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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갱도요새 Jun 29. 2022

이혼하면 애는 누가 키워요?

둘이 같이 키울 수는 없을까?

일반적으로 변호사들이 이혼에서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재산분할이다. 실제로 변호사들의 도움이 가장 많이 필요한 영역이기도 하고, 의뢰인에게 가장 실질적인 이익을 안겨줄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많은 변호사들이 성공보수 약정을 재산분할금에 대해 하기 때문에 변호사들은 의뢰인들의 재산분할에 지대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반면 변호사들이 제일 관심을 가지기 어려운 부분은 아마도 친권/양육권 문제일 것이다. 아이를 누가 키우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해서 변호사는 전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오직 의뢰인의 주장만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재산분할은 그래도 상대측 주장도 듣고, 객관적인 금융거래정보를 보면서 대략 얼마 정도로 분할이 되겠구나 짐작이 되는데 친권/양육권 지정은 객관적으로 누가 자녀를 양육하는 것이 적합한지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부부와 같이 살아봤으면 대충 감이 오겠지만 변호사가 친권/양육권 주장을 하겠답시고 이혼하려는 부부와 삶을 같이 할 수도 없는 일이다.


의뢰인은 다 자기 입장만 얘기한다. 기저귀 한 번 안 갈아본 아빠가 주말에 아이랑 한두 시간 놀아줬다고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좋은 아빠인 양 양육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고, '안아키(요즘은 많이 없어진 듯한데 '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라는 희한한 육아방식이 있다. 아동학대에 가깝다.)' 양육방식을 고집하면서 자신이 대단히 자식을 사랑하는 양 양육권을 주장하는 엄마도 있다. 부부 서로 간 외에는 아이를 키우는 모습을 실제로 본 사람이 없고 객관적인 증거도 없기 때문에 각자 자기 입장만 한참 늘어놓게 되는 것이다. 


친권/양육권 분쟁이 치열한 경우는 보통 자녀가 아주 어린아이인 경우가 많아(아이가 크면 그냥 엄마랑 살겠다, 아빠랑 살겠다는 자기 의사를 분명히 밝히기 때문에 분쟁의 여지가 적은 편이다.) 아이가 의사표현을 할 수도 없기 때문에 실제로 아이가 누구랑 살고 싶어 하는지 알기도 어렵다. 부부는 각자 아이가 자기편이라고 주장하지만, 아이는 부모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부모를 사랑한다. 아이는 엄마와 아빠를 둘 다 너무 사랑해서 아이는 엄마한테 가면 엄마 편이 되고, 아빠한테 가면 아빠 편이 된다. 그래서 어느 일방이 "우리 애가 나랑 살고 싶다고 했어요."라고 하는 말은 그다지 신빙성이 없다. 


부부는 각자의 입장만 늘어놓고, 아이는 명확한 의사를 밝히기 어렵다. 그래서 법원도 친권/양육권자 지정에 애를 먹는다. 아이를 엄마가 키우는 게 적합한지, 아빠가 키우는 게 적합한지 판사도 같이 살아보지 않고서는 알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법원은 가사조사에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다. 가정법원에는 양육환경조사라는 것도 있는데 누가 아이를 양육하는 것이 적합한지 법원 나름대로 조사관을 시켜 조사를 하는 제도다. 조사관이 아이를 양육할 집까지 직접 가서 어떤 환경에서 양육을 할 것인지, 또 누가 양육을 도와줄 수 있는지 등 조사를 하고, 양 당사자와의 면담도 한다.


가사조사가 끝나면 그 결과를 토대로 판사는 엄마와 아빠 중 어느 한 명을 '친권자 겸 양육자'로 정한다. 그리고 '비양육자'에게는 양육비를 지급하라고 한다. 여기서 '친권자'를 정하고 다른 쪽을 '비양육자'라고 칭하는 것이 종종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사람들은 '친권'이라는 개념을 종종 오해해서 마치 친권을 잃으면 더 이상 자기 자녀가 아니라는 식으로 생각하고 "양육권은 줘도 친권은 절대 못 줘!" 같은 법적으로 크게 의미 없는 주장을 하곤 한다. 친권은 쉽게 말해 자녀가 성인이 될 때까지 자녀가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 동의를 해줄 수 있는 권한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자녀가 계속 내 자식으로 유지되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영화 <장르만 로맨스>의 한 장면. 이혼 부부인 현과 미애 사이의 아들 성경.


