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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원 Mar 10. 2022

마음이 넓은 사람







오후 3시 15분. 학생회 회의를 마치고 집에 가려고 보니 이 시간 즈음이었다. 반팔티에 여름 가디건을 겹쳐 입어 땀이 나고 더워서 축축 쳐졌다. 오전에 내리던 비가 그치고 찾아온 습한 더위에 기력이 빠지는 것을 느끼며 버스 정류장을 찾았다. 지도는 왜 왔던 경로와 다른 길을 알려주는 것인지. 나는 몇 분간 제자리에서 방향을 찾으며 헤맸다. 아, 빨리 집 가서 쉬고 싶다. 내 머리에 들어찬 생각이었다.


버스에 올라타고, 지친 몸으로 자리에 앉아 생각했다. 20분 정도면 도착하겠지. 잘 가고 있나 확인할 겸 지도를 열었는데, 오잉 내 위치를 알려주는 파란 점은 딱 집 가는 거리의 반대 방향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또 길을 잘못 보고 엉뚱한 방향으로 가는 중이더라. 조금 짜증이 올라왔지만 일단 다음 정류장에서 바로 내렸다. 완전히 새로운 곳이었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순간 내가 타야 할 버스가 곧바로 지나갔다. 10분간 땀을 흘리며 다음 버스를 기다렸다.





다시 버스에 올라타 지도를 보니 집까지 50분 정도가 걸린다고 했다. 덥고 지쳤다. 약간의 무기력함을 느끼며 좌석에 몸을 기대었다. 기분이 좀 울적한 것 같았다. 오랜만에 느끼는 울적한 기분. 날씨? 코로나? 회의? 길을 놓친 것? 이 중에 이유가 있나 살펴보려다 딱히 물을 여력이 없어 그냥 머엉하게 있었다. 50분이나 버스를 타고 가니 창 밖을 구경할 시간도 많았다. 그래서 그냥 구경했다.













코로나 블루라는 말을 많이 들어봤다. 코로나로 인해 일상에 찾아온 변화 중 하나는 많은 것들로부터의 물리적 단절이고 소통의 부재였다. 보통 일상에서 마주하던 여러 것들을 차단하고 또는 차단되면서 느끼는 심리적 우울감들을 일컬어 코로나 블루라고 하더라. 코로나를 빼고 블루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블루는 코로나가 없더라도 우리 일상에서 문득 찾아오는 손님이니깐.


사람마다 감정을 다루는 방식이 다르다. 우울도 마찬가지. 지금의 나는 우울을 사람으로 비유한다면 이런 식으로 대한다. '뭐야? 왔어? 언제 왔대 근데 무슨 일이람? 뭔 일 없음 말고~' 그냥 흘러가는 감정으로 둔다. 그런 상태를 그냥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외면하지도 않고 굳이 파고들지도 않는다. 그냥 둔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또 사라져 있다.






지금보다 어렸을 때는 우울, 외로움이 찾아오면 어떻게 대할 줄 몰라 참 어려워했다. 즐겁고 행복한 감정만을 좋은 감정으로 여기다 보니 부정적인 감정들을 낯선 불청객 취급하게 되었다. 마치 그런 감정을 느끼는 내가 잘못되었다는 듯 부정하곤 했다. 억지로 신난 감정으로 바꾸려 뚝딱거리거나 아무렇지 않은 척 쿨한 척도 해봤지만 임시방편일 뿐, 더 큰 우울이나 외로움이 찾아오면 하나도 통하지 않았다. 마음을 부정할수록 아주 깊은 우울에 빠져드는 경험을 했는데 진짜 할 짓이 못 되게 너무 힘들었다. 좀 더 나이 든 나의 대처법은 우울을 아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그냥 내버려 두는 거였다. 경험상, 어떤 종류의 감정이든 필요한 때가 되면 왔다가 떠나갔다.




그렇게 감정을 충분히 느끼다 보면 왜 이 감정이 왔는지 알게 되는 순간이 온다. 다 필요해서 오는 거더라구. 우울은 내게 찾아와 너 지금 지쳤다고, 좀 멈추고 쉬면서 돌아볼 때라고 신호를 주는 듯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힘들고 낯선 감정이 찾아왔을 때, 감정의 이유를 다른 사람이 아닌 나 스스로에게 먼저 물어보곤 한다. '나 힘든 것 같네. 왜 힘들지? 요새 뭐가 힘들었을까. 일단 휴식이 좀 필요한 것 같어.' 좀 신기한 변화였다. 그래도 여전히 내가 감당 못하겠는 건 친구들에게 털어놓고 대화하는 걸 택한다.











그런 생각을 하며 한강 대교를 지나는 버스 안에서, 수많은 자동차와 건물들과 사람들을 보았다. 세상에는 이렇게 다양하고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구나. 사람들은 각자의 삶과 생각 속에서 살아가겠지? 그냥 나도 그럴 뿐이고 저 사람들도 그럴 뿐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마카롱이 먹고 싶어 졌다. 정확히 마카롱이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하나 먹고 싶다는 생각에 바로 학숙 근처 마카롱 집을 찾아봤다.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자리한 가게가 하나 있었다. 걸어가기로 결심하고는 버스에서 내렸다.




