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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못난인형 May 18. 2020

다이어트의 적


평소에 냉장고 안에 들어있는 식료품이나 레인지 위에 놓인 냄비 속 내용물 확인하기를 즐겨하는 남편은 어제저녁에도 냄비 뚜껑을 열며 한마디 한다. 

"이거 뭐야?"

관심사가 어찌 이리 단순한지 보기 싫어 대답도 안 했다. 그런데도 계속해서 하는 말, "웬일로 마늘종을 했어. 이번엔 쫄깃쫄깃 맛있게 잘됐네."

미식가인 남편은 음식 만들기를 즐겨하고 남이 만든 음식의 맛 평가도 잘하고 살짝 맛이 가려하는 음식의 상태도 기막히게 맞히는 반면 우리 집 주방장인 나는 음식 만들기에 젬병이고 살짝 맛이 간 건 알지 못하고 완전히 가버려야 알아채는 볼품없는 입맛을 가졌다. 

오늘도 난 새벽밥을 먹는 남편을 위해 5시 20분에 일어나 취사 버튼을 누르고 이왕이면 따뜻한 마늘종을 먹이려고 불을 켰다가 완전히 졸아서 마늘종의 형태가 사라지고 장아찌가 되고 말았다. 

아쉬워하며 한마디 하는 남편. "어제 맛있다고 말했는데 왜 졸였어?"

"이왕이면 따뜻하게 주려고 데우다 잊었어."

사실 식탁 위에 앉아 책을 읽다가 센 불에 올린지도 모르고 하마터면 태울뻔했다. 

옆에 묵은 총각김치 씻어 된장 풀어 끓이던 찌개의 국물도 거의 사라져 버리고 얼마 안 남았는데 박완서 님 산문집에 보면 오래돼서 군내 나는 김치를 씻어서 끓이면 그리 개운할 수가 없다 했는데 정말 맛있다.      

평소 남편은 콩밥을 해달라 하고, 나와 아이들은 콩밥을 싫어하니 절충안으로 밥솥 한편에 콩알 몇 개를 넣고 남편의 밥공기에만 퍼준다. 

"당신은 왜 콩 안 먹어?"

"당신이 돼지고기 안 먹는 이유랑 똑같아."

"어렸을 때도 안 먹었어?"

"응, 엄마가 주면 밥상 위에 골라냈더랬어."     


남편이 콩밥 해달라고 하도 노래를 불러서 콩을 한 주먹 넣어 밥을 한 후 콩 반, 밥 반으로 퍼줬었다. 그랬더니 뭘 말하면 질리도록 해준다며 친구들에게 고자질하던 남편. 생각해보니 내가 좀 그렇긴 하다. 음식을 했는데 식구들이 잘 먹으면 질릴 때까지 같은 메뉴로 내놓는다. 다시는 먹고 싶다는 말이 안 나오도록!

"수진아, 이제 엄마한테 김밥 맛있다고 하지 마. 오늘도 김밥이래." 몇 주 전, 독립해서 사는 둘째가 집에 오며 엄마 김밥 먹고 싶다길래 연거푸 김밥을 싸줬더니 첫째가 둘째한테 하는 소리인데 요리에 관해 창의적이지도, 잘하지도 못하는 나는 오늘도 사람들이 올리는 다양하고 맛있어 보이는 음식 사진에 기가 죽는다. 

결혼 후 30년간 새벽밥을 먹는 남편을 위해 어김없이 어스름한 새벽에 일어나 상을 차리는데 남편은 하루 세끼 중에 아침밥만 중요하게 여기다. 아침은 오로지 집밥, 점심은 생략하고, 저녁은 동료들과 한잔하거나 퇴근 후 집에서 마시는 소주 일병으로 대체된다. 퇴근길에 먹고 싶은 거 없냐고 전화로 묻고 먹을거리를 사 오거나 냉장고를 뒤져 직접 간단하게 만들어 먹기를 즐기는 남편. 만들기만 하면 다행인데 자꾸만 같이 먹자며 유혹을 한다. 그것도 내가 좋아하는 것이 아닌 순전히 자신의 입맛에 맞는 메뉴로 말이다. 

남편이 고마워하거나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혼자 먹는 것이 안쓰러워 결혼 후 줄곧 아침밥도 아닌 새벽밥을 차리고 함께 먹어주는 봉사를 해왔다. 고백하자면 하루 다섯 끼를 먹은 적도 있다.

남편과 함께 새벽밥을 먹고, 

돌봄 일을 하며 아이들 등원시키고 나면 배가 훅 꺼져서 본격적인 아침밥을 먹고, 

평생학습 센터 수업이나 학습 모임을 다녀와서 점심을 먹고, 

집안일하다 보면 속이 허해서 과일과 빵 등 간식을 먹고, 

저녁엔 퇴근한 남편과 제대로 된 식사를 하고. 

원래도 동그랗던 체형이 못 봐줄 정도로 망가진 건 계획적이지 못하고 나태한 생활 습관과 운동을 멀리한 게으름에 따른 결과물이다. 

며칠 전부터 만보 걷기를 시작했고 저녁을 먹던 7시에는 갖가지 먹거리로 유혹하는 남편을 뒤로하고 단지 내 휘트니센터로 향한다. 먹는 대신 달리기 위해. 

 ”말리지 마! 나 이제부터 홀쭉해질 거니까. “

홀쭉해질 리는 없지만, 누군가 목표는 크게 잡으라고 했으니 큰 꿈에 도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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