쎄믈리에의 촉으로 알려드립니다
변호사는 쎄믈리에다. 쎄한 것을 한눈에 감별해내는 감별사라는 뜻이다. 수많은 거짓과 일부의 진실 속에서 '사실'만을 우선적으로 찾아내야 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법정에서는 거짓과 진실, 그리고 사실이 오간다. 거짓은 그야말로 거짓말을 하는 것인데, 진실과 사실의 차이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설명하기가 좀 어렵다. 진실은 당사자가 느끼는 상황이나 사건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경위 같은 것이 포함된 것을 말하고, 사실은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실제 발생한 사실을 말한다.
'알라딘이 배고픈 소녀에게 빵을 나눠주기 위해 빵을 훔쳤다'라는 내용이 있다면, 알라딘이 '배고픈 소녀에게 빵을 나눠주기 위해 빵을 훔쳤다'라는 것이 진실이고 '알라딘이 빵을 훔쳤다'라는 내용이 사실이다. 변호사가 알라딘을 변호하는 입장이라면 빵을 훔쳤다는 사실을 먼저 확인하고, 배고픈 소녀에게 나눠주기 위한 동기가 있었다는 진실을 호소해야 하는 것이다.
변호사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대개 거짓을 말하거나 진실을 너무 과장되게 말한다. 앞선 예에서 알라딘이 의뢰인이라면 ① 거짓 : 빵을 훔치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하거나, ② 과장된 진실 : 자신은 배고픈 소녀에게 빵을 나눠주려고 했을 뿐인데(훔쳤다는 얘기는 쏙 빼고 말한다.) 갑자기 경찰이 자신을 잡았다면서, 배고픈 소녀에게 빵도 주지 않는 나라가 잘못된 것이 아니냐며 억울해한다.
이렇게 거짓말을 하거나 과장된 진실만 얘기하는 의뢰인들과 상담을 하면서 걸러 듣다 보면 쎄한 부분을 가려낼 수 있게끔 쎄믈리에로 발달하게 된다. 쎄믈리에가 된 변호사는 촉을 발동하여 일단 사실을 파악한 뒤에 의뢰인이 말하는 중구난방의 진실을 전해 듣고, 이를 판사가 이해할 수 있게끔 호소하는 것이다.
요즘 각종 보험사기와 보이스피싱, 중고거래 사기, 리딩방 사기 등 온갖 사기가 판을 치는데 범인을 잡더라도 피해자들의 피해가 회복되기는 쉽지 않아서 안타까울 따름이다. 쎄믈리에의 가장 기초가 되는 사기꾼 판별법을 알고 있다면 조금이라도 피해를 당하는 사람이 줄어들지 않을까 싶다.
사기꾼(*형법상의 사기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사기보다 좀 더 범위가 적은데, 이 글은 일반적인 의미의 사기를 말한다.)들은 거짓을 진실처럼 말한다. 사실과 달리 진실에는 스토리가 있어서 호소력과 설득력이 있다. 그래서 조금만 주의 깊게 생각하면 그가 하는 말이 거짓말인 줄 알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속는 것이다. 그러니 반대로 생각하면 사기꾼이 진실처럼 말하는 거짓에서 사실만 뽑아낼 수 있다면 사기꾼을 감별해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알라딘이 사기꾼이었다면 : 일단 빵집 주인을 며칠 동안 찾아가 이 나라에 배고픈 아이들이 많은데 아무도 그 아이들을 돌봐주지 않는다며 자신이 굉장히 따뜻한 사람인 것처럼 미리 밑밥을 깐다. 그 아이들을 위한 빵 배급사업을 연결해줄 지인이 있다고 떠들어댄다. 배급사업 입찰을 위해 초기에 아주 적은 돈만 투입하면 되는데 나중엔 큰 수익이 난다고 한다. 배고픈 아이들을 위해 빵을 나눠주는 것이 얼마나 보람찬 일인지에 대해 한참 떠들고, 아이들을 위한 사업이라 정부가 돈을 대주기 때문에 돈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얼핏 듣기엔 그럴듯한데, 여기에 구체적인 '사실'이 무엇이 있는지를 찾아보면 알라딘이 사기꾼인지 아닌지 금방 알 수 있다. '사실'은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근거가 있어야 한다. 위 문단에서 객관적인 근거로 확인된 부분이 단 하나도 없음을 알기에 사기꾼은 '배고픈 아이들', '따뜻함', '보람'과 같은 추상적인 말과 알 수 없는 지인이나 정부를 들먹인 것이다.
현실에서도 사기꾼들이 주로 들먹이는 것이 바로 공익이나 사회적 가치다. 사람은 누구나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망이 있는데 그 부분을 진실처럼 들먹이며 거짓을 감추려는 것이다.
"저희가 단순히 영리 사업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배가 고픈 아이들을 위해 빵을 배달하고 아이들의 꿈을 응원하면서 사회에 공헌하는 것입니다. 사장님같이 인성이 훌륭하신 분이 아니면 이런 말씀드리지도 않아요."
