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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엔드 Apr 23. 2024

세부 여행기 1일 차 - 막탄 쉐라톤

2024.4.9.


공간도 소음도 뭔가 불편은 한데 희한하게 잘 잤다. 샤워실은 많으나 수압이 약했다. 체크아웃하러 가니 카운터에 한국 여자분이 계셨다.


안녕하세요?


오 안녕하세요~!


유난히 친절하셔서 사장님인 줄 알았더니 아니었다. 직원이시란다. 한국에서 오랫동안 헬스장을 하시다가 세부로 오신 지 오래 안 되셨다고. 우리를 아저씨들이라 불렀지만 밉지 않았다. 아저씨들 맞는데 뭐. 2019-2020 최신 개정판 가이드북을 열심히 탐독하는 팡을 보고는 화들짝 놀라서

요즘 시대에 책 보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뭐? 2019년?! 아휴 그때 있던 가게들은 다 코로나에 망하고 태풍에 날아갔다고요!


그러면서 2024년 현재 세부에서 어디를 가야 하고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 알려주셨다. 참 훌륭한 직원이었다.


우리가 추천받은 곳은 새로 생긴 크랩집. 아침부터 크랩은 헤비하니 해물라면, 볶음밥, 새우 요리에 망고셰이크. 망고셰이크가 정말 유난히 아주 특별하게 놀라울만치 맛있었다.

와. 이거 한국에서 먹던 맛이 아니야.

그러니까. 1일 3 망고 해야겠는데?

그렇지. 1일 3 망고 1 마사지 고고.


새우 요리는 나쁘지 않았다. 해물라면엔 김치가 있었으면, 볶음밥엔 짜장소스와 짬뽕국물이 있었으면 더 좋았으리라. 그래도 이 정도면 만족.


식당 바로 앞에 과일주스 파는 집이 있어 이번엔 그린 망고 주스를 시켜보았다. 때마침 톡방에서 배가 그린망고를 추천하고 있었다. 얘기한 대로 달콤 새콤 상콤했다. 우리는 거듭 감탄했다.

같은 열대지방이라 해도 나라마다 유독 더 맛있는 과일들이 있을 거 아니야? 필리핀은 그게 망고래. 내가 왜 가이드북을 읽겠어. 이런 유구한 지식들은 책에서만 얻을 수 있거든.


팡은 가이드북을 좋아한다. 우리는 2019-2020 최신 개정판 가이드북을 보며 여행 중이다.


마트에서 장을 보았다. 망고, 포멜로, 망고스틴 같은 과일과 산미구엘 맥주를 샀다.

이거 봐바. 필리핀이 과자가 되게 맛있대.

오케이. 피아토스 고야 필로우.


과자와 쵸컬릿까지 더해서 장을 보고 이어서 호텔 체크인. 벽 사이로 보이는 바다가 예술이었다. 웰컴 드링크로 받은 과일주스가 또 맛이 좋았다. 여기는 과일의 나라.


숙소는 넓고 쾌적했다. 문을 여는 순간 차가운 공기가 우릴 반겼다. 수영장과 바다가 다 보이는 오션뷰. 어제도 오늘도 다 팡이 예약했다. 믿고 따르는 팡투어.


세부 여행은 여유롭다. 반드시 가보아야 할 곳 따윈 없다. 수영을 하고 그늘에 누워 맥주를 마셨다. 잠이 바람처럼 솔솔 불어왔다. 느긋하게 오후가 지났다.

밥 먹으러 가야지?

고고. 야 해산물 어때?

그럴 줄 알고 준비했지. 여기 어때 레드 크랩.


팡이 가이드북을 펼쳐 보였다. 레드 크랩. 2019-2020 최신 개정판 가이드북에 나와있는 집. 무려 코로나와 태풍을 견디고 2024년인 지금도 구글리뷰 4.4를 유지 중인 집. 차로 20분 걸리지만 그랩 불러 타고 가면 그만이다.

세부에는 유난히 한국인이 많다. 가는 곳마다 한국인이 있다. 발에 채이는 게 한식당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사장님이 한국인인 곳이 많다. 여기도 그래 보였다. 메뉴에 한국어가 병기되어 있어 주문도 어렵지 않았다. 블랙페퍼 크랩 한 마리와 밥, 야채, 그리고 망고셰이크 둘. 맛있게 게를 먹고 있는데, 직원들이 오더니 군무를 췄다. 오랜만에 보는 광경이었다.

야 이거 시키는 것 만으로 퇴사 사유감 아니냐?

그러게. 인건비가 싸서 가능한가? 우리나라에선 이런 거 언제 봤나 기억도 안 난다.

그 왜 예전에 TGIF 같은 데서 했었잖아. 생일이면 축하 노래도 불러주고.

그치. 우리도 예전엔 그랬었지.


급여를 더 주어서인지 어때서인지 몰라도 춤추는 직원들은 진심 기뻐 보였다. 현타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 춤을 마치고 

Enjoy your meal~! 하기에

Thank you! Thank you~! 박수치며 크게 두 번 외쳤다.

다음 일정이 고민이었다. 마사지받을까 술을 마실까 의논하다가, 마사지도 받고 술도 마시기로 했다. 먼저 마사지를 받으러 샵에 갔는데, 길 건너 어딘가에서 음악이 들려왔다. 메르카토. 노천 푸드코트였다. 오! 뭔가 현지스러워! 하며 둘러보니 여기도 한국인 천지였다. 맥주 한 병씩 마시며 라이브 노래를 들었다.

왠지 조금 걸어도 될 것 같았다. 안전에 대한 감각은 우리도 없지 않으리라. 밝은 큰길로만 걸었다. 낙후된 세부 거리가 마치 어릴적 보은 읍내를 연상시켜서, 나는 괜히 호감이 갔다. 환전소에서 400달러를 환전했다. 카페가 보여 들어갔다. 입구에서 가드가 문을 열어주었다. 잘 냉방된 공기가 쾌적했다. 커피베이. 한국 브랜드다. 한국 드라마가 보이고 한국 노래가 들렸다. 어딜 가든 한국이 있다. 


커피값이 160 페소면.. 한국돈 4천 원 정도?

그렇지. 1인당 gdp까지 고려하면.. 체감상 36,000원 정도?

그럼 신라호텔 정도네. 인증샷 찍을만하네.


카페 내에서 유난히 셀카를 많이 찍는 현지인들을 보며 운 좋게도 잘 사는 나라에 살고 있음에 감사해했다.

열 시. 가게들이 슬슬 문을 닫고 있었다. 더 돌아다니는 것은 위험하다. 그랩 잡아 호텔로 돌아왔다. 호텔바로 가는 길에 탁구대가 비어있어 탁구를 쳤다. 개 발렸다. 도대체가 서울 놈들은 못하는 게 없다.


밤의 해변은 밤대로 아름다웠다. 별이 보면 볼수록 빛났다. 바닷바람이 시원하게 살을 스쳤다. 칵테일 두 잔을 시켜 나누어 마셨다. 모든 게 평화로웠다.

숙소에 올라와 맥주를 마셨다. 나는 여행기를 마무리하고 팡은 지출을 정산했다. 곧 켠이 온다.

맥주로는 모자라 위스키를 마셨다. 얼큰히 취할 무렵 켠이 왔다. 환호성을 지르며 환영했다. 같이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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