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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원 Sep 17. 2024

마음, 실험, 기록, 이야기, 사랑, 표현





오늘은 마지막 졸업학기를 앞두고 여름 방학부터 최근까지 있었던 일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나름대로 느긋하게 여유를 두고 살던 이전 학기와 달리 여름 방학은 제게 ... 여러 소용돌이가 가득했는데요. 취업을 해야한다는 조급함에 쫓겨 후다닥 디자인 스튜디오 인턴을 하게 되었어요. 자소서를 쓰고 면접을 보는 모든 과정에서 진심으로 임했지만 그 이면의 일들은 즐거움이 기반이 아닌 두려움을 바탕으로 선택했어요. 



뒤처지면 안된다, 취업을 못하면 어떡하지, 나는 앞으로 뭘 하고 살아야 할까 등등. 걱정인형처럼 걱정이 태산이었군요. 지금 생각하면 정말로 내가 그것을 원했는가,? 의무와 기대에 부합하기 위해 쫓기듯 했는가,? 후자의 선택들은 나를 아프게 한다고, 내게 좋지 못한 과정과 결과를 불러온다는 걸 알게되었어요. 





인턴 생활은 배울 점이 한가득 많았지만 일을 하면서도 즐겁기보다는 쫓기듯이 했던 것 같습니다. 부족하면 안돼, 잘해내야해, 뭐 그런 걱정들이 많았어요. 일을 적응하느라도 힘들었는데 그 와중에 부가적인 일도 하고, 학교 졸업전시위원회 일도 조금씩 했어서 7월 한달 동안 매일 꽉꽉 채워 일했던 것 같아요. 



숨가쁘게, 불안하게. 

일을 하는 스튜디오에 가면 숨이 턱턱 막히는 것 같았고 속에서는 끊임없는 나를 향한 의심, 일이 어렵다는 마음,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혼란스러운 마음. 이게 나와 맞는 일일까 하는 고민스러운 걱정도 참 많았어요. 주말에도 쉬지 않고 약속을 잡고 만나는 대부분의 일들도 아픈 상태가 되다보니 의무감에 쫓겨 끌려다니듯 시간을 보냈고, 한달 차를 겨우 채우고 난 뒤에는 모든 것이 버겁고 내려놓고만 싶었어요. 



한 달도 안되어 그만두면 내가 더 부족한 사람이 되는 것 아닐까, 이 경험이 경력도 안 된채로 이도저도 안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들에 8월이 시작되고도 고민이 많았는데요. 무엇보다 안 좋았던 것은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지기 시작한 거였어요. 점심 밥도 안 들어가고, 일 끝나고 저녁도 제대로 잘 챙겨먹지 못했고, 일하는 내내 너무나 긴장하고 스트레스를 받아 장 건강도 나빠지고요. 늘 속이 메스껍고 불편해 화장실에서 이렇게 일하는 것이 맞는가 눈물을 뚝뚝 흘렸던 기억이 납니다. 지나고보니 5kg이나 빠졌더군요.



나약한 나고 뭐고 당장 힘들어 죽을 것 같다는 생각에 다 내려놓게 되었어요. 아빠와 남자친구의 도움을 받아 겨우겨우 퇴사를 하고 (혼자서 말을 못해 두려움이 가득했거든요) 기숙사에서 몸져 누운지 일주일차. 수많은 마음들이 둥둥 떠오르며 누워서 부정적인 생각의 소용돌이에 지내는 시간들이 이어지자 본가에 내려가게 되었답니다. 









본가에서도 계속 아프고 무기력하며 마음의 고통이 심해지자 알았어요. 여러가지 복합적으로 내가 내 건강을 또 챙기지 못했구나. 그 중 가장 큰 것은 인턴을 시작하자 마자 먹고 있던 우울증 약을 마음대로 끊은 것인데요. 앞의 글에서 말했듯 여유로운 한 학기를 보내고 나서 스스로가 건강하다는 이상한 착각을 해서 약을 두달간 (그것도 가장 힘든 시기가 될 두달) 복용하지 않은 것이 정신건강이 급격히 악화되는데 큰 영향을 주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시작하는 단계에서 지나치게 일을 많이 하고 무리한 것.



