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오늘은 티비를 보다가 진짜 화가 났다.
주변을 보니까 나 혼자 화가 났다. 그래서 더 화가났다.
이유를 설명하기에 앞서..
1. 쌍둥이를 출산한 친구가 있다. 이 친구는 나에게 전화를 걸어 쌍둥이 육아가 너무 힘들다고 했다. 남편이 직장 다니느라 전혀 도와주지 않는다고 푸념했다. 그러면서 나에게 난임병원은 잘 다니고 있냐고 물어보길래 잘 다니고 있다고 했다. 언제 보자고 했는데 그때쯤 내가 여행을 가서 안될 것 같다고 했더니 부럽단다.
웃음이 났다.
"내가 왜 여행 가는 줄 알아? 시험관 실패해서 가는거야. 가만이 있으면 넘 우울하니까 기분전환이라도 해보려고. 난 여행 안가고 싶어."
하지만 이 말이 내 친구 귀에 안들렸을까? 그럼에도 내 친구는 나한테 쌍둥이 육아가 체력적으로 얼마나 힘든지, 야근하는 남편때문에 독박육아가 얼마나 고된지 나에게 알려주는 걸 멈추지 않았다. 아이러니하다. 그 친구가 그렇게 힘들다고 하는 건 내가 그토록 하고 싶은 건데. 아마 본인도 힘드니까 위로가 필요했겠지. 나는 친구를 열심히 위로했다. 조금 더 자라면 덜 힘들다더라.(내가 뭘 안다고?) 남편이 아기들한테 하나라도 더 좋은 거 해주려고 야근하는거지. 친구는 나의 위로에 만족해하며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난 남편을 붙잡고 엉엉 울었다.
2. 회사 휴게실에 커피타러 갔다가 직원 한 분을 만났다. 평소 얘기도 안하는 사이인데 날 보자마자 대뜸 말씀하신다.
빨리 애기 낳아야지. 그러게요. 병원은 다니고? 네.
난 대수롭지 않은 듯 밝게 대답했다. 사실 이 분은 내 상황이 그렇게 궁금한건 아니다. 대화의 배경이 필요할 뿐.
우리딸이 결혼하고 바로 임신했잖아. 아유 따님이 건강한가봐요. 이번에 둘째 가져서 담달에 출산이야. 난 절대 손자 안봐준다고 했어. 그래도 되요? 시부모님들이 손주를 엄청 이뻐해서 시터 고용했자나. 어머!
그들은 이 같은 행복을 나도 빨리 느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니 굳이 아이를 못가져서 안타까운 나를 붙잡고 그런 얘기를 했겠지.
엊그제 전참시를 봤다.
출산을 앞둔 홍현희가 나왔는데 그녀는 출산 후 복귀가 늦어지면 사람들에게 잊힐까봐 걱정이라는 고민을 이효리한테 털어놓았다. 그 장면에서 난 참을 수가 없었다.
하아....
아니, 님은 왜 위로를 받겠다고 남의 가슴에 대못을 박나요.
이효리는 이전부터 방송에서 임신 생각이 있음을 종종 드러냈고 몸을 만들기 위해 한약을 먹고있다는 얘기도 했었다. 그렇다면 딩크는 아니고 난임이라는 얘기다. 사적으로 이효리와 얘기해본적도 없는 나도 짐작할 수 있는 바를 홍현희는 당연 알지 않았을까? 그러니까 이효리에게 공진단을 선물했을거고.
근데, 그럼, 홍현희는 이효리가 난임이라는 사실을 알면서 왜 출산 후에 대한 고민을 이효리한테 하는 걸까.
이효리는 답을 줄 수 없다. 그런 상황인 적이 없으니까. 그녀가 예전에도 지금도 대체불가능의 최고 스타임이 분명하지만 이 고민 상담은 이효리한테 할 건 아니지 않는가?
임신, 출산, 육아와 관련해서 나에게 위안과 위로를 받으려는 사람들땜에 힘들었던 나는 그 장면에서 너무 화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효리 테레사는 몇 달 쉰다고 너를 안 찾지는 않는다고 위로하고 한 마디를 더 보탰다.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 그게 더 중요하다고
이효리는 나와 다르게 홍현희의 고민상담이 아무렇지도 않았을 수 있다. 그런데 이 대사에서 이효리도 아이를 바라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 말은 홍현희한테 하는 말이 아니라 본인 자신한테 하는 말인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니가 어떻게 아냐고? 내가 그 마음이니까요.
내 아이가 태어난다면 함께하는 그 시간이 소중해 직장이고 뭐고 다 내팽개칠 생각이 있으니까.
넌 왜케 예민하니? 물어볼수도 있지. 이효리는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더만.
아주 잠깐인데 그런 얘기도 못해?
홍현희는 그런 고민 충분히 할 수 있고 위로하는 이효리는 따뜻하고 훈훈하던데 왜 니가 난리야?
이럴수 있다. 안다. 잘 알고 있다.
난임이 상전이 아니라는 것도 압니다. 알아요.
그치만, 그래도 조금만 배려해줬으면 좋겠다.
이효리는 나와 같이 예민하지 않을 것임.
홍현희의 고민에 진심으로 같이 걱정해주었을 것임.
내가 이효리분의 속을 알 수도 없고 그냥 지레짐작하는 것이며 나 혼자 오바하는 거 맞음.
그래도 난 너무 속이 상함.
근데 나 말고 속상해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게 더 속상함.
조금만 배려해주면 난 오늘은 안 울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