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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갱도요새 Sep 28. 2022

돈 없을 땐 역시 김치찌개

그래도 맛은 최고니까!

요즘 장을 보다 보면 자꾸 김치찌개를 먹고 싶어 진다. 김치찌개 최고의 장점은 저렴하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밥도둑을 꼽으라면 역시 김치찌개가 1등이 아닐까 싶다. 식비를 좀 줄여야 할 타이밍이라면 김치찌개는 언제나 최선의 선택이다. 무슨 재료를 넣고 어떻게 끓여도 맛있고, 세끼 정도는 거뜬하게 먹을 수 있다. 한국 사람들은 김치 정도는 항상 냉장고에 구비해두고 있으니 재료도 특별히 많이 살 필요도 없다. 혼자 사는 자취생들 집에도 라면이랑 같이 먹을 김치 정도는 있다. 보통 부모님이 보내주신 김치를 방치해둬서 골마지가 생긴 상태일 것이다. 가끔 골마지가 올라온 김치를 보고 식겁해서 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씻어서 김치찌개를 끓여버리면 된다.


골마지는 곰팡이가 아니라 효모라고 한다. 씻어내고 찌개로 끓이면 된다.

학생 때는 <찌개집>이라는 이름의 김치찌개집에 자주 갔다. 체인점 찌개집은 아니고 진짜 이름이 찌개집인 찌개집이다. 엄청 큰 양푼에다가 김치찌개를 한가득 내오던 집이었다. 고대 출신의 힙한 사장님이 엄청 친절했다. 고대 출신이신데 왜 신촌에다가 가게를 내셨는지는 늘 의문이었다. 밥에다 김치찌개를 잔뜩 얹어서 김가루 뿌려서 찹찹 비벼 먹으면 진짜 너무나도 맛있었다. 돈 없고 배고픈 학생들에게 양푼김치찌개만큼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잘 없다. 주머니 사정이 여유로우면 계란말이도 추가해서 먹는 호사스러움을 누릴 수 있다. 찌개에 넣어 먹는 라면도 별미였다.


김치찌개에는 삼겹살, 목살, 앞다리살 중 어느 부위를 넣어도 맛있다. 나는 앞다리 쪽 부속고기인 도깨비살을 주로 넣는데 쫀득하니 맛있다. 삼겹살을 넣으면 좀 더 기름기가 좌르르 흐르는 김치찌개를 먹을 수 있다. 찌개용으로 뒷다리살을 제일 많이 파는데 개인적으로 뒷다리살은 너무 퍽퍽해서 잘 못 먹는다. 그래도 뒷다리살은 매우 저렴하니까 어쩔 수 없이 사다가 김치찌개에 넣을 때가 많다. 야들야들한 배춧잎에 돌돌 말아먹으면 뒷다리살도 그럭저럭 먹을만하다. 하지만 결국 퍽퍽함에 목이 막혀 냉장고에서 술을 꺼내게 된다.


김치찌개를 페스코식으로 끓일 때는 참치캔이나 어묵, 두부를 넣는다. 전에 명란도 한 번 넣어봤는데 그럭저럭 괜찮았다. 아무것도 넣지 않고 김치만 넣고 끓여도 맛있다. 비건 식단을 유지하는 친구들이 유독 김치찌개를 못 먹는 걸 힘들어할 때가 많았는데 다행히 요새는 비건 김치도 많이 나오는 모양이다. 참치김치찌개는 참치캔에 들어있던 기름도 좀 넣어주어야 맛있다. 어묵을 넣으면 아무래도 김치찌개가 아니라 김치어묵탕이 되어버려서 그렇게 선호하지는 않는다.


이미지 출처 : 공공누리 이미지 aT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요즘 장을 보고 영수증을 보면 별로 산 것도 없는데 왜 이렇게 많은 금액이 나왔는지 의아하다. 김치찌개를 자꾸 떠올리는 이유도 역시 물가 때문이다. 비싼 삼겹살을 보다가 한 팩에 4,000원 남짓인 뒷다리살을 보면 그냥 지나치기가 쉽지 않다. 이거 사서 김치찌개나 해 먹어야지 생각한다. 최근 전년대비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계속 5~6%대였다. 퇴근하고 요리하기가 귀찮아서 배달 어플을 켰다가도 2만 원을 훌쩍 넘는 최소 주문금액과 4천 원쯤 하는 배달비를 보면 조용히 어플을 끄고 가스레인지 앞으로 가게 된다.