다니던 병원에 가서 의사선생님을 뵙고, 다시 약을 먹으라, 는 단순한 말만 듣고온채. 인턴을 했던 한 달, 그리고 그만두고 약을 먹으며 재발된 우울증을 치료하기 시작한 한 달. 지금까지죠... 정말 너무 힘들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요. 이제는 치료를 시작한 한 달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해요. 









저의 경우, 재발된 우울증을 겪는 과정에서 극심한 공황, 높은 강도의 불안, 깊은 무기력 등등의 몸과 마음의 아픈 상태를 경험했어요. 아주 기본은 약물 치료를 하며 약이 몸에 작용할 때까지의 최소 2~3주를 버티며 세끼를 꼬박꼬박 챙겨먹고, 조금씩 걷는 등의 일상 생활을 챙기는 것이었어요. 



약물 치료를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아 마지막 학기가 시작되었고, 너무 아픈 상태와 졸업 전시를 하기 두려운 마음에 1년 휴학을 하고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가족과 남자친구가 모두 말렸고 잘하지 않아도 되니까 졸업작품을 내고 졸업을 해보자! 하고 정성스럽게 곁에서 보살펴주었어요. 



사람을 만나는 것도 불편하고, 수업에 들어가는 것도 두렵고, 중간중간 공강에 뭔가를 하려고 할 때마다 불안함이 너무 커서 몸이 덜덜 떨려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기에 산책을 하거나 속에 있는 마음을 쏟아내며 우는 등의 겨우겨우 시간을 보냈던 것 같아요. 같이 기숙사에 사는 동생과 매일 몇번이고 전화해주는 남자친구와 부모님께 의지하며 겨우겨우 하루를 보내며. 










동생이 외박해서 혼자가 된 날에는 너무 불안하고 우울해서 집과 동네 공원을 걸어다니며 쏟아지는 감정에 울기만 할 때. 남자친구가 본인 자취방에서 4일간 합숙훈련을 하자고 불렀어요. 부정적인 생각에 혼자 빠져있을 때마다 이야기를 다 들어주고, 솔직한 마음들을 다 말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제가 좋은 생활 패턴을 가질 수 있도록 긍정적이고 사랑 가득한 언어를 끊임없이 들려주며. 



이 시간동안 저는 세상에서 가장 무능력하고 쓸모없는 사람이된 것 같다는 생각에 아주 고통스러웠던 것 같아요. 몸에는 기력이 하나도 없고, 뭔가를 해낼 의지도 의욕도 없고, 마음은 언제나 불안하고 고통스러워서. 자꾸만 삶이 잘못된 것 같다는 부정적인 생각들을 하게되더라구요. 무엇보다 이런 내 모습을 가족들과 남자친구, 그리고 주변에 알리는 게 너무 두려워서 숨고만 싶었어요. 나를 떠나지 않을까, 나를 싫어하지 않을까 그게 가장 큰 걱정이었던 것 같아요. 



그럴때마다 가족들은, 그리고 남자친구는 너의 이런 시간이 얼마나 오래되든, 또 포기하더라도 언제나 곁에서 도와주겠다고, 얼마든지 무너져도 된다고, 네가 하는 모든 생각들 솔직하게 말해도 된다고, 괜찮다고. 사랑의 언어를 계속해서 들려줬어요. 그 당시에는 그것이 감사하면서도 마음이 너무 헐겁고 아파 감사한 마음도 잘 못 느꼈어요. 내가 아무리 무너져도 자신들은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상황이 와서 감사하고, 매일매일 더 나아지고 있다는 긍정적인 이야기들을 많이 해줬어요. 매일 전화해주고. 제가 우울하고 부정적인 생각에 갇혀 또 어디 방구석에 박혀있으면 곁에 와서 이야기를 들어주고, 어떤 것들은 바로잡아주고. 









