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국은 없었다.
나의 20대 후반, 길고 길게만 느껴졌던 수험생활.
'보통의' 사람이라면 4년제 대학을 졸업 후 1~ 2년정도 취업 준비를 거쳐 20대 후반이면 자리를 잡기 마련이다.
흔히 말하는 좆소기업. 그것이 나의 첫 직장 생활의 시작이었고, 그곳의 많은 부조리함을 속성으로 1년만에 깨우치며 '공무원'이라는 직업에 대한 환상을 가졌다.
그래서 나는 '보통의' 사람이 느끼는 20대 후반부터의 안정감, 그것을 포기하고 수험생의 길로 들어갔다. 매일 추리닝에 민낯, 외출하는 곳은 도서관이나 독서실뿐인 나와는 다르게, 내 친구들은 하나 둘 대리로 진급하기도 하고, 결혼을 준비하는 친구들도 생겼다. 지금까지는 항상 동일선상에 놓여있던 친구들과 점점 격차가 벌어지자 나는 친구들과 나 스스로 비교하며 정신적으로 괴로웠고, 결국 수험생활 대부분을 휴대폰을 정지하며 아예 주변인들과 연락을 끊으며 살게되었다.
하지만, 수험생활 기간동안 엄청 열심히 노력했냐고 물어보면 그 당시에는 YES, 지금와 돌이켜 생각해본다면 NO.
처음에는 의욕에 가득차서 분명 열심히 했(겠)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나는 '합격'이 목표가 아닌, 소위 '수험생'이 직업인 사람이 되어갔던 것 같다.
어쨌든,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나처럼 암기형에 약하지만 NCS유형에 강한 사람들은 공직자가 되기에는 공기업 시험이 훨씬 빠른 것 같다.(지금은 채용 인원도 많이 줄고, NCS+전공시험인 기업들이 늘어가고있는 추세라서 힘들겠지만, 라떼는 NCS 시험만 보는 기업들도 많았음)
각설하고, 엉망진창인 가좆소회사에서 N년 노력하여 공기업으로 이직한 지금, 난 행복하게 살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물론, 노력해서 얻은 만큼의 댓가는 분명히 있다.
만 60세까지 국가가 나의 고용을 유지해줄거라는 믿음에 더 이상 불안정하지 않고, 돈도 생각보다는(?) 많이 받고있다. 육아휴직, 각종 휴직 및 유연근무제, 복지 등을 당연하게 여기는 조직 분위기이며, 지난 코시국을 생각해보면 사기업에 다니는 주변 사람들이 정말 많이 직장에서 해고당하거나, 강제로 휴직하였는데 우리 조직은 그런 분위기도 느끼지 못하고 지나갔다. 공무원들보다 민원에 덜 시달리며(이건 업무 by 업무지만 내 업무는 대민업무가 아예 없다.) 주말행사, 산불, 재난, 재해 등의 동원도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다.
이런 것만을 느끼고 공기업에 도전한다면 정말 만족하고 다닐 거고, 나 역시 저 부분은 정말 만족하고 있다.
그런데, 내가 직장에 대한 이상이 너무 높았던 걸까?
아니면 이제 진정한 사회인이 되어가는 과정인 걸까?
어딜가나 또라이는 있고 결코 그들을 피할 수 없는 것을 깨달았다.
고용이 보장된 기업의 최대 장점이자 단점
'내가 안잘리지만 저 새끼도 안나간다는 것'
어디선가 본 공공조직은 또라이들만 안나가고 모여있어서 더 최악이라던데 그 말이 딱 맞는 것 같다.
정상적인 사람들은 이직했거나 다 이직준비를 하고있고, 추정하기로는, 여기 아니면 자기 실력으로는 지금 어디 입사도 못 할 것 같은 또라이들만 만족하면서 다닌다.
더해서, 또래 친구들에 비해서 턱없이 적은 급여, 일하는 사람만 갈아서 돌아가는 조직구조, 노는 사람은 하루종일 힘들다 일많다 말만 하면서 유튜브보고 카톡하고 일터지면 울고 끝낸 다음에 절대 중요한 일 안주는데, 나처럼 일 복 많은 사람은 계속 기피 업무만 준다.
이 문제로 인사팀장이랑 수 차례 면담을 했는데 원래 조직은 불공평하다, 일하는 사람만 일하게 되어있고 네가 일하는 건 그래서 어쩔 수 없다. 등등 여기에 다 적을 수는 없지만 정말 기가차는 도라이 발언을 나에게 하였다..!!
사기업같으면 일을 많이하는 사람과 안 하는 사람에 대해 어떤 차이는 분명 발생할텐데, 그런 것 일절 없이 같은 월급을 받으며 옆 팀 직원들은 하루종일 소풍오듯 사무실에서 화장하고 고데기하다가 칼퇴하면 정말 현타가 세게 온다.
장밋빛 미래만 그려질 것 같은 이곳에서도 별별일 다 겪었더니 이제는 이 사회에서 또라이는 피할 수 없는 존재이구나라는 것을 다시한번 강하게 깨달았다.
사람 욕심이라는게 끝이 없는 것처럼, 처음 공무원시험을 준비할 때만 해도 '시험'이라는 일정한 기준의 허들을 넘은 일정 수준 이상의 사람들이 모여있고, 고용 안정성만 유지된다면 좋겠다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다시 사기업의 채용 공고를 보고 있다.
그도록 바라고 바랐고, 또 누군가는 지금도 간절히 바랄 그 곳은 내가 직접 경험해보니, 결국 천국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