얼마 전 <장르만 로맨스>라는 영화를 보았다. 영화가 이걸 의도하고 만들어진 건 아니겠지만, 이혼 부부의 자녀 양육에 대한 정답을 본 듯했다. 주인공 현(류승룡 배우)은 미애(오나라 배우)와 이혼한 사이이다. 둘 사이엔 성경(성유빈 배우)이라는 아들이 있는데 현과 미애가 성경을 키우는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둘은 이미 이혼하고 별거 중이지만, 자녀 양육 문제에 있어서는 둘 다 물불 가리지 않고 아무 때나 달려든다. 미애는 성경이 틱틱거리거나 문제 행동을 하면 현에게 전화해서 "아들이랑 얘기 좀 해봐"라며 자연스럽게 도움을 요청한다. 현도 자연스럽게 미애의 집에 드나들며 성경에게 "아빠랑 얘기 좀 하자"라고 한다.


현과 미애는 이혼하고 남남이 되었지만 자녀 양육에 있어서만큼은 여전히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는 부모인 것이다. 여기엔 양육자도 비양육자도 없다. 둘이 공동으로 성경을 양육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은 부모님 모두에게 사랑받고, 부모님 모두를 의지한다. 고민이 있으면 부모 중 누구에게든 털어놓을 수 있고, 사춘기가 찾아와 화가 나도 부모님 중 누구든 미워할 수 있다. "아빠는 바람피울 사람이 없어서 엄마랑 바람피냐!" 같은 명대사도 시원하게 날린다. 이혼가정이지만 이혼하지 않은 가정과 다를 것 없는 삶을 살아간다.


위 영화의 소개 문구는 현과 미애를 '쿨내진동 이혼부부'라고 설명한다. 이혼 부부들이 지향해야 할 모습이 바로 '쿨내진동'이다. 이혼을 했든 하지 않았든 자녀에게 부모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그렇다면 자녀 양육에 있어서만큼은 이혼한 부부라도 서로 쿨하게 협조를 해야 한다. 자녀에게 상대방의 험담을 해서도 안 된다. 부부 사이의 갈등은 부부 사이에만 남겨 놓아야 한다. 만약 상대방이 정말 못된 사람이라 누구와도 갈등을 일으킬 사람이라면 자녀 스스로 판단을 해서 더 이상 그를 만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2022 양육비 산정 기준표에도 여전히 '비양육자'라고 지칭하고 있다.


법원도 한 명은 아이를 키우고 다른 한 명은 양육비를 지급한다는 기존의 관점을 좀 벗어날 필요가 있다. '비양육자'라는 단어부터 바꿔야 한다. 비양육자라는 단어는 어느 면에서 보나 양육비만 지급하면 끝이라는 뉘앙스를 풍긴다. 자녀를 데리고 있지 않은 일방에 대해 지칭할 때 '보조양육자' 혹은 '부양육자' 같이 조금 책임감을 심어줄 수 있는 단어를 사용할 필요가 있다. '친권'이라는 단어도 당사자들이 오해하지 않도록 바꾸었으면 싶은데 적절한 단어가 무엇이 있을지까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법원은 공동양육의 조건도 너무 까다롭게 본다. 법원은 1. 부모가 공동양육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고, 2. 양육에 대한 가치관에서 현저한 차이가 없는지, 3. 부모가 서로 가까운 곳에 살고 있고 양육환경이 비슷하여 자녀에게 경제적·시간적 손실이 적고 환경 적응에 문제가 없는지, 4. 자녀가 공동양육의 상황을 받아들일 이성적·정서적 대응능력을 갖추었는지 등을 고려해서 공동양육을 결정해야 한다고 한다. 다른 건 그렇다고 하더라도 2번 항목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혼인 중인 부부라도 양육에 대한 가치관은 완전히 다를 수 있다. 양육에 대한 가치관은 자녀가 성장함에 따라 부부가 서로 계속 대화하면서 조율해나갈 문제지 공동양육 여부 자체를 결정하기 위한 조건이 되어서는 안 되지 않나 싶다.


친권/양육권은 누구도 쉽게 정답을 말하기 어려운 문제다. 어쩌면 진정한 해답은 부부만이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서로에 대한 악감정을 털어버리고 쿨내나게 아이를 키울 방법을 법적으로 마련해줄 수는 없을까? 진심으로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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