도 새 학년 새 반 새 친구들이 익숙해져 가는지 학교 가는 발걸음이 가볍다.
아이들이 등교를 하고 나또한 올해 처음으로 유아기관으로 성교육 수업을 다녀왔다.
굿네이버스에서 강사로 활동한지도 올해로 3년 차다.
첫해에는 선배 강사의 강의력을 배우고 내 것으로 소화한다고 바빴고, 둘째 해에는 나름 열정적으로 강의를 했다. 하루에 길게는 1시간 30분인 수업이지만 나의 멘트 하나하나가 그 조그마한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나서는 그 걸음마다 어깨 뽕이 절로 들어간다.
올해의 첫 수업을 마치고 근처 국밥집에서 허기를 채울 겸 나에게 혼밥을 청했다.
언제부턴가 혼밥을 하는 편리함이 '타인이 혼자 밥을 먹는 나를 어떻게 볼까?' 하는 우려보다 더 힘이 세졌다.
"여기, 국밥 1인분 주세요!"
이름난 맛집답게 국밥은 금방 나왔다.
"어머야~~ 저기함 봐봐래이. 세상에 저래 전쟁이 일어나는 데도 아를 낳네~"
현재 전쟁 중인 가자지구에서 산모가 출산을 했다는 소식을 TV화면 너머로 지켜보시던 어르신들의 이야기가 내 귀로 흘러들어 왔다. 어제 본 신문에서는 대한민국의 출산율 저하에 대한 우려의 이야기로 일면이 장식되었었는데, 우리의 역사인 6.25 전쟁중에도 생명의 탄생을 멈추지 않았던 그 출산이라는 것이 참으로 고고하면서도 또 한편으론는 아이러니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라믄~ 전쟁이라고 생긴 아이를 어찌 안 났나~ 낳아야지!!"
아주머니와 아저씨 두 분이 번갈아가며 그 화재로 이야기를 이어 가셨다.
"저 아는 진짜 불행한 아지. 얼마나 재수가 없으면 전쟁중에 다 태어나노."
그들의 대화를 듣는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런 난리 통에도 태어 난 그 아이는 행운아일까? 불행아일까?'
총알이 머리 위를 날아드는 그 환경 속에서 아기가 결코 안전할 수 있을리라고는 장담 할 수 없다. 그는 태어나자 마자 생명을 다 할 수 도 있는 일이다. 그러한 상황을 표면적으로만 바라본다면 그 아기는 태어나자 마자 총알수저를 부여 받은, 탄생부터 세상에 그렇게 재수없고 불행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얘들아~ 우리가 어떻게 태어났는지 그림으로 보여줄게."
유아들에게 나는 오늘도 생명의 탄생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엄마씨인 난자를 아빠씨인 정자가 만나면 아기가 될 수 있어. 하지만 이렇게 무수히 많은 정자들이 모두 다 아기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란다. 건강하고 튼튼한 정자만이 그 곳까지 가장 먼저 도착 할 수 있어. 그리고 그러한 정자라고 해도 건강하지 못한 난자를 만나면 아기가 되지 못해. 그렇게 우리는 건강하고 제일 빠르고 제일 끈기 있고 성실했기에 태어난 것이야."
그러한 위너라고 해도 태어 날 수 있는 그 상황까지도 탄생의 운이라는 생각이 드니 그 난전에서 태어난 그 아이는 최고의 행운아 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으로 귀결되었다.
어쩌면 나의 탄생 자체에 가치를 부여할 수만 있어도 그 인생은 시작부터 만리장성을 쌓고 태어난 인생이지 않을까? 전쟁 중 태어났다 하여 재수가 없게 태어났다고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그 인생은 언제나 전쟁 중일 것이다.
내가 발을 딛고 사는 이 땅에 아이가 태어나는 수가 현저히 줄어가고 있다고 한다.
그 이유야 저마다 다양하겠지만 어쩌면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그들의 삶 자체가 전쟁터인 건 아닐까?
그리고 그 이전에 그들의 삶을 전쟁으로 인지하게 만든 이들은 누구일까? 전쟁터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당연히 불행하다고 여기게 되는 그러한 여론들이, 어른들이, 기성세대가 종전을 선언하지 않는 이상 그 전쟁은 계속 될거란 생각이 든다.
오늘도 나는 육아가 즐겁기로 선언한다.
어쩌면 나에게도 그 삶들이 전쟁이 아닐 수 없다. 남들은 하나도 낳지 않기로 하지만 세 아이를 키우며 겪어내는 그 일 자체는 어쩌면 세계대전급 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만 나는 그것을 전쟁으로 인지 하지 않기로 내가 결정했다. 나는 매일 새로 태어나는 그들의 가능성에 행운이라는 이름을 붙여 부르기로 했다. 탄생자체가 즐거운 일이든 그들을 길러내는 일도 즐거움일 수 밖에 없다고, 그렇게 부르기로 나는 결정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