그곳으로 가려면 내가 자주 오가던 길 오른편으로 가야 했다. 평소 걷던 전방 대신 우방으로 50m 틀었을 뿐인데 매우 낯선 장소들이 나타났다. 이런 곳이 있었나 신기해하며 걸었다. 마카롱을 먹기로 결심한 건 아주 잘한 일이었다. 가게를 향해 걸을수록 새로운 길목을 마주했고, 새로운 가게들과 사람들의 모습이 드러났다. 프랜차이즈 상점들은 익숙한 사물인데 왜 거기에서 낯섦을 느꼈던 걸까? 이 동네에 온 지 두 달뿐이었지만, 짧은 시간일지라도 난 아주 작은 생활 반경 속에서만 지냈다는 걸 몸소 실감해서였다. 학숙을 기준으로 매일 비슷한 길목만 다녔는데 이제 보니 이 동네 정말 넓고 다양한 공간과 사람이 살고 있구나 하는 작은 감탄에서였다.












그런 일종의 경외심 덕분이었는지 짧은 길거리에서도 아주 천천히 걸으며 작고 세세한 것들을 관찰할 수 있었다. 이를 테면, 아파트 조경용 바위 사이에 시들어 있는 보랏빛 꽃이라던가, 오래된 벽돌담에 핀 진분홍색 꽃이라던가 혹은 길바닥 흙 위에 드문드문 자리한 주홍색 꽃이라던가. 작은 꽃들이었지만 나는 아주 소중한 것을 발견한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버스에서 울적했던 기분은 어느새 날아가고 그 자리엔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과 감탄이 들어섰다.






요런 신기한 것들도 발견했다.












내 가치관에 큰 변화를 가져다준 책의 저자 조던 피터슨은 이렇게 말했다.


'힘들고 어려울 때일수록 아주 사소한 아름다움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아주 여러 번 읽으면서 마음에 담고 있는 말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과거의 일상처럼 보낼 수 없는 만큼, 현재의 상황에 맞게 눈을 낮춰 사소한 아름다움을 보는 연습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매일 걷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기왕이면 같은 곳 말고 매번 새로운 곳들을 걸어 다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단지 새로운 장소에 들어섬으로써 받는 다채로운 감정들을 자주 느끼며 살고 싶어 졌다. 읽어본 적 없고 제목만 들어봤던 책 '걷는 사람 하정우' 님의 마음이 이해되는 그런 아이러니한 순간이었다.



그렇게 마카롱 집에 들어섰다. 소당 마카롱, 학숙 근처에 거의 유일한 마카롱 가게인 듯했다. 굉장히 달달한 향기가 가득한 공간이었는데, 향기의 주인공은 마카롱보다는 마들렌 쪽인 듯했다. 마들렌을 딱히 사 먹은 적은 없지만, 여기서만큼은 사 먹어야겠다 싶어서 마들렌을 일단 골랐다. 마카롱을 하나만 먹을까 하다가, 왠지 아까의 나처럼 울적해 있을 것 같은 친구가 생각나 두 개를 샀다. 돌아가는 길은 매번 가던 길이었지만, 평소 약속과 버스에만 정신이 팔려 지나쳤던 사소하고 새로운 것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것은 정말로 신기한 경험이었다. 어딜 가나 관찰력이 굉장히 떨어지는 내가 그동안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 알려주는 것 같았다. 사소하고 작은 아름다움들 말이다. 길치로 매번 고생하고 짜증 내던 나는 처음으로, 낯선 곳을 구경하며 방향을 모른 채로 걷는 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마카롱을 받은 친구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주는 나도 기분이 좋았다. 친구  앞에서 마카롱 하나를 주고 내려가려고 엘리베이터를 타는데  친구가 생각났다.


학창 시절 그 친구는 누군가에게 마음을 담아 선물하는 것을 좋아했고 자주 그렇게 했다. 배고픈 친구들에게 먹을 것을 잘 나눠줬다. 그래서 나를 포함해 그 친구를 좋아하는 애들이 참 많았다. 오해는 하지 말아 주라. 원래 맛있는 먹을 걸 나눠주는 사람은 좋아할 수밖에 없지만 지금 나는 그 행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거다. 외출을 다녀올 때 우리가 생각났다면서 간식이나 귀여운 물건을 사 와서 줬고, 외박하고 기숙사에 돌아오는 날이면 먹을 것을 한 보따리 싸서 오는데, 좋아하는 친구들이랑 함께 나눠먹고 싶어서라고 말했다. 모든 이에게 잘 베푸는 사람이라기보다, 자신이 사랑하는 친구들에게 마음을 거리낌 없이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처음에 나는 보이는 것들에 대해서만 놀라며,  친구가 부유하기에 가능한 것일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친구는 마음이 넓은 사람이라 그런 거였다. 그렇게 주는 행위에 어떤 의도나 기대는 없었다.  시절엔 서툴러서, 친구의 넓은 마음을  모르고 상처를  적도 있었다. 조건 없이 마음을 베풀지만 그렇다고 상처를 받지 않는 것은 아니니까.  친구 덕에 진심을 주고받는 것의 소중함을 많이 배웠다. 함께할수록 친구의 진심이 느껴졌기에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 졌다. 성인이  나는 지금도 역시 마음이 넓은 사람으로 살고 싶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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