"이 땅이 개발되면 지역사회에도 아주 발전이 많이 될 겁니다. 사장님은 이 지역의 미래에 투자하시는 겁니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사기꾼이 들먹이는 공익적 가치에는 아무런 구체적 사실이 없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그러니 '사실'에 대해서만 집요하게 물어본다면 그 과정에서 사기가 곧 들통나기 마련이다.
사기꾼이 거짓을 진실처럼 들리게 하기 위해 잘하는 행동 중 하나가 지인을 파는 것이다. 사기꾼의 지인들은 그럴듯해 보이는 수상한 직함을 가지고 있고(고문, 상임이사, XX설계사, XX관리자, 책임 XX 등), 실제로는 아무 권한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사기꾼이 소개해주는 지인이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구체적으로 알아볼 필요가 있고, 그 지인과 사기꾼이 어떻게 언제 알게 되었는지도 추궁해야 한다(사기꾼이 지인 돌려막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 A한테는 B를 안다고 소개하고, B에게는 A를 안다고 소개하는 식이다.).
사기꾼의 지인들이 각종 정부기관에서 일한다고 하는 경우도 많다. 이 경우엔 직접 해당 부처에 그런 사람이 있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해당 정부기관 홈페이지나 신문기사 등을 통해 찾아보면 된다. 보이스피싱류의 사기는 아예 대놓고 검찰이나 경찰을 사칭하는 경우가 많은데, 일단 이름과 부서명을 들은 후에 걸려온 전화를 끊고 해당 부처 내선으로 다시 전화를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피싱범이 자기가 마포서 경제3팀 김경찰 수사관이라고 한다면, 일단 전화를 끊고 마포경찰서에 전화해서 경제3팀에 김경찰 수사관이 있는지, 대포통장 등 건으로 자신에게 연락한 사실이 있는지 물어보면 된다.
무엇보다 일단 '지인'의 힘을 믿는 것 자체를 주의할 필요가 있다. 얼마 전 이슈가 된 가짜 수산업자 사기 사건도 지인을 팔아 범행을 손쉽게 저지른 케이스다. 우리나라는 인맥을 굉장히 중요시하기 때문에 지인을 파는 사기 범행에 더 취약하다. 가짜 수산업자 사건도 그 사람이 가진 선박이나 사업체를 확인해본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지는 않았을 것이다. 앞에서도 설명했지만 사기꾼이 지인을 파는 것은 거짓을 진실처럼 들리게 하기 위해서다. 큰돈을 투자할 땐 객관적인 사실에 대한 팩트체크가 꼭 필요하다.
하지만 막상 사기꾼의 거짓진실(?)을 거르는 것이 쉽지 않다. 공익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마음이 너무 클 수도 있고, 사기꾼에게 정말 믿을만한 지인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럴 땐 돈이 오가는 상황을 보면 된다. 세상에서 진실과 객관적 사실이 완전히 일치하는 단 한 가지가 있다면 바로 돈이 오가는 부분이다. 'X월 X일 A가 B에게 돈을 N원을 준다.'라는 내용에는 그 어떤 스토리도 개입할 여지가 없다.
그런데 사기꾼들은 그렇지 않고, 단순히 돈이 오갈 뿐인데도 자꾸 썰을 붙이려고 한다. 평범한 방법으로 돈이 오갈 수 없기 때문이다. 늘 무언가 핑계를 댄다. 다른 사업으로 통장에 가압류가 된 것이 있어서 통장을 쓸 수 없다, 통장이 법인 명의로 되어 있어서 각종 규제가 많으니 개인 통장으로 돈을 받아야 한다, 잘 아는 지인을 통해서 암암리에 하는 거라 돈이 오간 내역이 남으면 안 되니 현금으로만 받아야 한다, 해외 거래처 특성상 환전 문제 때문에 현금으로만 일단 받아야 한다, 세금 문제 때문에 일단 환급될 돈을 먼저 달라 등등 온갖 잡다한 핑계가 다 나온다.
모든 금전거래는 미리 약속한 날짜에, 거래상대방을 대상으로 하여 지급하고, 이체내역(또는 영수증)을 남겨야 한다. 대가로 받기로 한 것이 있다면 그 대가가 무엇인지, 대가를 언제 받기로 했는지도 명확히 해야 한다. 돈을 주고받는 상황에서 뭔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사족을 붙인다면 십중팔구 사기라고 보면 된다.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사기 범행은 더 교묘해지고 피해자는 점점 늘어난다. 코인이며 부동산이며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람이 늘어나다 보니 '열심히 일해서 돈 버는 것'의 가치가 점점 떨어져서 사람들의 심리를 악용하는 사기꾼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사기꾼들은 앞으로도 계속 그런 식으로 사기를 치며 살아갈 것이다. 그러니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High risk high return)이라고, 아무 대가도 없이 좋은 투자처가 갑자기 찾아올 리 없다는 걸 꼭 기억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