속에 꽁꽁 숨겨두고 살아왔던 수많은 불안과 두려움, 걱정들을 계속해서 털어놓고 꺼내는 일의 연속이었어요. 약을 먹고, 걷고, 또 생각에 사로잡히면 사로잡힌채로 힘들어하다가, 혼자서 헤어나오기 힘들면 주변의 도움을 받아 한걸음씩 나아가고. 



털어놓는 과정의 일부로, 몇 친구들에게는 이런 상태를 대면해서 솔직하게 꺼내보기도 했답니다. 서브웨이를 먹으며 눈물을 흘리며, 베트남 음식을 먹으며, 제가 갖고 있는 속 깊은 두려움들을 처음으로 꺼내는 순간들이 많았어요. 특히 가족들과 남자친구와 나눈 대화가 많았는데 어릴적 경험한 버거웠던 순간들과 힘든 마음들을 계속 꺼내고 대화하고 울고, 받아들여지는 그런 과정 속에서 조금씩 나아가고. 





지금은 약을 먹은지 3주차가 되었는데요. 여전히 무기력하고 의욕은 없으며 할 일을 해내는 것이 두려워 시작하지 못하는 단계에 있지만, 전보다 신체증상이 줄었고, 감정이 극심하게 소용돌이 치는 일도 줄었으며, 전보다 숨기지 않고 나의 상태와 상황을 꺼내고 마주하는 것에 익숙해진 것 같아요. 최근에는 무려 다수의 친구들이 보는 인스타그램에 저의 우울증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꺼내보기도 했으니까요. 



힘들 때마다 표현하지 않고 땅굴에 숨어있다가 괜찮아지면 겨우 나와 그때 내가 ~ 힘들었다고 ~ 말하는 정도로 살며 지냈었는데요. 사랑하는 친구들에게 힘든 마음을 솔직하게 꺼내지 못하고 늘 혼자 꽁꽁 숨어서 앓다보니 너무너무 외롭고 고독한 순간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이제는 너무 혼자 해결하지 말아야지! 싶어서 용기를 내고 꺼내는 연습을 하는 중이랍니다. 힘든 순간이 지나 회상하듯이 꺼내는 게 아니라 그 과정 자체를 이렇게 자주 많이 드러내는 것도 처음인 것 같네요! (하하)





은서가 찍어준




나도 이 시간을 잘 보내고 튼튼 건강한 사람이 되어 주변에 사랑하는 사람들이 힘겨워하고 있을 때 함께 발맞춰 걸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아직은 내가 아프다보니 그럴 여력이 없어 슬퍼요. 



제목에 쓴 마음, 실험, 기록, 이야기, 사랑, 표현 이라는 단어는 제가 아주 좋아하며 평소에 실천하고 곁에 두고자 하는 단어들인데요. 씁... 마음의 고통이 너무 심하다보니 이들을 챙길 겨를이 없더라구요. 정반대의 나만 남아 있는 것 같았어요. 부정적이고, 멋있지 않으며, 아무것도 해내지 못하고, 힘든 나. 



그런데 왜 나는 이런 나의 면들을 싫어하고 멀리했을까? 나의 삶을 많이 돌아보게 되어요. 힘들 수 있는데. 아플 수 있고 못할 수 있는데. 그럼 주변에 의지하고 도움받고, 사랑도 한껏 받으며 더 함께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데. 왜 늘 혼자 모든 걸 해결하고, 혼자서 다 잘해내려고 하고, 살았는지! 



최근 마음이 너무 빈곤해져 무엇에도 사랑을 느낄 수 없다고 동생에게 말하니 "감사일기를 써보는 것 어떻겠냐"라고 제안을 해줘서, 동생과 카페에 와서 감사일기를 써봤는데요. 정말 감사할 게 많은 거에요. 깜짝 놀랐어요. 주변에 고마운 사람들, 고마운 상황들, 그리고 고마운 나 자신이 보이더라구요. 앞으로 마음에 사랑을 쌓고자 감사일기를 꾸준히 써볼까 생각중입니다. 



긴긴 이야기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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