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인간관계는 서로가 비슷한 상황에서 유지된다.
난 바쁜 것을 즐기는 사람이다.
수능이 끝나자마자 토익공부를 시작했으며, 대학시절 늦잠 자는 것이 싫어 방학 때마다 오전 아르바이트를 구했었다.
사기업에 취업하고는 출근 전 수영, 퇴근 후 요가와 스피닝 그리고 영어학원을 다니고 주말에는 나의 또 다른 꿈을 위해 그룹과외를 받았었다.
전 편에서 말했던 나의 친구였던 그녀와는 각자의 사회생활이 시작된 후 몇 달에 한 번씩 만나는 친구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우리가 만나지 않는 날이면 나에게 가끔 카톡으로 요즘은 뭘 배우고 있는지 물어왔고, 어김없이 우리가 만나는 날이면 내가 배우는 것을 자신도 배운다며 '어머, 우리 정말 비슷해!' 하고 외쳤다.
나는 그녀가 내가 다니는 미용실과 헤어디자이너 선생님을 물어보고 나와 똑같이 헤어 스타일링을 했을 때도,
정 반대의 체형을 갖고 있지만 나와 비슷한 옷을 입기 시작하고, 내가 화장실을 다녀온 사이 몰래 내 파우치를 열어 화장품 품번을 사진 찍다가 걸렸을 때도, 내가 아웃컨츠를 뚫은 것처럼 보이는 귀걸이를 하고 온 다음날 그녀가 정말 아웃컨츠를 뚫고 왔을 때도 그냥 유일한 친구이니 하고 넘겼다.
그런 우리의 관계가 불편해지기 시작한 건, 대학생 때 대기업에서 주최하는 이런저런 대외활동과 해외봉사에 참여한 나에게 정보를 부단히도 묻고(그녀는 항상 나에게 정보를 묻기만하고, 본인의 정보를 알려 준 적은 없었다. ), 내가 20대 중반에 항공사 승무원 면접을 보러 다녔을 때 키 153cm의 그녀도 갑자기 어느 날 항공사 승무원에 관심을 나타내면서부터이다.
더불어 내가 쌍꺼풀 수술을 하고 온 뒤 나를 소위 말하는 '성괴'(성형 괴물, 성형수술을 많이 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로 몰아가면서도 손톱으로 계속 자신의 눈두덩이를 긁어 아주 잠시, 쌍꺼풀이 만들어질 때면 나에게 '나는 성괴가 아니라 자연 쌍꺼풀이야'라고 말하고, 내가 쌍꺼풀 수술을 한 사실을 별로 안 친한 제3자에게 말하거나, 우리가 같이 나온 사진을 자신만 보정하며 SNS에 '쌍꺼풀 수술을 하고 예뻐진 내 친구'라며 올렸을 때부터 나는 이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스트레스가 되었다.
(그 친구는 내가 쌍꺼풀 수술을 하고 난 뒤 자신의 코를 손보고 심미 목적으로 치아교정을 했지만 여전히 나를 만날 때마다 '성괴'취급했다.)
외적인 모습이야 추구하는 스타일이 같을 수도 있고, 마음에 들면 비슷하게 따라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녀와 나는 체형도, 생김새도, 전공도, 꿈꿔오던 직업도, 성향도 너무나 달랐다.
어느 순간부터 그녀가 나의 인생을 흉내 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였다.
나는 그녀와 자연스럽게 거리를 두었다.
앞에서 서술한 것과 같이, 나는 누군가에게 먼저 만나자고 한 적이 거의 없다.
항상 그녀가 먼저 만나자고 제안을 했는데, 약속을 미루고 미루다가 어쩌다 한번 만나는 날이 되면 약속시간 30분 전쯤, 그녀에게 연락이 왔다.
"강개군날돌들막, 미안해 나 오늘 남자친구가 보자고하네ㅠㅠ"
처음 한 두 번은, 그녀와 만나는 것이 스트레스였는데 약속이 취소된 것이 오히려 잘됐다 싶었다.
하지만 이런 일이 늘어날수록 다른 한 편으로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나는 공백 시간 없이 항상 무엇인가를 배우고 있기 때문에, 만일 누군가와 약속을 잡는다면 미리 일정을 정하고 만나야 했다. 그래서 이런 일이 서너 번쯤 반복되자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00야, 내가 너한테 먼저 만나자고 하는 것도 아니고 매번 네가 먼저 약속을 잡으면서 너는 남자친구 봐야 한다고 당일 약속 취소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잖아, 너만 남자 친구 있는 것도 아니고 나는 내 일정 다 미루면서 약속 잡는 건데, 매번 이런 일들이 반복되니 우리는 안 보는 게 나은 것 같아."
그러나 그녀는 갑자기 나에게 미친 듯이 전화를 하기 시작했고, 자신이 정말 잘못했으며 우리집 앞으로 당장 와서 사과한다고 싹싹 빌어 계속 관계를 이어나가기로 했었다.
사실, 그게 그녀의 첫 연애였으니 그럴 수 있다고 한 번쯤 이해하기로 했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와의 관계가 이미 스트레스가 되었어서,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핑계로, 시험이 끝나고 나서 연락하겠다는 말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