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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엔드 Nov 23. 2020

점심에 레코드 원장님 만났습니다.

벗이 있어 멀리서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한의사 커뮤니티 눈팅을 하다 보면
'한 번 만나보고 싶다.'
는 생각이 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에겐 레코드 원장님이 그랬습니다.
먹는 사람의 눈높이에서 찍은 음식,
현장감 넘치는 일상 속 대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점점 줄어드는 술과 안주,
그 사이 스치는 고민과 깨달음,
마침내 보여지는 그릇 바닥.

담백하고 간결한 문체로
과도한 양의 주반을 드시는 반전 매력에
많은 원장님들이 매료되었었죠.

그 영향을 받았는지
제가 한 달간 연재했던 점심 수필에
레코드님 아니시냐는 댓글이 많이 달렸습니다.
이쯤 되면 레코드 원장님께 한 번 연락드리고
찾아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카페 쪽지를 통해 진작 인사를 드리고 연락처를 받았지만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로 차마 가보지 못하다가
이번에 1단계로 풀리자마자 연락을 드렸습니다.


약속한 목요일입니다.
짐을 챙겨 서울역으로 향합니다.
열차 시간이 남아 역사 안을 어슬렁거립니다.


풍년제과가 보입니다.
서울 특산품은 아닌 전주 특산품이지만,
천안에선 어차피 맛보기 어려운 타지 음식일 겁니다.

초코파이 10개들이 하나 주세요.


열차 타러 갑니다. 여행 가는 느낌입니다.
모르는 아저씨 보러 가면서 설렙니다.


오늘의 선물. 풍년제과 초코파이.
아빠가 이걸 집에 가져가면, 아이들이 좋아하겠죠?
그걸 상상하니 제 기분이 좋아집니다.

우리 열차는 잠시 후 천안아산역에 도착하겠습니다.
내리실 분은 미리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날이 참 좋습니다.
택시 타고 식당으로 갑니다.


불당동 복요리 전문점.
오늘의 식당입니다.
레코드 원장님은 먼저 와 계십니다.

아이고,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예. 처음 뵙겠습니다.

생각보다 젊으시고, 생각보다 날씬하십니다.

점심특선 복사시미랑 복불고기 중에 뭐가 좋으세요.
아무거나 좋은데... 그럼 그냥 더 위에 쓰여있는 복사시미로 갈까요?
아닙니다. 그 정도로 취향이 없으시면, 복불고기 드시죠.
예 알겠습니다.

띵동.

여기 복불고기 두 개랑, 참이슬 두 병 주세요.
원장님 ㅋㅋㅋㅋㅋㅋ 두 병이요? 처음부터?
아... 주방에서 오시기 좀 먼 듯해서요. ㅎㅎㅎ

둘이 마시면서, 처음부터 두 병을 시키는 사람은 처음 봅니다.
시작부터 웃음기가 넘칩니다.


상이 차려집니다. 제 출근환을 함께 나눕니다.


분명 참이슬 두 병을 주문했는데, 린 두 병이 나옵니다.

참이슬 시켰는데 린이 나오네요? 하하.
그러게요. 하하하.
자, 한잔 하시죠.
좋습니다.

어차피 소주는 소주.
주는 대로 마시는 성격이, 저랑 닮았습니다.


상이 더 차려집니다.
메인은 아직인데도 이미 먹을 게 많습니다.
술이 술술 들어갑니다.


드디어 메인, 복불고기 등장.

그런데 원장님, 어떻게 그렇게 많이 드시는데 날씬하세요?
평소엔 많이 안 먹어요. 그냥 글 쓸 때만 많이 먹을 뿐.
아... 그렇군요.

음식은 많이 안 드실지 몰라도 술은 확실히 많이 드십니다.


복불고기가 익어갑니다. 한 입 먹어보니 기가 막힙니다.
이게 인당 29,000원이라니 믿어지지 않습니다.

소주를 여러 잔 더 기울일 즈음.
원장님이 복불고기를 정리해 한쪽에 더십니다.

설마... 아직 더 나올 게 있어요?
그럼요. 있죠. 하이라이트. 복지리. 술을 마시면서 깨게 하는.


29,000원의 행복입니다.

복어를 안주삼아 소주를 들이키며
이 얘기 저 얘기를 나눕니다.
연애, 결혼, 출산, 육아, 개원 등.


아, 원장님. 제가 사실 이 동네 출신이거든요.
한일고 출신이시죠? 사실 저도 그렇습니다.
예?
저도 한일고라고요. 대전대니까 xx이 아시죠? 제가 xx이 1년 선배예요.
아 그럼 xx이형이 제 2년 선배니까... 제 3년 선배, 8기 세요?


갑자기 알게 된 출생의 비밀.
세상에 이런 반전이 있나요.
레코드 원장님이 제 고교 선배라니.
오늘 괜히 설렌 게 아니었습니다.

여기, 소주 한 병 더 주세요.
어차피 '린'을 줄 걸 알아서, '참이슬'이 아닌 '소주'를 주문합니다.


형, 한 잔 더 드세요.
그래. 마실게. 너는 이제 그만 마셔라.
술 권하는 동생과 술 말리는 형.
어렵게 상봉한 형제가 술잔을 비웁니다.
여섯 병을 마시고 나서야 식당을 나옵니다.


야. 우리 길에서 한 잔 더 해. 소주 한 잔.
만취한 형이 편의점에서 한 잔 더 하잡니다.
형. 소주는 무리예요. 맥주 한 잔 하시죠.


형도 저도 취했습니다. 

집에 들어갈 시간입니다.


선물로 준비한 초코파이에 제 책인 비만문답을 몰래 넣습니다.
지나가는 택시를 잡고, 형을 태웁니다.

형. 들어가세요. 초코파이 꼭 애들 주시고요.
알았어. 오늘 너무 좋다. 다음에 또 보자.


뜻밖의 동문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여전히 날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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