금리랑 환율은 미친 듯이 오르고 주가는 자꾸 떨어지고 한숨만 푹푹 나온다. 관리비, 카드대금, 대출이자까지 돈이 쓱 빠져나가고 나면 다음 월급날은 언제 돌아오는지 달력을 보게 된다.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가는데 숨을 멈출 수는 없다. 역대급 경기 불황이라며 언론에서는 경기침체에 대비하라고 하는데 도대체 어떻게 대비하라는 것인지 모르겠다. 김치찌개에 삼겹살 대신 자꾸 돼지고기 뒷다리살을 넣게 되는 것이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사람들이 체감하는 삶의 질을 나타내는 지표인 경제고통지수(소비자물가상승률 + 실업률)는 역대 1등이다. 경제가 그냥 고통스럽다. 경제학 수업을 들을 때 스태그플레이션이 도대체 뭔지 확 와닿지 않았었는데 지금은 확실히 알 것 같다.


얼마 전 기획재정부에서 '무지출 챌린지'를 하라고 했다가 욕을 바가지로 먹고 게시글을 내린 적이 있다. 경기가 어려우니  청년들에게 '무소비'와 '무지출'을 하라는 것이다. 실제로 요즘 지출을 줄이려는 사람이 많다. 냉장고를 파먹으며 도시락을 싸고, 친구들과의 만남을 줄이고, 사고 싶은 걸 사지 않고 소비를 왕창 줄인다. 아마 식탁에 김치찌개가 자주 올라가고 있을 것이고, 차갑게 식은 김치찌개에서 김치만 건져내 도시락통에 싸갈 수도 있다. 마지막 남은 김치찌개에 밥을 볶아먹기도 할 것이다. 그러는 사이에 삶은 많이 궁핍해질 것이고, 취향은 돈이 허용하는 범위 내로 아주 작게 축소될 것이다. 그건 결코 행복하거나 유쾌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기획재정부는 청년들의 삶이 쪼그라드는 것을 장려하는 것이 꽤 즐겁게 느껴졌나 보다(기재부는 네 명의 남녀가 무지출 챌린지를 한다며 신나서 오바쌈바 떠는 이미지를 함께 업로드했다).


기획재정부에서 올렸던 이미지. 더럽게 행복해 보인다.

사는 게 다 힘들다고 했다. 요즘 같은 시기엔 전 세계 어딜 가도 힘들다고. 하지만 모두가 다 힘들다고 해서 어느 한 명분의 힘듦이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다. 적어도 누군가가 무소비, 무지출을 장려하면서 그게 즐거운 일인 양 떠들어댈 이유는 없는 것이다. 청년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를 사주진 못할 망정 집에 가서 냉장고 파먹으며 이 시기를 즐겁게 지내라고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정말 모두가 다 힘든 상황이지만 부디 누군가의 따뜻한 밥 한 끼가 너무 힘들지는 않은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사는 게 많이 지쳤을 친구들과 김치찌개를 같이 먹고 싶다. 돼지고기랑 맛있는 김치를 주욱 찢어서 달달 볶다가 물을 부어서 보글보글 끓인 김치찌개. 달달한 무를 좋아하는 나는 김치찌개에 총각김치를 꼭 같이 넣어서 끓여야 한다. 김치찌개는 막 끓인 첫날보다도 둘째 날 다시 끓여먹는 것이 진짜 맛있으니 두 끼를 먹어야 할 수도 있다. 아무 반찬이 없어도 김치찌개만 끓이면 밥 한 공기는 뚝딱이다. 그래도 김 정도는 같이 있어주면 더 좋겠다. 김치찌개는 참 많은 애환이 담긴 음식이겠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의 힘든 시기를 벼텨낼 수 있게 해 준 음식이기도 할 것이다. 힘든 시기를 모두가 지치지 않고 잘 버틸 수 있으면 좋겠다.




재판장님, 피고인 김치찌개는 밥을 정말 많이 절취하여 피해  큰 것은 사실입니다. 다만 피고인은 다른 경우와 달리 밥을 많이 훔쳐오라는 직접적인 지시를 받고 행동하였을 뿐, 피고인 스스로의 불법 영득의 의사는 없었습니다. 피고인에게 밥을 훔치라고 지시한 사람들은 밥이라도 많이 먹어야 살 수 있을 것 같았다며 눈물로 선처를 호소하고 있습니다. 부디 법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의 선처를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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