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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구머니나영 Feb 07. 2023

뭘 해야 할지 몰라, 그냥 걸었어

수채화를 그려볼 테야.

한 달 여간의 휴식기를 갖고 오랜만에 회사에 복귀했다. 감사히도 여전히 반겨주시는 회사동료분들과 여전히 그대로 있던 내 자리. 마치 신입사원이 된 것 마냥 티타임을 하다 보니, 어느새 업무시간이 끝났다. 사실 출근하기 전에 ‘한 달이나 자리를 비웠는데, 금방 적응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잠시 했는데, 역시나 퇴근할 때쯤 보니, 어느새 폴더정리가 거의 끝났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큰 틀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쉬엄쉬엄 하자고 다짐했던 마음가짐이 어느새 흐려져 가는 걸 보고, 애써 웃음 지어보았다.


한 달이라는 시간을 되돌아보면, 하루하루가 행복했다. 무엇보다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건 ‘오로지 나 자신에게 집중했다’는 사실이다. 처음에는 갑자기 부여받은 ‘한 달’이라는 ‘나의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몰랐다. 우연한 기회로 통영에 갔고, 그곳에서 용기를 얻었고, 더 멀리 혼자 떠날 수 있었다.


3일 전에 비행기 티켓을 구매하고, 딱 3일 치 숙소만 예약 한 뒤, 일단 떠났다. 혼자 비행기를 타본 적이 꽤나 있는데, 이번엔 그냥 그때와 좀 다른 기분이 들었다. 오직 ‘나’만 생각하고 떠난 여행길이라 그랬는지 모른다.


사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고민했던 순간이 있었다. 뭐가 그리 걱정이 되었나 생각해 보니,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몰랐던 게 가장 큰 이유였던 것 같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자연스레 누군가를 배려하고, 눈치를 살펴가며 지냈다. 그러다 보니, ‘괜찮아’라는 말이 늘 입에 붙어 있었고, 때로는 ‘진짜 괜찮은 줄’ 알기도 했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서만큼은 오로지 ‘나’만 생각하며, 단순하게 생각했다. 너무 많은 것을 계획하지도 말고, 뭘 해야 할지 모른다면 그냥 좀 쉬기로… 그러다 갑자기 생각나면 그때 그걸 해보는 것으로! 말이다. 그렇게 발길 닿는 대로 걷다가, 배고프면 끼니를 챙겨 먹고, 시간에 구애받지 않으며 제대로 나만의 시간을 즐겼다. 그렇게 시간을 지내다 보니, 꼭 글로 남기고 싶은 글이 있었고, 그걸 몇 자 적어보려고 한다.


너무 우물 안 개구리처럼, 회사에서 만난 사람들이 전부라고 생각하며 살지 말길


먼저, 이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경험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사실 요즘에야 youtube를 통해 다양한 사람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너무나도 많다. 하지만 온라인에서 만나는 것과 직접 만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그동안은 여유가 없어서 무언가 새로운 환경에 노출될 기회조차 박탈당하며 살았던 것 같기도 한데, 이탈리아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 자체만으로 좋은 자극을 받았던 것 같다.


오히려 처음 보는 사이라 더 나의 속마음을 편하게 얘기할 수 있었고, 여행이라는 설렘을 갖고 만난 사람들이라 그냥 그 시간 자체만으로 힐링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단순히 ‘회사’라는 어찌 보면 ‘편안한 감옥’이라는 공간 안에 너무 속박되어 있었는데, 너무 무리하지 말라고. 괜찮으니 천천히 나아가도 된다고 나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좋아하는 게 뭔지 몰라서… 그냥 걸었어


아무런 계획을 하지 않고 떠난 터라, 로마 한인민박에 가서 이것저것 물어보기로 생각했다.(진짜 딱 여기까지만 계획했다^^) 조식을 먹으며 만난 분들께 좋았던 관광지를 추천받기도 하고, 또 사장님께 여쭤보기도 했다. 어느 날은 사장님께 숙소 근처에 러닝 하기 좋은 코스?를 여쭤봤더니, 길 따라 15분만 걸으면 콜로세움이고, 그 옆에 오렌지공원까지 추천받아서 그날은 그냥 그렇게 달리고 걷고 했던 것 같다.


또 그렇게 발길 닿는 대로 걷다가, 우연히 콜로세움 근처에서 수채화 그림을 그리고 있는 청년을 발견했다. 그냥 발길이 멈췄고, 나도 모르게 그 그림에 빠져서 ‘트레비 분수’가 그려진 그림 하나를 구매했다. 그날 이후로 로마, 피렌체, 포지타노를 가서도 수채화로 된 그림이 그냥 눈에 밟혔다. 그리고 든 생각은 ‘수채화를 그려보고 싶다’였다. 정말 아무런 이유 없이 수채화 그림에 홀딱 반했고, 내가 찍은 사진들을 직접 그려보고 싶었다. 오랜만에 무언가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기뻤던 것 같다. 한국으로 돌아온 지금, 그 그림을 다시금 보면서, 집 근처 미술학원을 서칭 중이다. 조만간 수업을 들으며, 힐링받고 싶다.

콜로세움 근처 수채화 그리는 청년.. 다이소에서 구할 수 있는 물감과 팔레트... 실화?

혼자 낯선 곳에서 약 2주 간의 경험은 나의 인생에 두고두고 기억될 시간일 것이다. 사실 그 순간에도 이런 생각이 들어서, 하루하루 더 최선을 다했고 알찬 하루를 보냈다. 예상치 못한 일들이 매일 일어나서, 그게 당황스럽기보다 오히려 인생의 재미로 다가와서 모든 순간순간이 행복했다. 두고두고 그 기억을 간직하고 싶고, 앞으로 또 더 다양한 여행을 즐기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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