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개군날돌들막 Jul 11. 2019

6. 직장 내 괴롭힘의 시작

성희롱 #백마도 타보고

L대리는 그 일이 있은 후로 며칠 동안은 출근시간을 아주 잘 지켰다.

그리고 더 이상 나에게 '직접적'으로 부당한 야근을 강요하지도 않았었다.


다만, 그는 내가 예상치 못한 행동들로 나를 더욱더 심하게 괴롭히기 시작했다.


"강개군날돌들막씨한테 한 번도 못 얻어먹어봤는데 이번 주 금요일에 이 앞 삼겹살집 예약해놨으니깐 강개군날돌들막씨가 쏘는 거다?? 어때? 다들 찬성?"


나보다 적어도 두 배 이상의 월급을 받는 그가 갑자기 나에게 얻어먹겠단다.

그 역시 나에게 한 번도 사준 적이 없었다.

그리고 굳이 회식을 하고 싶다면 '법인카드'란게 있지 않은가? 그냥 날 괴롭히고 싶은 거겠지.

그렇게 그는 주머니 가난한 신입사원에게, 굳이 다른 사원들을 우루루 데리고 얻어먹었다.


또 그는 갑자기 관심도 없던 나의 사생활에 대해 물었다.


"강개군날돌들막씨, 남자 친구 만나면 뭐 해?"

"영화도 보고, 공원도 가고, 산책도 하고, 같이 운동도 하고 그래요"


"또?"

"놀이공원도 가고 동물원도 가고 같이 공부도 하고 그래요"


"또? 정말 그것만 해? 그것 말고 다른 것도 하잖아. 다른 것 또 뭐해?"

"같이 친구들도 만나고 밥도 먹죠. 저런 것 말고 다른 것은 안 해요."


대여섯 번 계속되는 '또?'라는 질문과 그의 음흉한 웃음을 통해 나는 그가 원하는 질문의 요지를 파악하고 더 이상의 '또'라는 질문을 차단하기 위해서 다른 것은 안 한다고 대답했다.


"강개군날돌들막씨 남자 친구는 양반이네~ 마음에 안 드네 그 친구. 너무 얌전하게 노는 것 아니야?"


그가 원하는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그는 항상 자기 위의 상사가 없는 날이면 사무실에게 저런 질문을 하고는 했다.


말했다시피 사무실에 상근 하는 직원들은 몇 없었다.

높은 직급들은 대다수가 출장을 가기 때문에 점심식사는 늘 사무실에 상근 하는 직원들 모두가 같이 했다.

점심시간이면 나는 꼼짝없이 그의 간접적인 성희롱을 견뎌야 했다.

그때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성희롱은 없었는데 그때 그 일이 있은 후로 그는 비겁한 방법으로 날 괴롭히기 시작했다.


어느 날 회사 근처의 한 식당에서 밥을 먹었는데 한 남자와 외국인 여성이 들어왔다.

그는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날보고 이렇게 말했다.

"백마다!"

"백마요?"

"강개군날돌들막씨, 정말 무슨 뜻인지 몰라? 저기 저 외국인 말이야. 저 남자 능력도 좋네 백마도 타보고"


그때 막 20대 초반을 벗어났고 사회 초년생이었던 나는 그의 그런 괴롭힘 방식이 너무 힘들었다.

점심시간이면 저런 이야기 혹은 자신의 경험담을 20-30분간 들어야 했는데 그때의 나는 너무 어렸기 때문에 얼굴이 벌게져서 그저 저런 질문을 듣고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는 영리하게도 꼭 자기 위의 상사가 없을 때만 저렇게 행동했다.

마치 나를 대놓고 괴롭혀도 널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어하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나는 이미 이렇게 된 경위를 대략적으로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내 괴롭힘에 대해서 그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았다. 다행인 것은 그의 괴롭힘 수위가 너무 심한 것을 남자동료들도 느꼈는지, 그나마 L대리가 없을 때면 '아... 저런 말은 해서도, 동조해서도 안 되는데...'라며 나에게 위로 아닌 위로를 해주었다.




그는 상사들에게 내 근무태도가 불성실하다고 토로했다.

나는 너무나 어이가 없었다.

내 일을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는 사무실에서 오히려 사수를 가르쳐가며 업무를 하고 있었다.

나는 출근시간 30분 전에 회사로 퇴근해서 쉬지 않고 일하고 정시에 퇴근을 할 뿐이다.

근무태만이라면 오히려 그가 해당되는 말인데, 내 근무태도가 불성실하다고?


잦은 출장으로 사무실에 자리를 비우는 시간이 많은 상사들은 자신들이 사무실에 없을 때 그의 근무태도를 모르는 것 같았다. 오히려 매일 야근을 하는 그가 성실한 직원으로 비춰진 눈치였다.

그는 가끔 약속이 있어서 일찍 퇴근을 할 때면 상사들에게 업무에 관한

'예약 메일'을 자정쯤 보내 놓는다.

그리고 상사들과 통화를 할 때면, 요즘 매일 자정 넘어서 퇴근하느라고 너무 피곤하다고 말했다.


어느 날 출근길 버스 안에서 나는 그의 카톡 하나를 받았다.

'강개군날돌들막씨, 내가 깜빡하고 K부장님이 시킨 업무를 다 못했는데 어제 내가 퇴근하면서 강개군날돌들막씨한테 서류 작업 넘겼거든~ 그거 오늘 아침까지 마감인데 다 했어?'

그는 자신이 마감 기한까지 못 끝낸 업무는 일부러 내가 퇴근하고 난 뒤, 마감기한 전 날에 내 메일로 보냈다.


그리고 상부에 이렇게 보고한다.

"그거 제 업무량이 너무 많아서요~ 부장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요즘 저 매일 야근하는 거... 그래서 OO부 강개군날돌들막씨한테 넘겼거든요~ 근데 아직 제출이 안 되었나요?"

나는 몇 번이나 저렇게 꼼짝없이 당했고, 혼나고 무능력한 직원이 되기 일쑤였다.


그렇다고 예전처럼 상부에 보고하면 또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만 같아서 그냥 참고 당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당연히 상부에는 내가 일 안 하는 직원으로 알려졌는지 점점 더 불필요한 작업을 나에게 시키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서 회사에서 필요한 작은 소모품을 처리할 때도 기안서를 작성하라고 했다.

그동안은 관례처럼 그냥 처리했던 것들인데 마치 나를 시험하는 것처럼 점점 더 작업 절차가 늘어났다.

업무가 L대리를 통해서 지시될 때면 일은 더 힘들었다.

작은 행사용품을 주문하는 것도 1, 2, 3, 4... 등 여러 가지 제안서를 보내면 전부 다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다시 알아보라고 했다. 반나절이면 끝날 일인데 계속 반려되어서 일주일을 끌었다.

위에서 왜 이렇게 일처리가 늦냐고 하면 역시 내 핑계를 말했었고 항상 선택되는 것은 처음에 내가 제출했던 안이었다.


또, 갑자기 어떤 시스템을 사내에 도입하고 싶다고 자신의 아이디어를 메일로 간략히 나에게 보내고 기획서를 만들라고 했다. 기획서를 보고서 형태로 제출하니 PPT로 기획안을 만들어서 발표하라고 했다.

그동안은 으레 간단한 보고 만으로 진행했던 일이었고 기획서와 PPT까지 만들어 제출하는 일은 없었다.

이쯤 되면 예상했겠지만, 그가 지시한 저 업무는 윗선까지 보고되지도 않았다.


그는 날 괴롭히고 싶었던 것뿐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5. 선배님, 할 말 있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